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신학

제3강 구약의 하나님이해

호리홀리 2014. 12. 11. 14:08

    제3강 구약의 하나님이해



아비의 죄가 삼 사 대에까지 가는 것의 문제(신 34, 신 24:16)

근본적으로는 원죄의 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이다. 죄의 전가문제이다. 이것은 구약에는 없고 바울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 대표자가 클라우스 베스터만이다. 그는 구약의 사상에는 원죄사상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바울에게서 비로소 나온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다양성 속에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리라고 본다.

창 8:20-21, “어려서부터”(나아르(רꘞꗺ); 소년, 젖먹이 유아에서 장가가기 전의 시기) 악하다는 것은 최초로 원죄성을 표현한 것으로 본다. 모든 인류가 젖을 먹으면서부터 죄악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윗도 “죄중에 잉태되었다”고 말함으로서

신명기24장, 에스겔 18장, 예레미야 31장의 말들은 실정법의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롬 5장, 신명기 34의 죄는 전가된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죄는 전가된다고 본다.  한편 신명기 34의 맥락은 나(하나님)를 미워하는 자의 죄에 대한 선언이다. 이렇게 성경을 통전적으로 볼 때 원죄사상은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을 논리적으로 극복할 장치는 없다. 이것은 신앙적으로 받아야할 문제이다. 이것이 우리의 논리의 한계이다.


창 6:5-7 하나님이 창조에 대해서 한탄하고 후회하셨다. 그럼 하나님도 한이 있다는 것인가?

이것의 의미는 마음이 아프셨다고 이해함이 좋다. 하나님이 마음에 기뻐하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신다. 이것의 주석적 해석은 신인동형론적 표현이다. 즉 하나님에 대한 표현의 수사학적 한계라고 볼 수 있다.



하나님 이름의 계시

하나님의 칭호는 하나님의 속성과 실체를 알려준다.


1. 엘(לꔞ) 하나님(El);powerfull,strong

엘은 셈족의 신에 대한 일반명사이다. 정관사로 한정되거나 수식어가 붙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 예가 엘샤다이(ידשׂלא) 즉 전능의 하나님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것은 조상의 하나님이다. 더 구체적으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다. 샤다이(전능자)의 의미는 70인역에 의하면 the Almighty이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이스라엘(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를 원하노라는 문자적 의미를 갖는다)에서 엘을 강조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엘신에 대한 이해가 우위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당시의 모든 가나안, 초생달 지역의 ‘신’개념을 공유했다. 따라서 동양의 하나님 개념과의 공통점을 연결하여 우리의 하나님 이해로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스라엘도 당시의 개념을 공유해서 하나님 개념으로 삼았던 것이다.

엘이라는 말이 구약에는 230 정도 나온다. 그 어원은 울(לוּא)에서 온 것으로 본다. 울은 힘있다, 강력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다.


샤다이는

דדשׁ샤다에서 온 것으로 강하다, 힘이 세다는 의미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הדשׁ샤드에서 온 것으로 본다. 이 말은 유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유방을 가진 신으로 이해하는 견해

דשׂ

생육하고 보호하고 축복하는 문맥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축복과 생육과 번성과 보호라는 내용들은 어머니 모성이 갖는 내용과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이다. 창 10;1-8, 48:3, 49:25 등



또 하나의 이해는 “질투하는 하나님”(אנקלא)이다. 이것은 구약의 모성적 개념으로 이해가 된다. 엘 하나님이 질투한다는 것은 배타적인 의미가 아니다. 내가 참 하나님인데 네가 어디가서 빌어 먹는냐고 꾸짖는 부모의 의미이다. 이것이 질투의 의미일 것이다.



2. 엘로힘(מיהꗟꔤ) ; 창조주

하나님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다. 엘로힘은 구약에서 가장 밀도 있게 반복되는 곳이 창 1장으로 35번 반복되고 있다. 그래서 구약신학적 특징은 창조주 하나님의 특성을 강조하는 하나님 이해이다. 또 창조주와 피조물을 구별하여 하나님의 신성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구약에서 2600번 사용되고 있다. 단수는 ‘엘로아흐’ 이다. ‘엘로힘’은 강조형의 복수이다.

여기서 유일신 사상이 강조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하나님이라는 말처럼 한글 성경이 어느 언어보다 잘 번역하였다고 본다.

엘로힘은 역시 한 분 하나님을 강조하는 일반명사이다.

