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 3:16,타락 후의 가정

호리홀리 2015. 4. 28. 11:40

타락 후의 가정(창 3:16)

순기능적인 가정은 역기능적인 가정으로 전도된다. 원래의 창조질서에 나타난 부부간의 친밀감과 연대감과 책임감과 사랑은 불화와 책임전가와 불신으로 왜곡된다. 하와는 원래 여자는 자녀 생산의 축복을 받았고(1:28), 행복한 결혼 생활의 축복을 받았다(2:18). 이 양면적 축복이 이제 저주로 얼룩진다. 하와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언도는 먼저 그녀의 자식에 대한 것이고, 이어 남편과의 관계가 나온다. 자식의 출산에 있어서는 더욱 아픈 고통 가운데 해산을 해야한다. 남편과의 관계도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배경 속에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말씀을 주신다. 



   1) "너는 남편을 사모할 것이라"(3:16 상)



   수잔 포(Susan Foh)는 "사모하다"라는 동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을 다음과 같이 잘 열거하고 있다.6) (1)이것은 "성적인 욕망"이다. 여인이 남편을 열망하는 마음이 "너무 강하여 아이를 갖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받아들인다"(D. R. Mace). 여인은 결혼의 성관계를 원하여 아이를 갖고 낳는다. (2) "자발적으로 남자의 종이 되려고 하는 욕망"(J. Skinner), 혹은 "강열하고, 달라 붙는 마음으로 남자를 의지하는 마음이다"(A. Andrews). 카일은 "병적인 열망"으로 본다. (3) 칼빈은 "여인이 그녀의 남편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것이며, 자신에 대한 주권을 잃는다"고 본다. 그렇지만, 여자가 남자보다 성적인 욕망이 강하다거나, 여자가 남자를 의지하는 것을 여자가 좋아하며 사모한다는 것은 우리의 경험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또한 "사모하다"는 동사는 꼭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는다. 이 동사(테슈카; 어근, 샤카/ 슈크)는 구약성경에서 오직 세 번(창 3:16; 4:7; 아가 7:11) 나타나기 때문에 그 의미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동사의 어근은 기본적으로 "간절히 원하다, 열망하다"로서 꼭 성적인 욕망이라고 말할 수 없다.

   이 동사는 아랍어에서 (1) 샤카(shaqa), "몹시 바라다, 욕망을 불러 일으키다"와 (2) 사카(saqa), "충동하다, 몰다, 재촉하다"는 뜻을 가지므로 꼭 성적인 욕망이 아니다. 또한 창세기 4:7에서 이 단어는 가인의 아벨에 대한 미움이 너무나 격렬하여 동생을 죽이고 싶어하는 격정이 지속적으로 솟아나는 것을 보여주며, 아가서 7:11에서는 사랑하는 애인 사이에 있는 견딜 수 없는 갈망을 묘사해 준다. 따라서 이 단어를 성적인 욕망으로 보는 것은 포괄적이기 보다 제한적이다. 그렇다면, 여인은 무엇을 사모하는 것인가? 수잔 포는 창세기 4:7에 근거하여 "여인은 죄가 가인을 열망하듯 자기 남편을 열망한다. 즉, 소유하려거나 지배하려는 욕망이다. 이 욕망은 남편의 머리됨에 대한 논쟁을 야기한다"(382쪽)고 해석한다.

   포는 계속하여, "이것은 성의 전쟁의 시작이다. 타락의 결과로 남자는 더 이상 쉽게 여자를 다스리지 못한다. 그는 자기 머리됨을 위해 싸워야만 한다. 죄는 아내의 자발적 복종심을 부패시켰고, 남편의 자애로운 다스림도 부패시켰다. 여인은 남편을 다스리길 사모한다. 따라서 낙원에 세워진 사랑의 통치가 갈등과 폭력과 지배로 대치된다. 그녀는 부부 관계에서 지도력을 위한 싸움을 그와 하기를 사모한다. 따라서 남자는 자기 아내를 능동적으로 다스리길 구해야만 한다"(382쪽).

   이 본문은 아담과 하와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므로 "너는 남편을 사모하리라"는 진정한 의미에서 무조건적이며 순수한 사랑으로 볼 수 없다. 히브리어에서 진정한 의미의 사랑은 다른 용어(아하브, 헷세드)로 표현되며, 여기에서는 "열망하다"는 뜻을 가진 동사로 제시되므로 수잔 포의 해석은 원문의 의미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2)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다스리다"(mashal)는 동사는 양면적인 의미를 가진다. 먼저 이 단어는 창세기 1:18에서 태양과 달이 "주야를 주관하게 하다"(mashal)로 나타난다. 즉, 해와 달이 자연 질서를 따라 낮과 밤의 순환을 "주관하며" 이루어 가는 것이다.

   특히 이 단어(mashal)는 창세기 1:26, 29에서 인간이 동물을 다스리는 지배권에서는 나타나지 않고, 다른 단어(radah)가 나타난다. 후자는, "짓밟다, 지배하다, 주권을 행사하다"(to tread down, have dominion over)는 뜻이다(BDB 921-22). 따라서 "다스리다"(mashal)는 지배와 복종을 시사할 수 있지만, 꼭 "독재적인 권력을 사용하다는 뜻은 아니다"(J. Skinner). 비록 타락 후이지만, 사람이 짐승을 지배하는 것과 남편이 자기 아내를 다스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렇게 보면, 남편이 아내를 "주관하며" 나아가 "위로하다, 보호하다, 돌보다, 사랑하다"는 뜻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다스리다"(mashal) 동사는 구약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주인이 하인을, 임금이 신하를 다스릴 때의 지배와 종속을 말할 때 사용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인간의 타락 후 남편과 아내 사이에 중대한 관계의 변화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남편과 아내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로 변질된다. 타락 전에 남자의 "다스림"(mashal)은 죄로 오염되지 않은 통치였으나, 타락 후에는 폭군적이 되었다(수잔 포 28). 이런 관점에서 보스는 창세기 3:16에서 "다스리다"는 "억압하다, 지배하려 하다"를 시사한다고 본다(Vos 25). 이것은 원래 이상적인 부분의 관계는 아니었는데, 이제 타락으로 말미암아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로 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보면,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선언 속에는 거칠게 착취당하고 있는 여성의 모습이 나타난다.7) 정리하자면,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이상적이고 행복한 부부 관계의 규범이 아니며, 타락 후 변화된 부부 관계의 병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우리는 히브리어 구문 구조와 히브리 시의 평행법을 따라 본문을 새롭게 볼 수 있다. 본문의 구조는 창세기 4:7과 동일하다.

  

"죄의 소원(teshuqa)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mashal)."




   즉, 가인 속에는 "죄를 사모하는 것"(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과 "죄를 다스리고자 하는 마음"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저자가 생략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죄가 가인을 [다스리기를] 사모하나(teshuqa),

가인이 죄를 다스리도록(mashal) [사모할찌니라]."




   이런 히브리 시의 생략법을 본문에 적용해 보면 다음과 같이 해석된다.

  

"너는 남편을 [지배하기를] 사모하고(teshuqa),

남편은 너를 지배하기를(mashal)[사모하리라]."




   우리의 결론을 문맥도 지지해 준다. 창세기 3:16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고,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들 중 먼저 여자에게 심판을 선언하고 있으므로,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부부관계의 규범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기 힘들다. 오히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남편과 아내가 가정에서 서로를 지배하기 위한 치열한 주도권 싸움을 펼칠 것임을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 원래는 아내와 남편이 완전한 반려자였으나, 이제는 두 관계가 왜곡되어 서로 주도권을 쥐기 위해 싸우는 모습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