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언약적해석)

스가랴서10:1-12,여호와께서 구원을 약속하신다

호리홀리 2015. 4. 21. 10:59

여호와께서 구원을 약속하신다(10:1-12)

 


 

  1) 불순종한 목자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10:1-3상절)

 

 

 

  이스라엘이 바벨론에서의 포로 생활을 통해서 우상숭배에 대한 값을 치르고 돌아왔는데도 이스라엘 배성의 우상숭배(2절, 드라빔, 복술자)에 대해서 선지자 스가랴가 아직도 이야기하는 것은 우선 이상하게 들린다.그러나 이스라엘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 왔다고 해도 그들이 여전히 주변 국가의 거짓 신들에게 기원하는 습관을 갖고 있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 본문에서 역사적 배경을 유추하자면 아마도 성전재건축이 완성 되고나서 수년이 지난 후, 즉 총독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같은 의로운 지도자들이 이미 죽고 그들의 자리를 다른 의롭지 못한 지도자들이 차지하고 있을 때였을 것이다.

 

  “봄비”는 다가오는 시대에 하나님의 축복이 뒤따르리라는 것을 의미한다. 추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봄비를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에게 구하라고 한다. 그러나 기원 대상이 드라빔(휴대용 우상)이나 복술자(점쟁이)에게 구하는 우상숭배자들은 하나님께 기원하지 않고 거짓 신들에게 의존한 결과로 백성이 그들에게 의로운 지도자가 없어서 목자 없는 양처럼 헤매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백성이 거짓 신들을 추종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의로운 지도자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스가랴 선지자는 말한다(10:2하절). 그 결과 그들이 고생만 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응하실 것인가를 3-12절은 요약하고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목자”들(하로임)에게 화를 쏟고 “수염소”들(하아투딤)을 벌하리라는 것이다(10:3상). “수염소”들(하아투딤)은 비유적으로 양떼의 선두 무리를 의미한다. “목자”들이나 “양”떼 모두가 다른 거짓 신들을 추종하여 하나님에게 불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분노를 자아내게 했다.

 


 

2) 유다/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나올 메시아(10:3하-4)

 


 

  저악한 지도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천대하며 상해하기를 나귀나 소를 때려 몰듯 하였으나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취급하실 때에 전쟁의 준마같이 하시겠다고 한다. 그가 그들로 하여금 이방인들을  승리케하여 왕이 타고 승전한 좋은 말을 대우하듯 하시겠다는 것이다. 곧 유대에서  구속 운동이 나와서 하나님의 집(천국운동)을 견고히 할 것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하신 약속 때문에, 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 자신이 그들의 목자가 되실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4절은 하나님께서 유다/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이끌어 내어 성취하실 네가지 구체적인 것을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의 약속의 백성인 유다 족속에게서 “모퉁이 돌”“말뚝” “싸우는 활”과 “권세 잡은 자”가 나올 것이다. 이 네 가지 특징은 메시아를 암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다 백성에게서 그러한 완벽한 자가 나온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참으로 성취될 수 있을 것이다.

 


 

3) 이스라엘의 회복(10:5-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는 근거가 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게 있다.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김으로.” 이는 전적으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약속에 근거한다.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그들을 들으리라.” 이는 출애굽 언약의 연속이다.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낸 너희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출 6:7-8).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원래의 형태로 완벽하게 회복시키리라고 말씀하신다. “내게 내어 버리움이 없었음같이 그들이 되리라.”

 


 


 

4) 제2출애굽(10:7-12)

 


 

  8-12절까지는 1인칭 형식으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형식을 취한다. 이 예언의 초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에브라임의 포로들을 앗수르와 애굽에서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있다. “흐트려 트림”(9절)과 “모음”(8절)의 이미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열방”, 즉 많은 민족 사이에 그리고 “원방”, 곧 먼 곳에 포로로 끌려 갔던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한때는 비참한 처지에 있던 포로들이 다시 강해져서 귀환한다. 그들이 “애굽 땅에서 돌아오게 하며 그들을 앗수르에서부터 모으며”(10절)라는 표현은 특정 국명으로서가 아니라, “애굽”과 “앗수르”로서 표현되는 “이 세상 모든 곳, 모든 나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귀환시키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의 범위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여기서 “애굽에서”와 “앗수르에서” 돌아온다는 것은 모든 시대에 걸쳐 흩어진 모든 포로를 귀환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그들을 이끌어 가리니 그 거할 곳이 부족하리라”(10절)는 구절 또한 같은 맥락에서 해석되어야 한다. “길르앗 땅과 레바논”으로 포로들을 귀환시킨다는 뜻이 아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편이며, 레바논은 악속의 땅의 북쪽 경계 밖이다. 따라서 이 어느 곳도 약속의 땅이 아니다(창 15:18-21; 민 34:2-12; 겔 47:15-20). 포로들을 귀환시켜 이스라엘 온 땅을 가득 채우고 길르앗과 레바논까지 넘쳐 흐르도록 많은 포로를 귀환시키리라는 하나님의 계획의 범위를 나타내는 것이다.

 

  11절에 “고난의 바다(해협, 여울목)를 지나갈 때에 바다 물결을 치리니(가라 앉히니) 나일의 깊은 곳이 다 마르겠고”등의 표현은 홍해를 건널 때의 상황을 묘사는 표현들이다. “앗수르의 교만이 낮아지겠고 애굽의 규가 없어지리라”라는 표현도 역시 애굽과 앗스르의 왕권이 끝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강한 두 제국을 망하게 하신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권세를 제압하시리라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 자신의 주권을 취하신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이름으로 왕래하는 모든 곳이 하나님의 속권하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귀환(구원)하신다는 스가랴의 전체적인 주제를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