엘과 달리 엘로힘은 70인역에서 ‘데오스’로 번역이 된다. 이방신들을 지칭할 때는 대개 복수로 사용한다. 출 20:3, 삿 5:8

예외적으로 창 20:13에서는 하나님을 복수로 사용하였다.(3위일체)

시 8:6에서 피조물과 구분할 때 엘로힘을 사용했다.


3. 야웨(הוהי) 하나님

하나님의 주권, 왕권(시 39-119 왕의 시편),하나님의 기념칭호,공식적이름,언약의 하나님으로 6,600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고유명사이다. 주로 언약의 하나님을 말할 때 쓰여지는 이름이다.


참고로 엘은 족장시대의 하나님, 엘로힘과 야웨는 모세시대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만군이 들어가는 하나님은 예언자 시대의 하나님이다. 즉 사무엘 시대로서 한나의 기도에 처음으로 나온다. 이것은 문서설을 반박하는 중요한 자료가 된다.


아도나이 즉 주님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구약자체가 아도나이를 계시적인 이름으로 사용하고 있다.

          

엘 하나님의 궁극적 핵심은 조상의 하나님이다.

엘로힘 하나님은 형태는 복수지만 강조의 복수로서 인간과 구분되는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강조하는 하나님 명칭이다.


야훼 하나님의 이름의 계시는 출 3:14의 모세를 통해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70인역에서 따온 번역으로서 하나님의 자존성을 설명하는 것으로 추정) 주신 이름이다. 그러나 구약적으로 문법적으로 이것은 “나는 모든 만물을 존재케하는 그 존재케 하는 신”으로 읽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은 이것을 존재론적인 동사로 보지않고 행동적인 동사로 보기도한다. 그래서 “나는 행동해야 할 바를 행동하는 나다”로 번역한다. 그래서 행동하시는 하나님 나아가 하나님의 역사적 주권을 강조하고 더 나아가서 인간을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고유명사로서 야훼의 이름은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하나님, 역사의 주권적인 하나님, 인격적인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고대 중동의 문서에도 나타난다. 19세기말에 발견된 주전 9세기 중엽의 ‘모압석비(모압왕 메삭 때)’; 모압이 이스라엘의 야훼로부터 독립했다고 기록한다. 이것이 최초 확인 문서이다. 그러나 주전 9세기 이전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야훼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알려졌다.


발음의 문제 : 여호와 or 야훼 or 야웨 ?

희랍교부들이 이 문자를 히랍어로 음역한 것이 있는데, 거기에서 가장 유력한 음역이 히랍어로 이아베(Ιαβε)이다. 그 외에도 Ιαω, Ιαου, Αια 등이 있다. 그래서 히브리어로 הוהיצ를 야훼(얗ㅜㅐ) 로 발음하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 70인 역에서는 호 퀴리오스(ο κυριος)로 부르기도 한다.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이것은 동어 반복이라고 한다. 영문 번역에서는 I am that I am으로 번역한다. 한글 번역에서는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로서 70인 역(Εγω ειμι ο ων 에고 에이미 호 온)에서 온 것이다. 히브리어에서 하야(היה) 동사는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행동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그래서 “내가 행하는 것(바)을 내가 행하는 자다.”로 번역하는 것이 좋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야웨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 역사를 다스리시는 주권, 인간을 만나주시는 인격의 하나님을 나타내는 고유명사이다.


출 15:18 말라크(קלמ) 또는 멜레크 ; 또 하나님의 왕권을 강조하는 고유명사이다.


출 34:4-7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고전적으로 설명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운신 하나님

하나님은 정의(미슈파트)로운 하나님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공의는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속성이 7가지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정의는 2가지로 나타난다 ; 벌을 면제하지 않는다. 악행을 자손 3-4대까지 보응한다.

이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하나님의 진노와도 연결이 된다. 이런 이해 속에서 구약의 하나님을 이해해야 한다.


43: 6의 자비롭고 ; 하나님의 공의의 첫째 속성이다. 이 말은 라훔(מוחר)이라는 단어를 썼다. 이 말음 레헴(자궁을 뜻한다. מחר)에서 왔다. 다른 문맥에서 라훔은 긍률하신 하나님으로 번역도 된다. 이것은 어머니가 아이를 잉태하여 키우는 마음을 나타낸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로서 하나님의 여성상을 볼 수 있다.

이제까지는 모세때까지의 하나님의 이름이었다.

예언자 시대로 들어오면서 하나님의 이름은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간다.



4. “만군의 여호와”(야훼 츠바오트תואבצ הוהי) ; 깃보르 밀하마 - 전쟁에 능하신, 모든 우상을 멸절하시는,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

70인역에서는 이것을 사바오트(σαβαοτ)로 그대로 음역을 하였다. (롬 5:29, 약 5:4), 또는 엘로헤 츠바오트로 하기도 한다.

