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룻기

룻기2장,고엘과 토지법

호리홀리 2015. 4. 26. 19:00

C. 이스라엘 토지법과의 관계

 

 

 

 성서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땅과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매우 밀접한 관계이다. 땅은 성서 신앙의 유일한 중심 주제는 아니라 하더라도 중심 주제들 중의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한 점에서 땅에 대한 약속은 오경 전체를 꿰뚫고 흐르는 하나의 커다란 주제라고 할 수 있다. 땅과 관계를 맺고 있는 이스라엘은 또한 그들의 삶과 함께하는 하나님과도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만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실제로 그러하듯이, 특별한 방식으로 이스라엘과 관계하고 계시다면 그는 역사적인 공간으로서의 땅과도 특별한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계신다. 성서는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땅 사이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스라엘은 항상 땅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과도 관계를 ?고 있다. 이처럼 성서에 있는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땅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어느 하나만 따로 떼엇 생각할 수 없다. 특히 go'el은 가나안 정착 이후에 생긴 토지법과 깊은 연관성이 있으므로 go'el을 연구하려면 먼저 땅에 대한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1. 선물로서의 땅

 

 성서의 땅은 이스라엘의 역사 이해를 도와준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항상 땅으로부터 땅 상실로, 땅 상실로부터 다시 땅으로, 생명에서 죽음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가는 도상에 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땅이 없었다. 그들은 가장 초기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시대에 그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땅으로 가는 '체류자들'로 표현되고 있다. 이들은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신 땅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가는 자들로 나타난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에 도달했고, 하나님은 그 땅을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었다. 처음으로 자기 땅을 가지게 된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어서 그 땅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거저주신 선물이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너희에게 주기로 약속하신 그 땅에, 너희를 이끌어들이실 것이다. 거기에는 너희가 세우지 않은 크고 아름다운 성읍들이 있고, 너희가 채우지 않았지만 온갖 좋은 것으로 가득 찬 집이 있고, 너희가 파지 않았지만 이미 가꾸어 놓은 포도원과 올리브 밭이 있으니, 너희는 거기에서 마음껏 먹게 될 것이다(신 6:10-11).
 
