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언약적해석)

스가랴서9:1~8,심판과 구원

호리홀리 2015. 4. 21. 10:41

 이스라엘 이웃 나라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9장, 심판과 구원)

 


 

   환상(1장-6장)이 과거적이었다면 말씀(7-8장)은 현재적이고 예언은 미래적이다. 이제 메시야의 오심을 예언하신다. 이미 8:22-23절은 예고편으로 메시야의 종말론을 선포하고 있다. 9장은 전체적으로 이방에 대한 심판(1-8절)과 이스라엘의 구원(9-17절)이라는 구약 예언의 일반적인 패턴을 따른다. 그러나 이방에 대한 예언에는 심판만 나와 있는 것이 아니다. 이방이 이스라엘에 편입될 것이라는 예언이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호하실 것이란 예언과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예언의 첫 부분은(1-8절) 수리아, 베니게 그리고 불레셋으로 나누는 것은 지리적인 측면에서나 신학적인 차원에서 타당해 보인다. 이 세 지역은 모두 이스라엘의 이상적인 경계 안에 위치하고 있는 점에서는 일치한다(신 1:7; 수 1:3-4), 1절-8절은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 그리고 경고를(1) 듣지 않는 그들에 대한 심판이 진행된다.

 


 

1) 수리아에 대한 심판(1-2상절): 하드락, 다메섹, 하맛

 


 

  이스라엘의 북방 시리아 지역에 위치한 나라들에 대한 심판의 예언을 담고 있다. 하드락 땅, 다메섹, 그리고 하맛에 임한 하나님의 말씀은 좁게는 이방에 대한 적대적인 심판을 의미하지만, 넓게는 블레셋에 대한 호의적인 예언(7절)과 맞물려 하나님의 은혜로운 취급을 바라보게 한다.  “하드락”은 수리아의 지명 혹은 수리아 나라를 가리킨다. “다메섹”도 역시 수리아에 속한다. 이 말씀이 거기에 머무른다 함은, 수리아 나라가 아주 망하기까지 그 말씀의 내용이 실시될 것을 가리킨다. “사람들과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눈이 여호와를 우러러 본다” 함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회개함을 의미한다고 한다(Calvin). 이 해석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회개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원수 수리아와 기타 나라들을 멸망시키게 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보편적인 통치 수단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의 울타리 안에 가두어 놓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역사를 제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세 나라에 대한 예언의 기술에서 강조되는 것은 심판의 구체적인 내용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차례로 임하는 사실에 있다. 하드락 땅에서 출발한 여호와의 말씀이 다메섹에 머물다가 인접한 하맛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지혜롭기로 이름난 두로와 시돈에 이른다. 이러한 말씀의 행군은 통상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루트를 예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베니게에 대한 심판(2하-4절): 두로, 시돈

 


 

  두로와 시돈이 심판을 받아야 할 이유로 암시된 두 도시의 특징은 그들의 지혜로움이다. 이 지혜는 17절에 나온 하나님의 축복과 대비되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지혜를 가리킨다. 난공불락의 요새로 대변되는 막강한 방어(군사)력과 활발한 해상 교역을 통해 얻은 엄청난 국가 경제력이 두로가 가진 지혜의 증거다. 그러나 지혜의 근본인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는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한다. 철통같은 방어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지 못하고, 오히려 조롱거리만 될 뿐이다. 영원한 보장이신 여호와와 지혜의 근본인 그분의 말씀에게로 피하는 것만이 최상의 안전책이다.

 

  시돈과 두로를 심판(4절)하시는 하나님이 단호한 의지를 강조한다. 하나님은 두로가 자랑하던 모든 재산을 빼앗을 것이다. 그들의 재산(권세)은 그 근원인 바다(해상무역)에 던져지고, 남은 것은 불살라짐으로써 (비교 암1:10), 세상적인 지혜가 이룩한 모든 일이 철저히 파괴 될 것이다. 세상나라가 아무리 강하고 부요하고 지혜롭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서지 못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나라의 영원성과 비교된다. 과연 두로는 주님의 의로우신 심판의 결과로서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더에게 정복당한 후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그러나 신약은 이러한 두로와 시돈에도 메시아로 말미암아 소망의 빛이 비추고 있음을 보여 준다(막 3:8 등).

 


 

3) 블레셋의 심판과 구원(5-8절): 아스글론, 에그론, 아스돗

 


 

  블레셋은 수리아와 베니게 지역 국가들의 패망, 특히 다메섹과 두로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고서 크게 놀랐을 것이다. 5-8절에 기록된 지리적으로 불규칙하게 배열된 도시들의 순서는 아마도 이들의 당혹감을 반영하는 듯하다. 블레셋 다석 도시 중 갓이 제외된 것은 유다의 웃시야에 의해 멸망당했기 때문일 것이다(대하 26:6).

 

  아스글론, 가사, 에그론, 아스돗에 대한 심판을 보면(8:5-6상절), 가장 남단에 위치한 아스글론도 두로와 시돈이 망한 이후 시시각각 조여오는 말씀의 진군을 보면서 크게 두려워한다. 블레셋 도시 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에그론은 침략을 막아 줄 것으로 믿었던 다메섹이나 두로가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하게 되었다. 블레셋에 대한 다른 선지자들의 예언(암 1:6-8; 습 2:4)은 스가랴의 예언이 각 도시의 운명에 대한 상세한 보고보다는 심판과 구원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여 주기 위한 것임을 보여 준다. 이스라엘을 정치, 경제적으로 괴롭히고 신앙적으로 타락시킨 블레셋 도시들은 결국 공의로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블레셋에 대한 심판이 그들을 정결케 하는 목적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즉, 블레셋의 교만을 끊는 것은 죄에 대한 심판의 과정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깨끗하게 하는 정결 과정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의 가증한 우상 제의를 제거한 결과(7절), 블레셋의 남은 자는 다윗 시대의 여부스(참고 삼하 5:6-10)처럼 정치, 종교적으로 이스라엘의 당당한 일원으로 편입되어 하나님의 통치를 누릴 것이다. 놀랍게도 남은 자 사상이 이스라엘의 경계를 뛰어넘어 이방인 블레셋에게 적용되고 있다. 한때 이스라엘의 최대 적이었던 그들이 여호와의 남은 자, 즉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나아가서 이들은 종교적으로 통합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다윗 시대에 시작된 이 통합의 역사는 그리스도의 오심과 더불어 교회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이다(갈 3:28).

 

  8절에서 하나님이 보호하실 ‘내 집’은 일차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나아가서 예루살렘 도시나 유다의 주민을 가리킨다. 하나님이 둘러 진 치신 대상을 해할 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예언은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보호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협하는 사람들에 대한 묘사(적군, 포악한 자)는 하나님이 어떤 적에게서도 그들을 보호해 주실 것을 확약한다. 특히 “포악한 자”(애굽의 간역자 또는 감독과 같은 말)에 대한 언급은 “보신다”(비교 출 3:7)는 표현과 아울러 하나님의 보호가 출애굽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보여 준다. 하나님이 고통당하는 자기 백성을 보시는 것은 곧 그들의 구원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