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11:25~30,복음의 수용

호리홀리 2015. 5. 4. 21:08

메시아의 초청에 응하는 올바른 반응(11:25~30)
세례 요한은 메시아의 정체성에 대해서 일시적으로 실족하였고 당시 다수의 유대인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으며 갈릴리 도시 사람들은 많은 권능을 보고도 교만과 불회개의 반응을 보였다. 예수님은 성부의 뜻, 곧 성부께서 은닉할 자들에게 은닉하시고 계시할 자들에게 계시하시는 뜻이라는 각도에서 이런 사실을 해석하셨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포함한 다수의 유대인들이 메시아를 거절한 것은 그들이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로 사회에서 대우받고 스스로 그렇게 여기는 교만 때문이다. 세리들과 창녀들이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는 것은 그들이 ‘어린아이들’처럼 겸손하기 때문이다. 성부 외에는 성자를 아는 자가 없고 성자와 성자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성부를 아는 자가 없다. 그런데 성부의 뜻은 성자의 소원과 동일한 것으로서 교만한 자들에게는 천국과 천국 메시아를 은닉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계시하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성자로서 ‘천지의 주재’ 이신 성부의 이런 뜻을 ‘옳소이다’와 ‘감사’로 받아들이셨다.
지금도 사람들 증에 천국 메시아의 복음을 받아들이거나 거절하는 반응으로 갈라지는데 받아들이는 자들은 겸손한 자들이고 거절하는 자들은 교만한 자들이다. 전자는 성부와 성자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아 천국복음을 들을 귀를 가진 자들로 복된 자들이다. 후자는 성부와 성자께서 천국복음을 은닉하여들을 귀가 없는 자들로 계속 거절과 불회개를 고집하면 화를 받을 자들이다. 예수님은 성부의 뜻에 따른 성자의 소원을 이렇게 밝히셨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이런 초청은 사기꾼이나 미친 사람이나 메시아가 아니면 말할 수 없는 것으로, 예수님이 무죄하시고(26:59~60;요 8:46) 정신이 온전하신 참된 메시아임을 분명하게 밝힌 초청이다.
“수고한다”는 것은 힘겹고 어려운 노동(능동), 육체적인 노동과 정신적인 노동과 자기 구원을 자기 공로로 이루기 위한 노동과 행복을 위한 노동으로 지친 상태를 말한다."무거운 짐을 진다"는 염려의 짐, 의심의 짐, 탐욕의 짐, 야망의 짐, 성취욕의 짐, 경쟁의 짐, 종교의 짐, 죄의 짐 등에 수동적으로 눌려 있는 상태를 말한다. 능동적인 짐이건 수동적인 짐이건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예수님께로 오면 참된 안식을 얻는다. 예수님의 안식은 역설적으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예수님에게 배우는 데서 얻는다. 28절은 ‘짐을 벗겨 주겠다’는 말씀이고 29절은 ‘내 멍에를 메라’는 말씀인데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역설이다. 멍에 없이는 참된 안식이 없다. 멍에 맨 소가 주인의 뜻대로 일하는 것처럼 예수님께 와서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에게서 인격과 교훈과 삶을 배우면 안식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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