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언약적해석)

스가랴서13:7-9,언약백성의 연단

호리홀리 2015. 4. 21. 12:32

 언약백성의 연단: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의 2/3는 멸망하고 오직 1/3만 남아서 여호와의 백성이 될 것이다.(13:7-9)

 


 

  선한 목자가 수난을 당하고 양떼 역시 흩어져 환난을 당할 것이지만 이로써 연단을 받아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큰 구원에 이를 것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13:7은 신약의 복음서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종말론적 해석에 의해 인용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 자신을 스가랴 13:7의 두들겨 맞은 목자로 보았으며, 자신의 사명을 그 구절의 문맥에 따라 해석했다(막 14:27; 마 26:31).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여기서도 강조된 형태인 (네움 야웨 차바), 즉 ‘만군의 야훼의 선포다’로 시작된다. 야훼 하나님의 주권을 선포하려는 의지가 강하게 강조되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스가랴 11:1-7에 언급된 무가치한 목자와 대조되는 본문의 “내 목자, 내 짝 된 자”는 참 목자 되신 메시아, 곧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다. 11:17에서는 “칼이 임하리니”에 “칼”이 여성 명사이므로 동사가 여성형으로 쓰였다. 본문 13:7 중 동사인 “칼아 깨어라”에서는 명령이 ‘우리’로서 여성형으로 쓰였으나, “치라”는 명령에서는 ‘하크’로서 남성형 명령으로 쓰였다. 이는 그 ‘침’의 주체가 칼 자체라기보다는 야훼 하나님의 주권적인 사역에 더 강조점을 두었다는 것을 알게 한다(사 53:4, 10; 행 2:23). 따라서 여기서 선한 목자의 수난은 곧 인간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의 결과란  사실이 강조적으로 부각되어 있다. 여기서 “내 목자”는 ‘내 짝 된 자’( 게베르 아미티), 즉 ‘나와 교제하는 남자’, ‘나와 친분 있는 남자’로서, 하나님과 동등된 위격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가리키는 것이다(요 1:1, 2; 10:30; 14:9). 여기서 또한 “드리운다”는 것은 ‘돌아오다’( שׁוּב 슈브)라는 동사가 ‘또한 내가(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는 뜻이다(참고 사 1:25).

 

  이제 잠자던 칼한테 깨어나라고 한다. 그리고 그를 치라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을 아끼시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은 아니다. 완전한 구원의 시작일 뿐이다. 목자를 치면 양떼가 흩어지지만, 목자를 친 손을 ‘그 작은 자들’( 하초아림), 즉 ‘그 보잘것없는 자들’위에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긍휼하심으로 그 백성을 바라보시면서 ‘목자 없는 양’과 같다고 말씀하셨으며(막 6:34; 마9:36), 그 목자 없는 양들을 향하여 위로 하셨다.

 


 

  13:8-9절의 문맥상 이는 세상 종말의 때에 최종적인 성취를 기다리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본문이 이러한 연단사건이 ‘그 땅에서’( 베콜 하아레츠) 일어나는 전 세계적 사건으로 묘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네움 야웨’가 다시 반복된다. 야훼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하나님의 백성의 연단은 즉흥적인 것이 아니라 야훼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 가운데에서 비장함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 하나님의 백성의 고난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함께 당하는 수난이라고 볼 수 있다(13:7). 그리스도의 수난은 일회적이지만,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수난 중에 자랐다. 주님 오실 때가지 수난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에 근거한 하나님의 교회의 수난은 하나님의 교회의 정결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신부로서의 정결함을 증명해 줄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의 교회는 궁극적인 승리를 맛볼 것이다.  왜냐하면 연단하며 시험하시는  분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작은 자들에게 그의 손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삼분의 이’와 ‘삼분의 일’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이 예언이 언급하는 것은 초대교회에서 핍박받으며 연단과 시험 가운데 ‘남은 자’다. 이들이 그리스-로마 세계를 복음화 시켰듯이 참된 하나님의 백성은 교회가 당하는 고난 중에도 그 고난과 함께 믿음을 지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것이다. 그래서  ‘불에 들어가게 하며, 은을 불태우듯이 태우며, 금을 시험하듯이 시험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들을 것이다. 아직은 끝이 아니다. 마지막에 고난을 통과해야 된다. 그러나 그 고난은 하나님께서 무리 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걸러 내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정결케 하심이다. 그 고난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야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남은 자’들 위에 성취된다. 정결한 믿음을 가지게 된 남은 자들은 그 고난 중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새 약속의 성취를 생명같이 귀하게 여기며, 그들이 바라보았던 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에게 하늘에서 내려올 것이다. 이 종말이 가까운 오늘에 믿음의 고난  중에 있는 이 남은 자들에게 들려오는 거룩한 하나님의 음성을 바로 이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