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1:1,천지창조

호리홀리 2015. 4. 27. 10:45

 창조주 하나님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구절은 천지 창조의 선언적 요약일 뿐 아니라 창세기 전체의 표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이 표제 아래에 10개의 톨러도트(대략)가 뒤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10개의 톨러도트는 모두 천지창조의 후예들이 된다. 따라서 여러 역사 비평가들이 주장하는 바 1:1-2:4 상반절까지를 한 단락으로 보고, 2:4 상반절을 첫 창조 기사의 표제로 보는 입장은 인위적인 문서설의 기준으로서 이것은 창세기의 구조를 왜곡시키는 것이다.

   창세기 1:1은 창조 기사 전체의 선언적인 요약이다. 히브리어로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일곱 마디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는 7이라는 완전 수를 통해 하나님 창조의 완전함을 담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일곱 마디가 담고 있는 내용은 (1) 태초에 (2) 하나님이 (3) 천지를 (4) 창조 하시니라는 네 가지이다. 이 네 가지 말씀이 모든 성경 내용의 근본이 된다. 또한 이 네 가지 말씀은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을 준다. 즉 이 세가지 질문은 아래와 같다.

   (1) 세상은 언제 어떻게 생겼는가?

   (2) 누가 이 세상의 주인인가?

   (3) 첫 창조는 오늘 우리의 삶과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므로 1:1은 창조주를 소개하며, 세상의 기원을 설명하고, 창조 질서와 구원사의 근본을 세우는 삼중적 목적을 가진다. 우리는 1:1에 담긴 네 가지 가르침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1) "태초에"



   성경은 "태초에"라는 심오한 말씀으로 시작한다. "태초에"라는 말씀은 시간 속에 살고 있는 인간들의 근본적인 한계를 드러내어준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욥 38:4). 우리는 이 "태초"가 정확하게 언제인지 모른다. 성경 저자도 이 때가 언제인지를 내는 데 관심은 없다. 그는 천지가 창조된 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지만, 연대에는 관심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초에"라는 말씀은 창조의 역사성을 말해준다. 우리는 창조가 언제, 어떻게 다 이루어졌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생긴 한 순간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다.

   달리 말하자면, 이 "태초에"는 어떤 추상적이거나 개념적이거나 형이상학적인 실체가 아니며, 바로 역사의 시작이었다. 이 역사성은 창조의 사실성을 말해주며, 우리 신앙이 역사성과 사실성을 띠고 있음을 처음부터 강조해 준다. 우리 신앙의 모든 요소와 부분은 철저하게 역사적이다. 이 역사성이 우리의 신앙 개념에서 사라질 때, 우리의 신앙은 역사적 책임은 외면하고, 몸이 없는 영혼의 세계만을 찾는 가현설에 떨어지고 말 것이다. 요한 복음의 저자도 "태초에"로 자신의 복음을 시작한다. 요한은 창세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로고스로서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하셨으며, 또한 그 자신이 하나님이었다고 말한다 (요 1:1).



   2) "하나님이"



   이 세상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가 만물을 만들었기 때문에 소유하신다. 이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이방의 신들과 다른 분이다. 그는 천지와 그 안에 있는 만물을 의인화시킨 어떤 가공의 존재가 아니며, 온 세상을 설계하시고 시공하시고 완공하신 건축자 같은 인격적 존재이시다. 그는 태초 이전에 스스로 계신 분이었다.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시기 전에 무엇을 하고 계셨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루터는, "하나님은 미주알 고주알 케묻기 좋아하는 자들을 벌주기 위해 스위치를 만들고 계셨다"고 대답하였다. 이제 주님은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온 세상을 만드신다. 이 하나님은 세상으로부터 초월해 계시며, 자존하시고, 거룩하신 인격적 존재이다.

   창세기 전체의 맥락에서 볼 때 이 창조주 하나님은 족장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열국의 신들과 본질적으로 다른 분이시다. 열국의 신들은 우상일 뿐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이것을 예레미야가 잘 말했다.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10:11).

   "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시 96:5).

   창세기의 맥락을 넘어 오경의 맥락에서 보면, 이 창조주 하나님은 족장의 하나님일 뿐 아니라, 바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다. 창조주 하나님은 "얼굴 없는 신적 존재"가 아니다. 그는 족장을 부르시고, 자기 백성을 이집트에서 속량하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며,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신 분이다.



   3) "천지를"



   성경에서 천지는 단지 창공과 땅 만을 말하지 않는다. 히브리어에는 "우주" (cosmos, universe)라는 말이 없기 때문에 "천지"는 "짜여진 우주"로서 모든 "만물"을 포함한다 (전 11:5; 사 44:24; 렘 10:16; 요 1:3). 달리 말하자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주님으로부터 나왔다 (시 33:6; 히 11:3).



   4) "창조하시니라"



   "창조하다" (bara)는 동사는 두개의 특징을 가진다.

   (1) 하나님이 항상 이 동사의 주어이며, 인간이나 그 어떤 신도 주어로 나타나지는 않는다. 그 어떤 이방신도 창조자로 성경에서 소개되고 있지 않다. 우리는 가끔 "새 역사를 창조하자" 혹은 "새 나라를 창조하자"는 정치적인 슬로건을 내걸지만, 결코 인간은 창조할 수 없다. 인간은 "만들고" "빚고" "세울 수는 있지만", "창조"는 하나님의 영역이다.

   (2) 이 동사는 전치사나 목적격을 가지지 않는다. 즉 하나님은 그 어떤 기존하는 것을 수단으로 사용하여 "창조"하시지 않는다.

   (3) 창조의 산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인간 (창 1:27)과 예기치 않은 새로운 것 (민 16:30; 사 65:17)이다. 이 새로운 것으로 가끔 큰 물고기 (창 1:21), 산 (암 4:13), 동물 (시 104:30)이 언급된다. 창조하다 (bara)라는 용어에 근거하여 볼 때 "무에서 유의 창조"라는 입장을 만들 수 없다. 예로서, 이스라엘의 창조 (사 43:15)와 "새 마음의 창조" (시 51:10)에도 이 동사가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무에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입장은 다른 구절에서 명시되고 암시된다 (시 148:5; 잠 8:22-27). "무로부터의 창조"라는 용어는 막카비서에 가장 먼저 나타난다 (마카비 2서 7:28).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용어는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하는 데만 사용되며, "하나님의 주권적이고, 자유스러운 창조 행위"를 가리킨다.

   일곱 개의 단어로 구성된 이 첫 절은 창조주와 창조의 역사성에 대해 명백한 선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절은 선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이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다 (Westermann, 94). 시편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할 때,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Creator of heaven and earth)로 부른다. 이 고백이 창세기 1:1에서는 동사 문장으로 바뀌어졌다. 창세기의 첫 줄 자체가 찬양의 외침일 뿐 아니라, 창세기 1장 전체가 찬양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