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명기

4.신명기 29:2-9 : 광야여행의 교훈

호리홀리 2015. 3. 30. 14:48

4.신명기 29:2-9 : 광야여행 역사의 교훈
 

  여기서 과거의 세 가지 역사를 시간의 흐름을 따라서 정리한다 :
   (1) 29:2-4 : 출애굽
   (2) 29:5-6 : 광야여행
   (3) 29:7-9 : 요단동편의 두 왕과의 전쟁의 승리와 땅 분배 
이것은 진정으로 이스라엘이 직전에 경험하였던 “하나님의 큰 일”(Magnalia  Dei)을 체계적으로 낭송한 것이다.  그런데 그 중간에 있는 광야여행을 언급함에 있어서 (29:5-6) 갑자기 모세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직접 인용하는 방식을 취하여 변화를 보인다 :
       “내가 (개역 : 주께서)...., 나는 (개역: 주는) 너희 하나님...” 
이어서 그 다음 단락인 29:7-9에서 다시 모세가 주도하는 화법인 ‘너희’, ‘우리’로 바뀐다.

 

  이 세 역사를 언급함에서 나타나는 주제는 두 가지인데 서로 연관되어 있다.

 


  첫째는 이 과거의 역사는 사실 출애굽 제 1세대가 주체가 되어서 겪은 것이지만 이제 이 모압 땅에 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고 준비하고 있는 출애굽 제 2세대이다.  이스라엘은 이제 다시 새로운 역사를 경험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앞으로 놓인 도전은 지금까지 경험했던 것 이상일 것이지만 그 속에 나타나는 언약의 하나님의 인도하심와 이스라엘이 해야 할 언약법의 원칙은 동일할 것이다.  이 원칙을 진정으로 믿고 순종하며 따른다면 역사진행에서 불안함이나 어려움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드러낸다.

 


  둘째는 하나님이 하신 일과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이 구분된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모든 역사와 이적을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고 언약법의 말씀들을 구체적으로 지키는 일이다.  이런 균형이 이루어져야 역사는 순조롭게 진행될 것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리고 있다.  이 점에서 하나님이 주신 것과 주지 아니하신 것이 구분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수많은 이적과 역사들을 주셨고 옷과 신과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다.  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요단동편의 땅을 지파들의 일부가 분배받을 수 있도록 하였다. 

 

 

 

그러나 주시지 아니한 것은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이며 (29:4), 옷과 신과 빵과 포도주와 독주를 주시지 않았다 (29:5-6).  그렇다면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그것은 언약적 삶의 원리에 대한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가지려고 노력하는 일이며 (29:4), 오직 여호와만 이스라엘이 언약맺은 하나님임을 깨닫는 일이며 (29:6), 가나안 땅에서의 형통의 보장은 오직 언약법을 지키는 데 있는 것이었다.  

 

 

 

 이런 제 2경륜의 본문은 제 3경륜 속에 사는 우리에게도 새롭게 적용될 수 있다.  우선 제 2경륜 동안의 하나님 나라의 역사만이 아니라 제 3경륜이 시작된 지난 2000년의 역사가 바로 지금 현재에 사는 우리의 것이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거의 역사를 현재화, 현실화(actualization)할 수 있는 역사적 상상력을 품은 훈련이 가장 긴급하게 필요한 것이다.  즉 역사의식의 지독한 내면화 내재화(internalization of historical consiousness)가 시급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늘 어거스틴, 파트릭, 콜룸바, 룰, 그리고 즈빙글리와 루터와 칼빈, 그리고 웨슬리와 에드워즈와 진젠돌프와 같이 현재적인 삶을 사는듯한 자세를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역사적으로 하나님 나라를 근본적으로 개혁적으로 활성적으로 이어왔다고 증언을 얻은 그들이 지금 우리와 같이 대화한다는 자세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역사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해 주신 일들을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그리고 그런 역사가 언제든지 재현될 수 있음을 믿어야 하고 그 믿음 가운데 하나님은 역사를 더 큰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제 2경륜에서는 아직 깨닫는 마음과 보는 귀와 듣는 눈을 허락하지 않으셨지만 제 3경륜에서는 예언된대로 (렘 31:33-34, 겔 36:26-28) 보혜사가 오시면 아무도 우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그의 기름부으심이 모든 것을 가르치게 되는 축복을 얻을 것이다 (요일 2:27).  물론 이것은 모든 것이 자동주의로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결코 아닐 것이다.  제 3경륜시대의 엄청난 축복이 부어졌다면 그만큼 많은 자발성이 요구되고 책임이 주어질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 깊어진 제 3경륜의 언약법에 더 충실하게 행동하기가 요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