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3:1-5,사탄의 유혹

호리홀리 2015. 4. 16. 13:06

 언약적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1. 시험하는 자의 유혹(3:1-5)


   저자는 뱀이 다른 들짐승 중 "가장 간교하더라('arum)"고 말함으로써 2장 이야기와 이어간다. 이 단어는 바로 앞 2:25에서 남자와 여자는 "벌거벗었으나('erom)"와 비슷한 발음을 갖고 있다. 또한 저자는 "뱀의 간교함"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의 실마리를 주고 있다. 즉, 간교한 뱀은 여자를 유혹하는 데 성공하였으며, 여자는 선악과의 과실이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워 보여" 따먹었지만(3:6), 결과적으로 자신을 지혜로 단장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벌거벗음('erom) 만을 발견하고 숨게 된다(3:7, 10). 이리하여 뱀이 제시하는 "지혜"추구와 인간의 "벌거벗음"이 서로 이어지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뱀이 "간교하다('arum)"고 말할 때,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지혜와 능숙함을 제시하며, 항상 부정적인 뜻만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가 이 특성을 개발해야 하는 "슬기로움"으로 나타난다(잠 12:16; 13:16). 따라서 저자는 뱀을 "지혜로운" 자로 묘사함으로써, 인간의 타락과 지혜 추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첫 남녀의 타락은 극악한 행동이나 큰 반역이라기 보다, 잘못된 지혜를 찾는 데 있었다. 그들은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좋은 것(tob)"을 모두 갖고 있었지만(창 1:31), 뭔가 더 좋은 것을 원한다. 그러나 그들이 탐한 "더 좋은 것"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금하신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이 금하신 것을 가지려고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도전하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한다.

   여기에서 뱀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 하나"이므로, 초자연적 존재로 비추어지지 않고 있다. 물론 후대의 성경에서는 뱀이 사단으로, 대적자로, 하나님의 철천지 원수로 나타나지만(요일 3:8; 롬 16:20; 고후 11:3, 14; 계 12:9; 20:2), 여기에서는 아직 이 뱀이 사탄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뱀은 어쩐 일인지 사단의 화신처럼, 혹은 사단의 대리자처럼 일하고 있다.

   이 뱀의 "간교함" 속에 사단에게 자신을 자발적으로 주는 내적인 동기가 있었을 것이다. 왜 저자는 뱀을 등장시켜 여자를 유혹하는 존재로 만들었을까? 고대 근동 아시아의 세계에서 뱀은 생명과 치료와 지혜의 상징으로 나타난다. 가나안의 풍년 종교의식에서는 뱀이 바알을 상징하고 있다. 오경의 모형론적인 관점에서 보면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서 뱀은 부정한 동물들 중 그 원형으로 여겨진다.

   몸을 비틀면서 굴러가는 모습은 정결한 동물의 모습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따라서 구약의 동물 상징법에 따르면 뱀은 가장 비정상적이며, 하나님에 대해 적대적인 세력으로 사용되기에는 가장 적합한 존재였다. 이후의 성서 이야기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크게 대적하는 리워야단과 라합도 뱀으로 나타나는 것이 이런 이유 때문이다.

   뱀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라는 사뭇 진지하고 순진한 질문을 여자에게 던진다. 뱀은 "하나님"을 언급하면서 매우 종교적인 주제를 가져온다. 뱀 자신이 "종교적 동물"로 둔갑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해 여자와 논의하는 "신학자"로 자처하고 있다. 또한 뱀은 동산 안에 있는 유일한 금령 문제를 가져오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법적인 존재"로 등장시키고 있다. 나아가 뱀은 "먹는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자신을 "지혜자"로서 이브에게 한 수 가르쳐 주겠다는 태도로 접근한다. 여기에서 뱀이 "무신론적인 괴물"이나 "혼돈의 짐승"으로서 온 세계를 미움과 파탄으로 이끌어 가는 존재로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이브의 친구로서 이브의 가장 큰 관심으로 여겨지는 종교적-법적-사회적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고 한다.

   뱀은 "참으로"라는 서두로 말을 시작하면서, 어떤 의심과 놀람을 불러 일으킨다. 마치 자신도 믿을 수 없는 풍문을 들은 것처럼 미묘하고 은근하게 불쾌한 감정을 여자에게 불러 일으키며, 그 스스로는 시치미를 떼고 있다. 그는 "먹지 말라"라는 부정적인 것에 촛점을 맞추고 있으며, 나아가 "모든 과실을 먹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오직 "선악과만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금령을 왜곡시킨다. 또한 "말하셨느냐?"는 질문을 통해, 그는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명령을 의문형으로 바꾸어 버렸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 마치 "너희는 그 어떤 나무의 실과도 먹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잖니?"라는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이것은 원래 하나님께서 너그럽게 주신 것을 완전히 뒤집어 엎는 것이다. 뱀은 하나님의 명령을 심하게 왜곡시키고 있다. 또한 흥미롭게도 뱀은 주님의 이름(여호와)을 부르지 않고 "하나님이"라고 말함으로써,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거리를 두고 있다. 



