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신명기

신명기1:19∼2:1,가데스 바네아에서 세일산까지

호리홀리 2015. 4. 6. 20:02

2.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일산까지(1:19∼2:1)
1:19∼2:1에 다음과 같은 구조로 볼 수 있다.


A 여호와의 명령: 호렙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여행 1:19

B 약속의 땅에 도착 1:20

C 그 땅의 정복을 위한 격려 1:21

D 정탐꾼 보내기 위한 이스라엘의 요청과 모세의 수락 1:22-23

E 정탐군의 보고와 이스라엘의 반란 1:25-28

1) 정탐꾼: 그 땅은 좋다 25

2) 이스라엘의 반란 26-27

3) 정탐꾼: 가나안 백성은 "우리보다 강하다" 28

F 모세의 격려: 두려워 말라 1:29-31

E' 이스라엘의 반란과 여호와의 심판 1:32-39

1) 이스라엘의 불신앙 32-33

2) 여호와의 심판: 갈렙외 모든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 34-36

3) 여호와의 심판: 모세도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 37-38

대신에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인도

4) 아이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것이다 39

D' 광야로 진행하라는 여호와의 명령 1:40

C' 그 땅을 정복하기 위한 백성 스스로의 격려와 여호와의 금령 1:41-42

B' 그 땅 정복 실패 1:43-46

A' 여호와의 명령: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일산까지 여행 2:1





이 구조에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언약의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들이 몸소 체험한 사건들을 통해서 분명하게 나타나 있고, 약속의 땅 정복을 위한 모세의 격려(F)를 구심점으로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이 평행적으로 묘사가 되어 있다. 한 국가로서 갓 태어난 이스라엘은 호렙에서 종주이신 여호와의 지시에 따라서, 모세의 인도 하에 약속의 땅 남쪽 경계선에 위치한 가데스 바네아까지 왔다(A). A는 이스라엘이 그 땅을 정복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여, 그의 지시에 따라서 가데스 바네아에서 방향을 바꾸어 광야로 진입하는 것과 평행을 이룬다(A'). 이렇게 평행을 이루는 순종-불순종의 구조 안에서 A-E에 나타난 그 땅 정복을 위한 여호와의 격려가 F에서 반복됨으로 강조되어 있고, 그 반면에 세 번이나 여호와의 지시를 거역한(E, D', C') 것은 이스라엘이 그들의 종주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없음을 뚜렷하게 확인시킨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40년의 광야 유랑을 시작하게 된다(A').

A.  호렙에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1:19)

19절은 전 단락(1:9-16)에 언급된 호렙에서 있었던 사건과 약속의 땅 정복을 위하여 첫 시도를 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있었던 사건(1:20∼2:1)을 연결해준다. 호렙에서 약속의 땅의 남쪽 경계선에 접경하고 있는 가데스 바네아까지는 거의 물이 없는 석회암 고원인 넓고 위험한  광야를 지나야 하는데 11일이 걸린다(2절 참조). 가데스 바네아는 유다의 남서쪽 경계선 남쪽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는 텔 엔-쿠데라트(Tell `Ain Qudeirat)와 동일하다고 간주되며 이곳은 물과 초목이 풍부한 오아시스이다.


B. 약속의 땅에 도착(1:20-21)

모세는 약속의 땅 남쪽 경계선에 위치한 가데스 바네아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들어가기를 지시한다(20절).

C. 그 땅의 정복을 위한 격려(1:21)

실제로 모세는 그 땅을 소유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분명했기 때문에 "여호와 너희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희 앞에 두셨다"고 주장했다(21절). 신학적인 측면에서는 족장시대부터 약속되어온 그 땅의 소유는 기정 사실이지만(21절은 완료 문장) 이제 역사적, 실질적인 측면에서는 그 땅을 점령해야 했다(그러므로 20절은 분사 문장).
이제 그 땅은 이스라엘 백성이 점령하도록 그들 앞에 있다. 모세는 그들에게 "올라가라, 점령하라"고 명령한다. 그들의 하나님은 바로 여호와, 그들 조상의 하나님이시라는 동일성이 그들 앞에 놓인 그 땅의 정복을 위한 현재의 전략과 목표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그들 자손에게 주겠다고(창 13:14-17; 15:18-21; 17:8; 26:3-4; 48:4) 약속된 땅과 연결지운다. 더욱이, 하나님께서 족장들에게 언약으로 보증하고 계속적으로 확증시켜준 땅에 대한 약속은 시내산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약속의 땅 정복을 도우실 것이라는 약속과 연결된다. 그러므로 모세는 그 땅 정복을 눈 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었다. "두려워 말라. 주저하지 말라"(21절)는 명령의 배후는 가나안을 이스라엘에게 확실히 주실 수 있는 여호와의 능력에 대한 완전한 확신(여호수아 8:1; 10:25 참조)과 이스라엘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임재이다(신 31:8, 수 1:9 참조).
D. 정탐꾼을 보내기 위한 이스라엘의 요청과 모세의 실행(1:22-24)