 요단강에서 선포된 이 메시지는 그 땅이 순전한 선물이요, 철저한 은총에 속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 말에는 이스라엘의 업적이나 공로 또는 계획에 대한 암시가 전혀 없다. 폰 라트(von Rad)는 구원사적 입장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땅의 수여를 여호와의 구원행위로 보며 그것을 여호와의 구원 업적들 중에 최종적인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땅의 주인이 여호와임을 확실히 믿었다. 땅이 여호와의 것이라는개념은 매우 옛 것이며, 제의적(祭儀的)인 것이다. 가나안 땅이 여호와의 소유라고 하는 개념은 이스라엘 백성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난 다음, 시내산에서 알게 된 사막의 여호와가 농경지의 하나님도 된다는 것을 주장하는 데서부터 기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神은 그 숭배자들이 거하는 지역의 모든 땅과 포도원과 과수원 등 토지의 주인이라고 하는 생각은 고대 근동세계에 널리 유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구약성서의 7년마다 땅을 묵히는 일(출 23:10, 레 25:1), 첫 열매를 제물로 바치는 일(출 34:26, 레 23:10), 새로 심은 과일나무 열매를 3년간 따지 않는 일(레 19:23), 추수 때 밭에 이삭을 남겨 두는 일(레 19:9)등의 모든 제의(祭儀) 관습은 모두 여호와가 땅의 주인이라는 점과 직결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기에 이스라엘은 그 땅을 '기업'이라고 불렀다. '주다', '수여하다'라는 뜻을 가진 'nahalah'의 개념은 '재산', '소유물'과도 같은 뜻으로, 가나안 땅을 여러 지파에게 분배해 준 사실과 관련해서 '분할받은 땅(토지, 영토)'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좀더 일반적인 뜻은 '과거로부터 상속받아 소유한 것'을 의미하고, 성서의 문맥에서는 아버지나 조상들로부터 상속받은 것, 혹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을 가리킨다. 성서에 나타나는 많은 예를 볼 때 이 말이 지닌 신학적 의미는 법적인 차원을 넘어선다. 법률적 차원과는 달리 자비로운 하나님이 자기의 약속 이행으로, 또는 백성들의 순종에 대한 보상으로 그의 백성들에게 내려주는 선물이나 재산을 뜻한다. 폰 라트에 의하면 'nahalah'란 말은 처음에는 어느 가문이나 지파의 소유를 나타내던 말이었는데, 이것이 신명기 계통에서 '이스라엘의 기업' 이란 말로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이 땅에 대한 이스라엘의 정당한 소유권이 나타나 있다. 그 외에 이 땅은 '여호와의 기업'이란 말로 표시했는데 이것은 이 땅이 여호와 자신이 개인적으로 소유한 거룩한 땅이란 것을 의미한다 . 따라서 그 땅 경계 밖에 있는 자는 '여호와의 면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이며, 여호와에게 속해 있다는 것은 '여호와에게서 땅의 분깃'을 소유함과 같은 것이다. 폰 왈도우(von Waldow)는 이스라엘 땅이 거룩하다는 개념은 여호와가 땅의 주인이라면 다른 나라 땅은 다른 신들의 소유이니까 가나안 땅에서만 여호와를 섬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본다.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이었기에 공평하게 분배되어져야 했고 이스라엘은 그 땅을 제비 뽑아 나누어 가졌다. 또한 제비뽑은 땅은 후손들에게 영속적으로 물려주어야 했다. 또한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업이므로 일단 토지가 분할되거 할당되면 그 받은 몫은 그것을 받은 가족 혹은 가문내에 영속적으로 남아 있어야지, 남에게 양도할 수가 없게 되어 있다. 토지는 절대로 개인 소유가 되어서는 아니되며 현소유자의 후손의 모든 세대의 소유이어야 한다. 따라서 소유자는 땅의 소유권을 남에게 넘겨서는 안되며 또한 그가 아무리 남의 땅을 탐낸다 하더라도 잠정적으로밖에 많은 토지를 끌어 모을 수가 없다.
  이스라엘은 땅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그 땅은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선물로 주신 기업이라는 것을 일깨우기 위하여 이스라엘은 '나그네며 임시 거주자'로 불리워졌다(레 25:23). 여기에는 모든 국가가 '혈연과 땅'의 범주로서 소유주 관계를 생각하려는 그릇된 사고가 산산히 부서져 있다. 히브리어로 나그네는   이며 임시거주자는     이다. 'ger'는 본질적으로 이방인(외국인,낯선 사람)이다. 그는 자기를 수용해 주고, 또 일정한 권리를 누리도록 허용해 준 어느 다른 공동체 안에서 다소 영속적으로 살아간다. 사회적으로 본다면, 이와같이 정착자가 된 나그네들은 자유인들이었고, 이 점에서 그들은 노예와 구별되었다. 그런데도 토지 소유권은 모두 이스라엘 사람들의 손 안에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은 어쩔 수 없이 날품팔이꾼이 되었다(신 24:14).'gerim'은 일반적으로 가난하였고, 곤궁한 자들과, 과부들과, '경제적인 약자들'의 축에 끼였으며, 이들에게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선을 베풀도록 규정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을 도와줄 때는, 자기들도 애굽에서 gerim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했다(출 22:20,23:9,신 24:18).
  'ger'라는 단어와 나란이 사용된 'toshab'는 자주 쓰이는 단어로(창 23:4, 대상 29:15, 시 39:13) 출 12:45, 레 22:10, 25:40에서는 toshab가 품꾼과 나란히 나타나며, 레 25:6에서는 종들과, 품꾼과, 함께 사는 나그네와 같이 나타난다.
  따라서 에 25:23의 "땅을 아주 팔지는 못한다. 땅은 나의 것이다. 너희는 다만 나그네이며, 나에게 와서 사는 임시 거주자일 뿐이다"라는 말은 이스라엘이 살고 있는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며 그들은 단지 나그네로서 그의 땅에 붙어 사는 식객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이와같이 이스라엘은 ger와 toshab로서 하나님의 도움과 보호를 받는 자들이다. 따라서 이스라엘도 역시 그들 가운데 있는 ger와 toshab들을 도와 주고 보호해야 하는 강한 윤리적 요청 앞에 서 있게 된다.