   뱀의 말을 듣자마자 이브는 갑자기 자신에게 뭔가 부족한 것이 많다는 느낌을 가진다. 그동안 그녀는 동산 안에서 부족한 것이 없었다. 에덴 동산은 완전한 삶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브는 뱀의 선전을 듣자 말자 깊은 심리적 박탈감과 결핍을 느끼게 되었다. 그동안 그녀는 남편과 함께 "벌거벗고 있었지만" 부족함이 없었다(2:25). 그러나 이제 자신이 가장 중요한 인생의 비밀을 모르고 있으며, 뭔가 빠진 텅빈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이리하여 여자는 뱀의 말을 수정해 주지만, 정확하게 말하고 있지 않다. 주님은 "모든 실과를 마음껏 먹으라"고 말했으나(2:16), "모든"을 빠뜨리고,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로 이브는 희석시킨다. 그녀는 또한 선악과에 대해 "만지기만 하여도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한다. 여자는 주님의 말씀을 이렇게 가볍게 바꾸어 버림으로써 뱀에게 더 가까워져 버렸다. 이리하여 그녀는 하나님을 인색하고, 강압적이고, 간섭하며 자유를 박탈하는 존재로 만들어 버렸다.

   여자의 대답을 듣자, 뱀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고 아주 강하게 말한다(4절 상). 오히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처럼 될 것을 하나님이 아신다"고 말한다(5절). 여기에서 "하나님이 아신다"가 핵심단어이다. "하나님이 너희들에게 모든 진실을 다 말씀하지 않았고, 반만 말해주었다"고 제시한다. 뱀은 마치 자신이 모든 것을 알며, 모든 진실을 다 말하는 자처럼 나타난다. 뱀의 말에도 진실이 있다. 사실 아담은 자신의 수명을 다하기까지 죽지 않았다(5:5). 또한 하나님은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와 같이 되었다"(3:22)고 말하심으로, 뱀의 말이 진실한 것 같이 보인다. 그렇지만 뱀은 반쪽 진실만을 말했다. 궁켈이 말한 것과 같이 뱀이 그들로 먹어야 한다고 직접적으로 명령하지 않았다는 점이 너무 절묘하다. 뱀은 속임수의 천재였다.

   이리하여 뱀은 하나님을 "인색한 자"(1절)로 만들며 이브에게 심리적인 박탈감을 가지게 했다(2절). 뱀은 오직 두 번 말하지만, 이브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며, 선하신 하나님에 대한 이브의 믿음을 깨뜨리기에 충분하였다. 뱀의 말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도록 하는 독이 들어 있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은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으로 이끈다. 이것이 죄의 본질이다. 참된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것이며,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요 14:15). "너희가 죽으리라"는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에덴 동산 이야기는 상징으로 가득 차 있다. 하나님의 임재와 그가 주시는 생명력은 나무와 보석과 강과 산으로 표현되었다. 이것들은 후에 이스라엘의 성소와 성전에 나타나는 장식들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 예배에서 참된 생명을 얻었다. 그곳에 주님은 임재하시며 자기 백성들에게 생명을 주신다. 이와 반대로, 이스라엘의 진에서 쫓겨난 자는 "죽는다.". 따라서 여자는 선악과의 열매를 먹으므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고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 이르렀다. 후에 사울 왕이 주님의 말씀을 버린 순간 이미 그는 "죽었다.".

   따라서 사무엘 선지자가 그를 위해 애곡한다(삼상 15:35-16:1).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뱀은 지극히 간교하다. 그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그럴듯한 반쪽 거짓말을 한다. 이 이야기의 중심 내용은 "선악"의 지식에 대한 것이다. 뱀은 하나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이 지식을 금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기며 질문 형식으로 던진다(3:5). 창세기 이야기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동안 인간을 위한 선악은 하나님께서 친히 결정해 주셨다(창 1:31; 2:18).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장 좋은 세상과 동산을 만들어 주셨다. 따라서 뱀의 입장은 "하나님이 우리의 선악을 결정하시는 분"이라는 창세기 1, 2장의 중심 주제에 대한 정면도전이었다.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하나님을 선의 절대적인 잣대로 삼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율성을 절대적 척도로 선택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