그 땅을 점령하러 주저 없이 가라는 모세의 명령에 이스라엘 백성은 정탐꾼을 보내어 먼저 그 땅을 답사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정탐꾼들이 공격을 위해서 가장 적합한 길과 성들의 크기에 대한 보고를 가지고 오기를 기대했다(22절). 모세는 이 제안에 동의해서 각 지파에서 한 사람씩 선택하여 열두 명을 정탐꾼으로 보냈고(23절), 그들은 산지로 올라가서 헤브론 지역에 있는 에스골 골짜기까지 그 땅을 두루 다니며 정탐하였다(24절). 민수기 13:21-24에 따르면 정탐꾼들은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기까지 정탐하였고, 헤브론 지역에 이르러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와 석류 그리고 무화과를 취하여 가데스 바네아로 돌아왔다.
크리스텐센은 이스라엘의 제안이 죄라고 이해한다. 그러나 22절의 제안이 이스라엘 백성에서 비롯되었다고 해서 죄라고 보기는 힘들다. 민수기 13:1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각 지파에서 한 사람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도록 지시하셨고, 모세는 그 명령을 실행에 옮겼다(13:3, 17). 아마 이스라엘의 제안을 모세가 먼저 여호와께 상의했을 것이며 여호와의 동의와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E. 정탐꾼의 보고와 이스라엘의 반란(1:25-28)

열두 정탐꾼들은 약속의 땅의 과실을 가져와서 여호와께서 주시는 그 땅이 좋은 땅임을 입증했다(25절). 그들이 탐지한 그 땅은 그들이 경험했던 광활하고 위험한 광야와는 아주 두드러지게 대조되는 땅이었다.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표현되며 기름진 땅이다(민 13:27).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기름진 땅 대신에, 점령의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어려움에 초점을 맞추어, 그곳으로 침투해서 그 땅을 점령하는 것을 순종하지 않았다(26절). 오히려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우리를 아모리 족속의 손에 붙여 멸하시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다"(27절)라고 원망한다. 이스라엘 자신들을 여호와의 증오의 대상이라고 여긴 이스라엘의 잘못된 인식은 그들의 하나님에 대한 신뢰보다는 정탐꾼들의 보고에 초점을 맞춘 데 기인한다. 곧 아모리 족속은 이스라엘보다 키가 크고 그들의 성읍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으며, 게다가 아낙 자손도 그 땅에 존재한다는(28절) 정보는 이스라엘을 압도했다. 고고학적으로 청동기 후기 시대에 가나안의 주요 도시들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었거나, 요새화되어 있었고 더욱이 주민들까지 장대했으므로 전투 경험이 없는 이스라엘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면 적들의 요새화된 도시들도 무력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는 이스라엘의 인식은 언약을 지키시는 여호와의 본성을 완전히 왜곡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어떻게 그들을 이집트에서 구출하셨는지, 그들을 추격해온 바로 군대 앞에서 어떻게 홍해를 건너게 하셨으며, 어떻게 그들의 적을 홍해에서 침몰시키셨으며(출 14-15), 호렙으로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떻게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케 하셨으며(출 17:8-16), 더욱이 메마른 신 광야에서 여호와께서 어떻게 물과 양식을 그들에게 공급해주셨는지를 체험하고도(출 15:22-27; 17:1-7) 이스라엘은 여전히 불가능한 것같이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그들의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의 원망은 여호와를 "그들의 종주"로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그러나 언약의 본질은 여호와의 사랑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속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아모리 족속에게 넘겨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모리 족속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시기 위함이며, 이스라엘을 멸절하시기 위함이 아니라 이스라엘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F.  두려워 말라(1:29-31)

29절의 모세의 격려는 거룩한 전쟁을 승리할 수 있는 모든 보증을 반영하고 있다. 전쟁을 자신들의 것으로 생각해서 이스라엘의 마음은 이미 약해졌다(28절). 사실은 가나안 정복은 여호와의 전쟁이므로 그들이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신 20:3; 31:6; 수 8:1 참조).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서 싸우실 것이기 때문이다(30절; 3:22; 출 14:13-14 참조). 출애굽에서 용사로서의 여호와의 역할은 출애굽기 15:1-18에 잘 나타나 있다. 여기에서 여호와는 용사로 서술되어 있고(3절), 그는 그의 오른손으로 원수들을 파멸시키고(6절), 바람으로 그들을 바다에 침몰시키셨다(10절). 그뿐만 아니라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광야에서 싸우셨다(출 17:8-16; 민 10:35). 모세는 이스라엘의 광야 유랑을 아버지가 자기 아들을 돌보는 것같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돌보셨다고 묘사한다(31절).