 

 

 

2. 땅의 보존
 가나안 정착 이전의 이스라엘 사회상은 근본적으로 평등한 사회였으며 유목민들에게 사회적 불의나 불평등은 사막의 거친 생활 땐문에 사실상 불가능하였다. 그래서 가나안 정착 이후 공평하게 땅을 분배받은 이스라엘 공동체는 평등한 삶을 누렸던 사막의 관습들을 그대로 보존하려고 했다. 그러나 기근과 홍수 또한 여러 질병들의 재해와 전쟁들은 가난한 자들을 생기게 하였고 갑작스런 문화변동과 사회변혁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에 부의 불균형을 만들어 놓았다. 게다가 많은 땅을 소유하고자 하는 탐심은 이스라엘 기업 보존을 위협하고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이런 현상들로 인하여 이스라엘 공동체는 레 25:24-28에 땅에 대한 탐심의 유혹을 제어하고 토지의 사유화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들을 규정해 놓았다.

 

     너희는 유산으로 받은 땅 어디에서나, 땅 무르는 것을 허락하여야 한다. 네 친척 가운데 누가 가난하여, 그가 가진 유산으로 받은 땅의 얼마를 팔면, 가까운 친척이 그 판 것을 무를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그것을 무를 친척이 없으면, 형편이 좋아져서 판 것을 되돌려 살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판 땅을 되돌려 살 때에는, 그 땅을 산 사람이 그 땅을 이용한 햇수를 계산하여 거기에 해당하는 값을 빼고, 그 나머지를 산 사람에게 치르면 된다. 그렇게 하고 나면, 땅을 판 그 사람이 자기가 유산으로 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한다. 그러나 그가 그 땅을 되돌려 살 힘이 없을 때에는, 그 땅은 산 사람이 희년이 될 때까지 소유한다. 희년이 되면, 땅을 판 사람은, 그 때에 가서야 유산 곧 분배받은 그 땅을 다시 차지할 수 있다 (레 25:24-28).

 