이 의미는 무엇인가?

츠바오트(תואבצ) ; 군대, 전쟁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또 만물을 이야기 할 때 사용한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전쟁의 하나님, 우주의 하나님, 전세계의 하나님이 강조가 되는 것이다. 예언 문맥에서 전쟁은 사사시대의 전쟁이 아닌 우상들이나 거짓 신들과의 전쟁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할 때, 예언자는 언제나 우상들과의 전쟁을 염두에 둔다. 이것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것이 렘 10:1-16이다. 여기서의 하나님은 온 이방 신들을 하나님이 전쟁으로 무너뜨리시며, 만물을 조성하는 하나님이라는 내용을 잘 나타낸다. 이 말은 279회가 사용된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처음 나오는 곳이 삼상 11장 한나의 기도에서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예언자적 하나님 이해를 대변하는 하나님의 이름이다. 따라서 모세 오경에는 이 말이 한 번도 나타나지 않는다.


5. 아도나이(ינדא) 또는 단수로서 아돈(נודא) ; 섬기는 종, 목자(הער)

강조의 복수로 되어있다. 이것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는 말로 사용한다. 이것은 약 400회 사용된다. 이 말은 주님이라는 뜻인데, 위 명칭들의 종합적인 의미를 갖는다.  사 1:24, 신10:17, 시 135:5 참고


구약의 하나님의 속성은 야웨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로 나누어지는데 이 속은 초월적 속성으로서 카도쉬(שׁודק) 그리고 온 땅의 하나님으로서 카보드(영광 דובכ)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임재의 하나님으로 무게가 있다는 말이다. 구약신학에서 카도쉬의 본래적인 의미는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윤리도덕적인 하나님을 나타낸다. 그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에 연결된다. 다른 우상적 신들은 다 부도덕하고 비윤리적 신들이다. 그러나 여호와는 거룩한 하나님이다. 이것을 우리가 가르치고 모방하려는 것이다.(분리의 뜻)


에베드 야웨(הוהי דבע) 사 53 주의 종의 노래 ; 주님은 자기의 하시는 모든 구약의 하나님의 일들을 종에게 맡기셨다는 것이다. 이것이 신약에 와서 섬기는 하나님으로 우리에게 계시되었다. 빌 2:15, 막 10:45 하나님이 섬기는 하나님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다. 이것이 성서 신학적으로 하나님 이해의 핵심이다.


이제까지의 하나님은 현존하시는 하나님이고 계시하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숨어계시는 하나님도 말하고 있다. ; 사 45:15, 49:14 시 22:1 ;

신학적 의미 ; 하나님의 불가지성 신 29:29, 시139:6,17-28, 147:5, 사 558-9, 롬11:33-34

하나님이 숨어 계시는 의미 ; 구약에서 하나님은 잊어버리신다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명사로서는 얼굴을 가리운다, 눈을 가리운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하는 문맥이다.


6.엘로앟(Eloah)

두려우신 하나님


7.엘리욘(Eliyon)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시46:4:찬양에 주로 쓰인다)


하나님의 이해 정리

redemptive concern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심

1. 헤세드דסח 이것은 신약의 아가페이다. 언약적관점에서의 자비 긍휼,인애

2. 복주시는 하나님으로 여기서의 복은 이기적이고 소원이나 성취하려는 복이 아니라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복(쁘라카; הכרב)을 말한다.

3.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야샤 העושׁי; 구원 대속 / עשׁי ה꘭)

4. 공의와 정의의 하나님(קדצ / זפשׁמ)

5. 샬롬(מלשׁ) ; 평화는 섬김에서만 온다.


ethical demand 윤리적 요구

1. 질투하시는 하나님(אנקלא) ; 들으라, 순종하라(쉐마 עמשׁ)

2. 창조주 하나님-호크마(המכח); 하나님을 아는 지식·지혜

3. 여호와 하나님-여호와를 경외하라 (이예르하트 야웨הוהי תארו)

4. 야웨 츠바오트-슈브(בושׁ 돌아오라, 돌이키라;회개의 신학)

5. 신뢰(바차 חזב)


'신학강좌 > 구약신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6강 모세 오경 신학1   (0) 2014.12.11
제5강 구약의 인간이해2   (0) 2014.12.11
제4강 구약의 인간이해1   (0) 2014.12.11
제2강 구약신학의 과제   (0) 2014.12.11
제1 강 구약신학의 시작  (0) 2014.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