E'. 이스라엘의 반란과 여호와의 심판(1:32-39)

비록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능력과 보호를 체험하였지만,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를 신뢰하지 않았다(32절). 그분은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리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이스라엘 앞에서 행하시어 그들에게 진 칠 장소를 가르쳐 주시고 그들을 인도하신 분이시다(33절; 그리고 출 13:21-22; 민 9:15 이하; 10:34 참조).
이스라엘이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믿지 못하므로,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형벌을 받게 되는데, 곧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36절). 동일한 맥락 속에서 모세는 자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데 제외된 원인을 언급한다. 37절은 모세에게 내린 하나님의 형벌은 이스라엘 때문인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전치사 "때문에"는 원인으로 보기보다는 “계기”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민 20:10-12 참조).
예를 들면, 야곱이 라반에게 축복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지, 축복의 원인이 된 것은 아니었다(창 30:27, 30). 이처럼 이스라엘이 모세에게 불순종의 계기를 주었다. 다시 말해서, 모세의 말은 여호와의 형벌의 원인을 자신의 불순종으로 인정한 것이지 이스라엘 백성을 탓하는 것이 아니다(37절). 모세가 새로운 세대와 함께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에 새 지도자 곧 여호수아가 지명되었다(민 27:15-18 참조). 갈렙과 함께 아직 통찰력이 없는 아이들("그 때 선악을 분별치 못하던 자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다(39절).

D'. 광야로 진행하라는 여호와의 명령(1:40)

이제 모세는 불순종으로 인해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에서 제외된 사람들에게 여호와의 명령을 전달한다. 곧 그들은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서 광야로 진행하기를 지시했다. 이 길은 소알(Zoar)과 다말(Tamar)을 엘랏(Elath)과 연결하는 사해의 남쪽 아라바를 통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지시에 대항하여 이스라엘은 그들 스스로 격려하여 정복을 감행한다.

C'. 땅을 정복하기 위한 백성 스스로의 격려와 여호와의 금령(1:41-42)

결국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그 땅 정복을 시도했는데, 이것도 잘못된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정복을 위한 전쟁은 여호와의 것임을 여전히 깨닫지 못한 것이고, 진실로 그들을 위해서 싸우시고 보호하시는 언약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음을 보여 주는 행동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전쟁 결의에 대해 당신이 그들 가운데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적에게 패할 것이므로 전쟁을 일으키지 말라고 말씀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성공적인 정복은 그들의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실 때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끝까지 불순종했던 것이다.

B'.  땅 정복에 실패 1:43-46

이스라엘의 시도는 결국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비록 그들 모두가 무기를 들고(41절) 가나안으로 올라갔으나 여호와의 언약궤와 모세는 진에서 움직이지 않았으므로(민 14:44) 싸움의 결과는 너무나 당연했다. 아모리 족속은 벌떼 같이 쫓아 나와서, 세일에서 가데스 바네아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호르마까지 추격하여 쳤다. 민수기 14:43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적군은 아말렉 사람과 가나안 사람들이었다. 신명기에서 아모리 족속은 그 땅에 거주하던 민족들에 대한 일반적인 명칭이다.

정복이 실패로 끝난 후 이스라엘이 여호와 앞에서 통곡했으나, 여호와는 그들의 소리를 듣지 않으시고 귀도 기울이지 않으셨다. 만일 이스라엘이 자신들의 불순종을 깨달았다면, 40절에 언급된 여호와의 지시를 따라서 광야로 진입했어야 했다. 결국 불순종은 또 다른 불순종을 초래하게 되어, 전력을 다한 시도는 실패로 끝나버렸다. 이러한 악순환을 경험하면서 이스라엘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러 날 머물게 되어, 약속의 땅을 향한 진행은 늦어지기만 했다.

A'. 여호와의 명령: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일산까지 여행(2:1)

결국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명령대로 홍해로 가는 길을 따라서 광야로 진입하여 많은 날들을 세일산 부근에서 떠돌았다. 이스라엘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함으로 실제로 약속의 땅에 도착했었다. 그러나 불순종으로 인해서 “젖과 꿀이 흐르는”비옥한 땅을 점령해서 정착하여 그 땅의 소산물을 즐기는 대신, 광야에서 유랑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불순종에 대한 여호와의 형벌인 동시에 가나안 정복을 위한 준비였다. 광야를 유랑하면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종주이신 여호와를 알아가면서 그를 신뢰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