 이 법에 의할 것 같으면 첫째, 근족인 go'el이 그 기업을 무를 수 있다. 여기서는 가족이 속한 씨족이 팔리 토지를 되사서 씨족에게 속한 기업이 외부로 매각하지 못하도록 방지하고 보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대천덕은 go'el의 뜻이 한자어로는 '구속'이며 한국어로는 '되무르다'는 말로서 원래 이 말이 토지법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서인석은 이스라엘의 토지법이 사막의 유목민의 관습법을 보존하려 한데서 나온 것이라 본다. 유목민의 시회조직에서는 사유재산이 별로 큰 의미가 없으며, 재산 사유의 최종적 권리가 씨족에게 있었으므로 토지를 관리하는 가족은 그 땅을 '외국인들'(가나안 사람들)에게 팔 권리가 없었다. 그래서 이러한 유목민적 관습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정착 후에도 그대로 잔존하게 된 것이다. 둘째, 판 사람이 돈을 모아서 판 땅을 스스로 무를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이 있을 경우에 땅을 판 헷수를 계산하여 남은 값을 산 사람에게 주고 그 땅을 되무를 수 있다. 셋째, 희년이 되었을 때에 그 기업은 원소유주에게 돌아갈 수 있다. 희년이라고 번역하는 이 해의 히브리어는     (yobel ; 수양, 수양의 뿔)로서, 이 해가 시작될 때에 양각(羊角)을 부는 관습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그래서 이 해를 '자유의 해(the Year of Liberty)', '나팔의 해(the Year of Trumpet)'라고도 한다. 히브리어     (yobel)은 앞 뒤 문맥에 따라 '나팔(Trumpet)'또는 '기쁨(Tubilee)'이라고 번역된다. '나팔의 해'는 7년마다 한 번씩 오는 안식년이 일곱 번 거듭되어 일곱 번째 안식년, 즉 49가 되는 다음 해, 곧 50년째가 되는 해이다. 희년은 전국의 모든 주민들에게 해방(##18, 석방)을 안겨 주었고 매각되었던 농토와 집들이 본래의 소유주에게로 되돌아갔다. 이러한 규정들의 동기는 종교적인 사고에 있었다.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토지를 판 후에도 그 토지에 대한 모든 권리를 다 내어줄 수가 없었다. 넷째는 안식년의 경우인데, 안식년에 관한 것은 출 21:1-6과 23:10-11, 레 25:2-7, 신 15:1-18 에 나타나 있다. 안식년에 관한 보도들에 의할 것 같으면 계약법전인 출 23:10-11과 성결법전인 레 25:2-7은 농경지의 휴경에 관한 규정이며, 출 21:1-6과 신 15:1-8의 내용들을 보면 계약법전에서는 노예가 해방될 때 단지 몸만 해방될 뿐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나 신명기 법전에는 빈 손으로 내어 보내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신 15:12-18). 또 신명기 법전에는 부채를 탕감하여 주는 것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것도 명시하고 있다(신 15:1-11).
  이 모든 규정들을 종합하여 보면 안식년에는 농토를 쉬게 하기 위해 농사를 짓지 않아야 하며, 빚은 저당 잡힌 것까지 포함해서 탕감되어야 하고, 노예나 종들은 놓아주어야 했다. 저당잡힌 땅은 안식년에 저당이 말소되나 정직하게 거래된 것일 경우에는 남은 임대료를 지불해야하고, 무르지 않는 한 희년까지 본 소유주에게 땅은 돌아오지 않는다. 
 이상에서 go'el제도, 안식년, 희년법들은 모두 기업 보존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 법들의 실천 여부에 대해서 go'el제도와 안식년은 그 흔적이 나타나나 희년이 실천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go'el제도의 실천 사례는 렘 23:1-10에서 볼 수 있으며 안식년은 법률적인 본문들 이외의 부분에서는 거의 말하지 않고 있으나 외경인 마카비서(Ⅰ마카 6:49,53)에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헬라시대까지 적용된 것으로 보인다. 또 안식년은 역사가 요세프스(F. Jesephus)의 보고들에서도 나타난다. 그러나 희년의 규정들이 언제 적용되었다는 것에 대한 흔적은 실제로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한편 레 25:25-28에서 go'el과 희년법이 기업을 되무르고 소유권을 회복한다는 내용이 같은 점으로 보아 go'el과 희년 사이에 서로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지 go'el과 희년의 차이는 go'el이 가정의 땅을 친척의 범위 안에 보존시켜 놓는 데에 그 목적이 있다면 희년은 그 땅을 본래의 소유자였던 개인이나 가정에게 반환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는 데에 있다. 드보는 희년에 대하여 go'el제도와 관련하여 볼 때 규정들이 새로운 것을 제시하지만 그것은 유토피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그는 희년에 관한 규정들은 정의와 사회적인 공정성의 이상적인 상태일 뿐, 어느 시대에도 실현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기업보존에 대하여 살펴본 바와 같이 이 토지법들 안에는 땅은 이스라엘이 선물로 받은 기업이며 땅의 임자는 하나님이라는 개념이 들어 있다. 그래서 땅은 이스라엘 왕조차도 자기 마음대로 관리할 수 없다. 아합은 땅을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생각하지만 나봇에게 있어서의 땅은 '거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양도할 수 없는 유업'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다음 세대들을 위하여 땅을 잘 보존하는 관리자라는 사고에 철저해 있다.
  폰 왈도우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땅을 관리하는 것에 대해 이스라엘의 제의와 준법이라는 두 가지 관점으로 본다. 첫째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일이며, 그 다음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일이다. 이스라엘에게는 땅에 대한 탐심의 유혹을 물리치고 약자를 보호하는 법이 필요하며 또한 그들에게 있어 여호와 계명의 준법행위는 곧 가나안 땅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표시이기도 하다. 반대로 율법을 지키지 않는 행위는 땅을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며 땅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토지법은 소극적으로는 땅에 대한 탐욕을 제어하며 또 약자를 보호해 주는 기능을 하며 적극적으로는 선물로 받은 땅에서 이스라엘이 오래 살 수 있도록 축복으로 주어진 법적인 안전장치의 기능을 한다. go'el제도는 이러한 상관 관계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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