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마태복음

마태복음11:16~19,냉담

호리홀리 2015. 5. 4. 21:02

장터의 아이들 비유 (11:16~19)
예수님은 당시 장터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아이들의 피리 불며 춤추는 결혼놀이와 애곡하는장례 놀이를 통해서 천국을 침노하여 빼앗지 않는 당시 사람들의 냉담한 반응을 지적하셨다.장터의 아이들 사이에 서로자 기들 마음대로 놀려고 하는 고집이 있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하자고 해도 거기에 따르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런 고집불통의 아이들에게서 당시 자신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보신 것이다.
세례 요한은 천국 메시아가 나타나시기 직전에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자신의 회개 메시지에 걸맞게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는” 금욕적인 생활을 했다. 요한의 이런 삶의 스타일은 아이들의 장례 놀이와 비슷한 것이었다. 이런 요한을 “이 세대”는 “귀신 들렸다”고 조롱했다(11:18). 예수님은 “병든 자들의 의원” , “죄인들을 불러 회개케 하시고용서해 주시는 분”으로서(마 9:12~13) 당시 사회에서 문등이 내지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 환자 취급받던 “세리들과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그들과 같이 식사하시고 포도주를 마셨다. 이런 예수님의 삶의 스타일은 그분이 전하신 “복음”과 걸맞은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예수님을 "이 세대"는 “탐식가”(貪貪家)와 "술주정뱅이"로 비난하고 조롱했다(11:19상).
요한의 어두운 설교와 예수님 자신의 밝은 사역에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당시의 사람들에 대해서 예수님은“지혜는 그 행한 일로 옳다 함을 얻느니라”는 의미 심장한 격언으로 일침을 가하셨다(1:19하).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지혜는 지혜의 행위들, 즉 요한과 예수님의 삶의 스타일들(앞 절에 언급)에 의해서 그 정당성이 입증 된다”는 데 초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그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거부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지혜는 요한의 삶과 메시지, 그리고 예수님의 삶과 메시지 (11:5, 28~30)에 의해서, 또 그 결과에 의해서 그 정당성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의 통치자로 나를 다스리시도록 맡기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회개와 복음을 외쳐도 나는 나대로 '나의 놀이'를 고집하고 즐기는 것은 본질적으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반응과 비슷하다. ‘나의 놀이’를 포기하고 '주님의 놀이' 에 응하는 삶이 천국 백성의 바른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