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1:24-31,인간창조

호리홀리 2015. 4. 27. 11:02

여섯째 날: 동물과 인간으로 채우심 (1:24-31)



   여기에는 크게 두 종류의 창조가 나온다. 즉 땅에 거하는 "생물"과 "인간"이다. 땅의 생물은 다시 셋으로 나누어져, "집짐승" (육축), "땅에 기는 짐승"과, "들짐승"으로 나누어진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누어진다.


   하나님은 동물과 식물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신다. 그들의 형태와 구조와 성격을 주님께서 다 만드시고, 그 다양성으로 천지를 채우신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선인장과 제비꽃의 모습 속에 하나님의 아련한 영상이 배여 있다. 즉, 이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필"이다 (틸리케 48).

   다시 한 번 하나님의 명령이 나타나며 (24절), 그리고 평가가 뒤따른다 ("그렇게 되니라", 25절). 25절은 24절에 아주 중요한 것을 첨가하고 있다. 11절에서는 "땅이 채소를 내도록 한다". 그러나 25절(하나님이 들짐승을 만드셨다)은 하나님이 생물을 만드신다는 점을 강조한다. 식물과 동물을 만드는데, 명령은 같지만, 이 두 형태의 생명은 다른 기원을 갖고 있다. 식물은 땅에서 나오며, 생물을 하나님 자신이 만드셨다.

   창조 기사에서 인간 창조가 그 절정을 이룬다. 모든 드라마나 오페라에 있어서 절정에 도달하면, 숨을 죽이며 듣는다. 결혼식에서도 서약을 할 때, 숨을 죽인다. 하나님은 이제 그동안 창조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어떤 것을 만드려고 하신다. 그는 자신과 가장 닮은 존재를 만들어 보려고 하신다. 이 인간이란 존재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에 대해 생각도 해보셨을까?

   이들이 정말 나의 창조의 절정이 될 것인지, 아니면 창조의 흉물이 될 것인지? 이들이 진정 나를 닮은 자가 될 것인지, 혹은 자신을 신이라고 주장할 것인지, 이들 가운데 마리아 데레사 같은 성인이 나올 것인지, 혹은 히틀러 같은 인간이 나올 것인지 하나님은 생각해 보셨을까?

   앞에서 주님은 인간의 거처인 땅 (9-13절)을 준비하였고, 그 생명의 순환을 결정하는 해와 달과 별을 만들었다 (14-19절). 이제 인간 창조로 넘어가면서, 인간 존재의 의의를 말하고 있다. 인간 창조는 앞에 있는 다른 창조와 다르게 독특하다. 저자는 미묘한 변화를 만들고 있다.



   ① 먼저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라는 전형적인 형식이 나온다. 그러나 하나님의 명령은 3인칭 명령 "있으라" (let there be)가 아니라, 보다 인격적인 1인칭 명령인 "우리가 만들자"로 시작한다.

   ② 앞에서는 "그 종류대로" 생물을 만들지만, 인간 창조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의 모양 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진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닮은 것이 아니라 그들의 창조주를 닮았다. 오경 저자는 인간을 소개할 때, 동물과 다르다는 점 뿐 아니라,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 인간은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특별한 존재이다.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것은 이원론적인 생각을 배제해 준다. 인간의 몸과 영혼은 총체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표현하고 있다. "육체는 경멸하고 영혼을 높이도록 애쓰라"고 말하지 않는다.

   ③ 인간 창조는 "남자와 여자"로 만들어진다. 다른 생물에서 성구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지만, 인간에서는 아주 중요하게 부각된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다." 원래 사람은 남녀가 서로 잘 어울려 살도록 지어졌다.

   ④ 인간 창조의 목적은 땅을 다스리는 것이다. 오직 인간 만이 하나님의 창조계를 다스릴 수 있다. 인간은 모든 생물을 다 다스린다. 공중과 바다와 땅에 있는 모든 생물이다. 주님은 인간을 자연의 지배자로 만드신다. 이것은 인간의 원래의 모습이다. 그러나 그의 "지배"는 착취나 위협이나 권력의 남용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을 잘 돌보고 가꾸는 데 있다. 하나님은 단지 인간을 모든 피조물의 먹이 사슬 중에서 최고로 높은 층에 있도록 만들었다는 뜻도 아니며, 삼라만상의 귀족으로 세우셨다는 뜻도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가장 고등한 존재로서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을 메시야 왕처럼 돌보고 다스리도록 지음받았다.

   ⑤ 인간 창조에서 하나님이 "복을 주신" 모티프가 중요하다. 창세기와 오경에서 "복"은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생물들은 이미 다섯째 날에 복을 받았다 (1:22). 하나님의 축복은 모든 생물에게까지 다 확대된다. 그러나 인간이 받은 복은 특히 후손의 복이며, 후손을 통해 문화적 사명을 이루도록 한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축복은 "후손"과 "생명" 개념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 문화란 결국 생명의 질을 높이는 것이다.

   ⑥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는 평가 형식 (4, 10, 12, 18, 21, 25절)이 여기에서 세가지로 수식되어 최종 작품의 완전성을 강조해 준다. 먼저 "모든 것"이다. "좋았다"는 온 창조에 적용되고 있다. 개체 뿐 아니라 전부가 좋다. 둘째로, 일반적으로 앞에서처럼 "이는" 대신에, 여기에서는 "참으로"가 나온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일을 마치셨을 때, 흥분했음을 말해준다. 셋째로, "심히 좋았다"는 완전한 조화가 이루어졌음을 말해준다.

   ⑦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의 형식은 독특하다. 앞에서는 "한 날" (day, Xth) 형식으로 나오지만, 여기에서는 정관사가 나와, "제 여섯째 날" (day, the sixth)로 부른다. 이 형식은 인간을 만든 날과, 안식일을 묘사할 때만 나타난다. 안식일은 "제 이레" (day, the seventh)로 불린다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