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신학

제2강 구약신학의 과제

호리홀리 2014. 12. 11. 14:06

제2강 구약신학의 과제



1.현대 구약신학의 동향

J. P. Gabler(1753-1826)는 독일 바트로르프 대학의 교수로 취임하면서 유명한 강연을 했다. 이것이 주요한 기점이 되었는데, 교의신학과 성서신학의 성격과 양 학문의 목표에 대한 분명한 강의를 했다. 그래서 성서신학의 독자적인 분야를 개척하게 되는 기점이 되었다. 가블러의 강의 논문은 18세기 라틴어로 되어있다.

요지 <객관적으로 과거의 역사속에서 그렇게 기술할 수 밖에 없었는가를 기술하는 것이 성서학자의 일이다. 그러나 교의신학은 오늘날 진리로 받아들이고 신앙의 규범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을 주제별로 정리하는 학문으로 더 이상 성서신학의 내용이 아니다.>


이러한 주장을 한 가블러의 스승

J. S. Semler(제믈러)(1725-91) ; 구약신학사의 혁명적 연계 주장했다. 술라이에르마허의 세속신학과 성서신학의 구분을 없엔것에 비견된다. 고대 중동 역사의 가치를 평가하고 왜 그런 내용이 나왔는가를 기술함으로 성서신학자의 역할은 충족된다.


가블러의 주장에 의해서 구약신학을 쓴 최초의 인물 ; 현대 구약신학의 시작

G. L. Bauer(1755-1806)  튀빙겐의 구약성서 신학자 1796년


헤르만 궁켈(H. Gunkel 1862-1932) ; 구약신학이나 성서신학이 이스라엘의 종교의 역사를 역사적으로 서술해서 종교사적으로 변질되어가는 경향이 나타나자, 구약신학은 하나님이 무엇을 계시하셨는가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게 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람이 G. von Rad이다.

폰 라트 이후에 그 약점을 보완하는 학자들이 나왔다.

후기 폰 라트 학파의 수정 ; 모든 종교 행위 특히 이스라엘의 종교행위의 특징은 제사행위에 있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제사하는 행위가 성서신학의 중심이라고 생각.

바우어의 계열을 따르는 사조를 'Liberal(자유주의)'이라고 한다.

그러면 보수신학의 흐름은 어떤가? 구약의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가 어떻게 나타났으며 정리한 학풍이다.

벨하우젠이 나오면서 독일 교회와 신학계는 큰 갈등을 겪었다. 이 때, 베를린 신학대학의 구약학 교수 E. W. Henstenberg(1802-1869)는 「구약의 기독론」이라는 책등 많은 저술을 통해서 자유주의 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다.

미국에서도 자유주의적 신학의 흐름을 반대한 학자가 W. H. Green이다. 그는 프린스톤의 구약학자로서 보수적 학자로서 문서설을 반대하고 계시적 신학을 강조했다.

20세기 전반에 스위스 출신의 독일어권의 W. Vischer은 보수적인 학자이다.

미국에서 동시대의 마지막 보수적 구약학자 ; Geerhardus Vos는 「성경신학」 또는 「성서신학」을 출간했다.

이것을 계승한 것이 박윤선의 「성경신학」이다. 이 책은 위의 책을 편집해서 엮은 책이다.


1950년대로 오면서 프린스톤과 웨스터민스터 신학이 분리된다.

후자의 보수학자 ; E. J. Young(구약총론), O. T. Allis

60년대 이후 대표적 보수학자 ; B. Payne


2.중도적 입장들 (Moderate)

튀빙겐 학자 G. H. Oehler(1812-1872) ; 죽음 후에 출판된 「구약신학」은 19세기 말 독일어권의 전통적 구약신학을 집대성한 책으로 구약신학의 금자탑으로 인정받는다.


후에 중도파의 흐름은 신정통주의로 간다. 신정통주의는 방법론적으로 내재(역사비평적 방법)를 추구하고 내용은 초월적으로 간다. 그러나 결론적으로는 실패했다.

O. Procksch ; 모든 신학은 기독론이다 라고 주장.

A. B. Davidson ; 「구약신학」.  영국출신

W. Eichrodt ; 계약신학의 대표적 저서 출판

Th. C. Vriezen ; 화란 출신.

* 신약적으로는 오스카 쿨만이 활약했다.



3.급진주의 Radical

역사적 현실적으로 문제가 된 입장이다. 그 시작은 초대교회의 마르시온이다.

F. Baumgartel / 신약의 R. Bultmann / 하르낙 등이다.

N. K. Gottwald 「야웨의 부족들」 ; 이스라엘의 태동기를 사사시대로 보고 이 시기를 인류가 실현한 최초의 평등사회로 보고 이것을 막스적 유물사관으로 해석해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해석했다. 그래서 이것을 유물론적 사회학적 성서해석 방법이라고 한다. 야웨는 초월적 존재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말한다.



4.근본주의 Fundamental

축자영감설 Verbal inspiration(“언어 영감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맞다) ;

우리나라에 도입한 학자는 맥킨타이어이다.


5.한국에서의 구약 성경신학의 흐름

한국에서 성경신학에서 구약에 대한 논문이 1916. 2의 감리교 신학교의 「신학세계」에서 최초로 다루어 졌다. 이 최초의 신학지에서 양주삼, “구신약전서 총론”을 연재하였다. 이것이 구약신학의 시발점이다.

양주삼씨는 친일행각을 했는데 후에 후회하며 시베리아 등지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1918년 평양신학교의 「신학지남」을 최초로 창간하였다. 여기서 구약신학 논문들이 계속 소개되었다. 지금은 총신대가 이것을 가져갔다. 장신대는 「교회와 신학」을 출간하고 있다.


1953년 기장과 예장의 분립이 있었다. 그 성서신학적 명분은 성경의 고등비평 수용문제였다. 1934과 1935년의 사건이 기폭제였다. 당시 김영주 목사가 창세기는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고 가르쳤다. 이것이 교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그리고 「아빙돈 단권주석」(유형기 편) 즉 고등비평의 영향을 받은 주석이 문제가 되었다. 여기서 김재준과 박형룡의 성서논쟁 즉 고등비평의 수용논쟁이 계속되었다.

1960년대에 들어 이들의 논쟁으로 인해서 성경관(신학적 입장)이 문제가 되었다. 여기에서 통합과 합동이 갈라지게 되었다. 구체적으로는 WCC 가입의 문제로 나타났다.

    진보      세속화         인권운동

    자유      토착화         다원주의

구약신학도 이 흐름을 따라 나가게 된다. 장신대는 사상사적으로는 급진 / 자유/ 중도(신정통주의)/ 정통보수/  근본주의 가운데 중도에서 보수까지를 수용하고 있다.

급진은 초월을 부정하기 때문에 신앙적으로는 대화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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