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상(구속사)

열왕기상 17:1,말씀사역자 엘리야

호리홀리 2015. 4. 30. 12:02

말씀사역자 엘리야(왕상 17:1)
1) 엘리야의 등장

 열왕기 저자는 "길르앗에 살고 있는 자 중에 디셉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였다"라며 엘리야를 소개한다(1절 상). 그가 그 때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부모가 누구인지, 나이는 몇 살인지, 또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한 소개 없이 엘리야는 돌연히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그 흔한 족보와 지파에 관한 언급조차 없다. 그가 그 동안 살고 있었다는 길르앗이란 곳도 요단 강 건너편에 있는 거칠고 험한 시골이다. 그는 단지 이곳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이곳 출신인지 아닌지도 알 길이 없다. 핑크에 따르면, "그곳은 덩쿨이 많은 숲 지역이었다. 그 고적함은 산에 흐르는 냇물 소리로 깨어질 뿐이었다. 그 계곡에는 무서운 맹수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Pink). 그가 태어난 곳인 "디셉"이란 곳도 오늘날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어떤 이는 이곳이 현재 알-이스티브(al-Istib)로서 얍복강에서 북쪽으로 약 8마일의 거리에 있는 성 엘리야 사원 근처로 보지만(Gray 558), 이것도 전설에 불과하다.

엘리야가 등장하는 첫 장에는 대부분의 선지자들이 사역을 시작할 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는 "소명기사"조차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그가 어떻게 부름을 받았는지, 그 부름에 어떻게 응답하였는지, 그 후에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는 "선지자"로도 조차 불려지지 않고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마치 멜기세덱과 같고, 이사야 53장에 나타나는 "여호와의 종"과 같다(1-2절).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의 출신에 대해 질문과 조롱을 받았다(요 6:42; 8:39-41). 그렇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보잘 것 없는 자를 선택하사 지혜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고전 1:26-28).

2)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내리지 아니하리라"
갑작스럽게 등장한 선지자가 무서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1절 하).

(1)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로 맹세하며 청천벽력 같은 무서운 맹세를 하고 있다. 여기에서 "내가 섬기다"는 동사는 "서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좀 더 문자적으로 번역하자면, "내가 그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된다((the God of Israel before whom I stand). 이 표현은 모세(신10:10), 엘리사(왕하 3:14 ; 5:16), 천사 가브리엘(눅 1:19)에게 적용된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모습은 윤리적이라기 보다 관계적이다. 즉, 이것은 마치 엘리야가 "왕되신 주님의 친밀한 모사와 충성스러운 신하"로서 주님 앞에 서있는 모습을 그려주고 있다. 아마 엘리야는 미가야 선지자와 같이 천상에 있는 거룩한 총회에서 장차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고 그곳의 결정을 아합에게 전하고 있는 것 같다(왕상 22:19-20). 즉, 엘리야는 하나님의 전권대사로서 아합을 찾아온 것이다. 그는 먼저 "주님 만이 살아계신 참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며, 이스라엘 백성의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심을 선포한다.

(2) "내 말이 없으면 수년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아니하리라"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내가 입을 열기까지 앞으로 몇 해 동안은, 비는 커녕 이슬 한 방울도 내리지 않을 것입니다"라며 맹세한다(<표준새번역>). 그의 맹세는 그의 등장 만큼 갑작스럽고 거칠다. 왜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이런 저주를 내렸을까? 물론 우리는 아합 왕이 악한 것을 안다. 바로 앞 장에서 등극과 그의 악함에 대한 평가(16:29-32)가 있었는데 이것은 그의 생애 전체에 대한 것이다. 그렇지만 이미 아합은 이 당시에 "바알의 신전을 사마리아에 건축하였다"(32절). 하나님의 백성 북 이스라엘의 수도에 바알을 섬기는 신전이 별다른 저항 없이 세워졌다는 것은 온 나라가 얼마나 심하게 부패하였는지 극명하게 보여주는 지표가 된다. 이런 점에서 엘리야의 가뭄 선포는 바알과 아세라를 열심히 섬긴 아합과 그것을 묵인하고 동조한 온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이었다(33절).

또한 왕상 17:1절 바로 앞에 나오는 16:34절은 엘리야의 가뭄 선언에 대하여 어떤 암시를 던져주고 있다. 표면적으로 볼 때, 아합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황금시대를 누리고 있었지만, 영적인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즉 아합이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바알과 아세라를 열심히 섬기고 있을 때"(16:30-33절), 바로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한다"(16:34 ). 이것은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다시 건축하는 자에게 선언한 저주를 의도적으로 거스린 사건이었다. 이리하여 히엘은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막내 아들 스굽을 잃었다." 장자와 막내를 잃는 것은 단지 둘을 잃는 것이 아니라 모두를 잃은 것이었다. 여리고의 재건은 하나님에 대한 공개적인 반역이요 도전이었으므로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 대로 언약의 저주가 이루어진다. 말씀이 땅에 떨어진시대,언약파기의 시대, 이것은 당시의 영적인 어둠과 타락상을 예증하는 대표적 사건이었다.

