구약/신명기

5. 신명기30:1-10 : 모압언약의 회복

호리홀리 2015. 3. 30. 14:57

5. 신명기30:1-10 : 모압언약회복

 

 

  이 단락의 내용은 언약공동체의 역사가 아주 부정적으로 진행되어서 이스라엘이 포로로 끌려갔을 경우를 전제로 하고 선포한 내용의 멧세지이다.  이것은 이전 단락인 29:22-28의 내용을 이어가는 것으로 장구하고 먼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선포인 것이다.  물론 중간에 수많은 축복과 함께 언약적 저주를 경험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에 마지막 저주인 포로로 끌려가는 것을 경험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서도 소망이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망은 여전히 하나님의 언약적 자비에 근거하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해 겨우 살아남은 이스라엘이 언약적 순종의 삶을 살고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을 거듭해서 말하고 있다 (30:2,10).  이미 이전의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이 단락에서 신명기의 역사철학을 선포한다 (30:6).  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언약적 저주로 심판하시기는 하지만 결코 언약 자체를 폐기하거나 이스라엘을 파멸시키시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하나님의 자비는 인간의 농간으로 가볍게 여기지 못하도록 심각한 역사를 통해서만 경험될 것이다. 

 


  그런데 그 소망의 범위는 엄청날 정도로 선포되었고 이것이 포로된 후세대가 언약적 회개와 회복으로 나갈 용기를 가지게 만드는 것이다 : “너로 네 열조보다 더 번성하게 하사” (30:5).  열조보다 더 나은 역사를 이룰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공격하던 대적들이 그 저주를 대신 받을 것이요, 궁극적으로 열조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그런 후세가 받게 될 것이다 (30:7,10). 

 

 

  여기서 발견할 수 있는 멧세지는 역사의 비관적 전망과 함께 하는 더 큰 낙관적 전망이다.  이는 다른 종교나 문화의 역사관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미래는 어두운 것은 인간과 인간공동체의 본성적인 어두움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인간공동체와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은 스스로 언약에 신실하시고 자비로우시다.  즉 그런 이스라엘의 언약적 불신실에 대해서 언약적 저주를 퍼붓지만 결국 언약적 자비로 그 이스라엘을 기사회생시키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다. 

 

 

 

이 때에 심판받는 것은 언약공동체의 총체성은 아니다.  그 속의 개체 혹은 개별공동체 혹은 시대공동체는 언약적 저주로 무너질 수 있으나 우주적 하나님 나라로서의 언약공동체는 결코 무너지는 것을 허용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개체와 개별공동체와 시대공동체로서는 이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총체적 파멸을 경험할 수 있으므로 안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그 자비를 경험하는 우주적 공동체에 참여될 수 있을 것인가는 결국 언약의 강자이신 하나님이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의탁하여서 우리의 게으름과 무지와 불순종을 계속하면서 하나님 눈치보기 작전을 할 가능성은 없다.  그렇게 하나님의 자비로 장난치다가 일순간에 파멸이 개체와 개별공동체와 시대공동체 속에 올 수 있기 때문이다. 

 


  역사가 비관적으로 진행되는 데에 가장 불리한 사람들은 후세에 사는 이들이다.  누적된 역사의 짐을 후세가 지고 가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불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공동체적 존재로, 또 역사적 존재인 인간과 그 공동체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더 큰 소망이 여기에 주어졌다.  열조가 이룬 그 어떤 역사보다 화려한 역사를 이룰 가능성이 후세에게 주어졌다는 선포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이 위대한 소망앞에 후세는 무한한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은 제 2경륜의 시대에도 그러하지만 제 3경륜의 시대에는 더 그러할 것이다.  언약의 페턴은 바뀌어도 동일한 언약의 원칙을 유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그것은 우리는, 피조물로서 더 나아가 언약의 약한 대상으로서, 하나님의 언약법에 순종하는 조건이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렇게 될 때에 역사의 앞에 선 세대나 후에 선 세대나 역사는 공평함을 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