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4:1-2,가인과 아벨

호리홀리 2015. 4. 28. 10:04

가인과 아벨(4:1-2)



   가인이 충동적으로 아벨을 살해하게 되었다는 것보다 긴 과정 속에서 형성된 그의 우월감이 상처를 받은 후 아벨을 의도적으로 유인하여 죽인 것으로 보게 한다. 가인의 우월감은 그의 어머니인 하와의 첫 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남자('ish)를 낳았다"로부터 시작한다(1절).

   왜 하와는 "내가 아들을 낳았다"(개역)거나 혹은 "남자 아이를 낳았다"(표준새번역)고 말하지 않고 "남자('ish)를 낳았다"고 말하는가? 유대의 미드라쉬인 <아담과 이브의 생애> 21:3에 따르면, "가인은 태어나자 마자 활기가 넘쳤으며, 즉시 이 아이는 일어나 달렸고 자기 손에 갈대(히브리어 qaneh)를 가져와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으며, 이리하여 그의 이름이 가인(qayin)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하와는 너무나 잘생기고 똑똑하고 건강한 아들을 낳고 마치 자기 남편 아담에 비기는 "남자를 낳았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 같다.

   가인은 태어날 때부터 "남자"였다. 여기에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라는 말은 "주님의 직접적인 개입으로"라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와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도움을 언급함으로써 창세기 3:15에 명시된 인류를 장차 구원할 "씨"(여인의 후손)에 대한 약속을 벌써 얻었으며 이런 약속을 이렇게 쉽게 이룬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는 듯 하다.

   혹은, 이 구절을 "나는 주님과 똑 같이 남자를 창조하였다"(I have created a man equally with the Lord)고 번역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하와는 주님께서 사람을 만든 것처럼, 자신도 사람을 만든 것을 자랑하고 있는 셈이다. "첫 여인은 첫 아들을 낳고 기쁨에 넘쳐 자신의 창조적인 힘을 자랑한다. 그녀는 자신이 거룩한 창조력을 가진 것으로 여긴다. 주님께서는 첫 사람을 만드셨고(2:7), 나는 두번째 남자를 만들었다. 나도 '창조주의 반열에서 그와 동등하게 서있다' ".

   "가인"이란 이름도 흥미롭다. 이 이름은 "창, 투창"(삼하 21:16)을 뜻하기도 하며, "만드는 자, 창조자"를 뜻하기도 한다. 아랍어에서 가인은 철을 다루는 자, 즉 "대장장이"라는 뜻이다. 창세기에서도 두발가인이 철 연장의 아버지이다(4:22). 하와는 첫 아들을 낳고 자신의 창조력을 자랑하며 이와 동시에 첫 아들에게 희망을 건다. 가인은 장자로서 하와의 "창"도 되며, "창조자"로서 미래를 개척하고 창조하는 자이다. 혹은 "소유자"라는 뜻으로 이해한다면(강사문 48), 가인은 장차 물질적인 복을 독점하여 하와의 집에 복덩이가 될 것으로 기대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하와는 자신의 모든 희망을 힘과 능력의 화신으로 보이는 가인에게 걸고 있다. 자신의 능력과 장남에 대한 지나친 기대를 갖고 있는 하와는 가인을 위해 치마바람을 많이도 날렸을까?

   하와는 이어 아들을 더 낳고 그 이름을 "아벨"이라고 한다(2절). 이 이름이 충격적이다. 동양에서 이름은 어떤 운명과 미래를 시사하는데, 하와는 둘째 아들을 "아벨" 즉 "거품, 무"로 부르고 있다(시 144:4. 욥 7:16). 마치 아벨에게는 생명의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가인은 활기 자체이지만, 아벨은 정체가 없다". 하와는 아벨에게 전혀 희망을 걸지 않으며 마치 그를 "타고난 낙오자"(born-looser)처럼 여기고 있다. 어쩌면 하와는 아벨을 "형의 그늘 아래에 두고 있는 것 같다"(틸리케 192). 장남에 대한 어머니의 "편애"와 왜곡된 서열의식으로 짜여진 가정의 구조는 이미 어떤 비극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또한 하와의 모습은 장자 중심의 가정 구조를 짜고 있는 우리 주위의 모든 어머니의 모습이 아니며, 가인(기득권자)과 아벨(소외자) 이야기는 우리의 장자와 차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는 말을 통해 저자는 두 형제는 가정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노동의 분업을 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가축을 기르는 것과 농사하는 것은 삶의 두 영역이었다. 창조 기사의 관점에서 보면, 아벨이 양치는 것은 "모든 육축을 다스리는 것"이며(1:26, 28), 가인이 "땅을 가는 것"은 에덴 동산의 시작과 끝 이야기와 이어진다(2:5; 3:23).

   현시점에서 "유목"과 "농경"의 두 직업 사이에는 아무런 갈등도 나타나지 않는다. 두 형제는 각자의 몫을 동등하게 가지고 있으며, 상대방의 직업을 멸시하고 있지도 않다. 따라서 "땅의 경작자들"이 "유목민"을 멸시하였다거나(von Rad) "도시민과 유랑민 간의 알력"이 여기에 나타난다(서인석 121)고 보는 사회학적 해석은 지나쳐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