(3) 언약의 저주로서의 가뭄과 기근

그러나 왜 하필이면 가뭄과 기근인가? 하나님은 이미 오래 전에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를 선택하도록 하셨다(신 32:47).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지만, 하나님의 복을 누릴 것인지 혹은 징계와 나아가 심판을 받을 것인지는 그들의 전인적인 선택에 달려 있었다. 물론 그들이 스스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통하여 그들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늘 하나님을 섬기든지, 아니면 반역적인 백성이 되어 심판을 받든지 날마다 생활에서 선택하여야 했다.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과 모압 언약에서 순종에 뒤따르는 형통함(신 28:1-6)과 불순종에 뒤따르는 저주를 선포하셨다(신 28:22-23).

고대 이스라엘은 농경 사회여서 백성들에게 내려지는 복과 저주가 대부분 농사와 비와 관련이 있다. 비는 주로 초가을과 초봄에 내린다. 긴 여름의 더위와 가뭄이 끝나고 가을에 "이른 비"가 내리면 메마르고 갈라진 땅이 부드러워진다(신 11:14; 시 84:6; 욜 2:23). 이 때 비가 오지 않으면, 땅은 철과 반석처럼 단단하게 되어 갈 수가 없다. 이른 봄에 내리는 "늦은 비"는 겨울 철에 말랐던 대지를 부드럽게 하고, 새로운 농사를 시작하게 한다(약 5:7). 따라서 비가 그친다는 것은 농경사회에 치명적이다.
비가 내리지 않는 기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슬을 의지하고 산다. 엘리야 기사의 대부분은 이스르엘 평원에서 이루어진다. 이곳은 가을부터 봄까지 헬몬 산으로부터 매일 아침 엄청난 이슬이 내려, 마치 비가 온 것 같다. 이곳에는 이슬이 많이 내리므로 비가 오지 않아도, 농사가 가능하다. 이곳은 바로 기드온이 "이슬로" 양털 시험을 한 곳이다(삿 6:36-40).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이슬"(tal)과 "비"(matar)를 거두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3) 바알 종교에 대한 거룩한 전쟁의 선포
엘리야는 언약의 저주로서 가뭄을 선포하지만, 이 배경에는 종교적인 논쟁이 있다. 아합과 이세벨 시대에 바알의 인기는 절정에 달했다. 가나안 신화의 배경에서 보면, 바알은 폭풍의 신이다. 고대 우가릿의 한 토판에 의하면 바알은 물을 정복하는 자이다. 바알의 한 비문을 보면, 비가 오지 않는 것에 대해 "7년 간 바알이 실패하고, 구름 타는 자가 8년을, 이슬도 비도 없으리라. 두 깊음이 솟는 일도, 바알의 소리의 아름다움도(없으리라)"고 한다.

우가릿의 왕이었던 케렛은 환상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하늘은 기름을 비처럼 내리고, 와디(Wadi)는 꿀을 흘리니, 능한 자 바알이 살아 계시거니와 보라, 땅의 왕이시며 주가 계시도다." 바로 마지막 줄은 엘리야가 가뭄을 선포할 때에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시거니와"라는 형식과 동일하다.

따라서 엘리야가 이슬과 비를 금한 것은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의 큰 싸움을 예고해 준다. 따라서 어느 신이 참으로 살아 계신지 곧 드러날 것이다. 아합과 이세벨과 그들의 앞잡이들은 비옥한 땅과 풍년을 누리기 위해 바알을 섬긴다. 그러나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풍년을 주시는 분이라고 한다. 누가 비를 줄 것인가? 따라서 한판 싸움이 불가피하였다.


아합 시대의 이스라엘은 참 하나님을 떠나 거짓 신인 바알을 섬기고 있었다. 바알은 그들의 맘몬(Mammon)이었다. 그들은 상업주의와 세속주의와 인본주의에 빠져 언약의 참된 정신을 잃고 살았다. 그들은 근본을 잃었고, 잊었다. 탐욕스런 인생을 갈망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죄였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슬과 비를 거두어 가신다(렘 5:24-25). 이제 엘리야는 바알과 그의 추종자들에게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도전장을 던지고 있다. 결국 아합과 이세벨의 왕국이 시들고 망할 것을 예언적으로 말한다. 엘리야와 아합의 최후의 승부는 장차 갈멜산에서 이루어질 것이다(1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