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언약적해석)

스가랴서4:1-14,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호리홀리 2015. 4. 21. 10:07

5) 다섯 번째 비젼((4:1-14))-일곱 촛대의 순금 등대와 감람나무 두 그루(성전의 재건)

 


 

  4장은 스가랴가 본 환상(4:1-5, 11-14)과 두 개의 신탁(4:6-10)으로 구성 되어 있다. 그 환상은 순금등대와 이 등대 곁에 두 감람나무다. 스가랴가 본 순금 등대는 등의 대 위에 기름 그릇이 있고 이 그릇 위에 일곱 등잔이 있다. 각 등잔에 심지를 놓을 수 있는 일곱 개의 관이 있는 등대의 모습은 출애굽기 25:31-40과 37:17-24에서 묘사하는 성막의 등대와는 다른 형태다.

 

  순금등대는 이스라엘백성, 즉, 언약백성을 가리킨다. 그리고 신약의 교회를 상징한다. 그들의 사명은 세상을 밝히는 것이다. 기름은 성령이다. 성령의 공급으로만이 세상에 빛을 밝힐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의 빛으로 부름을 받았는데, 이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이 공급되어야만 가능함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즉, 스룹바벨이 성령으로 하나님의 전을 건축할 것을 보여준다. 스가랴 4:6-7절은 이스라엘의 정치적 지도자인 스룹바벨에게 주어진 첫 번째 신탁의 내용이다. 천사는 스가랴가 본 이상의 전체적 의미를 선포하는데, 바로 스룹바벨이 사람의 힘과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영으로 성전건축을 마무리할 것이라고 선포한다. 즉 순금 등대에 계속해서 기름을 공급하는 이상은 성전건축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계속 공급하여 주심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때 하나님께서 공급하실 것은 곧 “하나님의 영”이라고 선포하는 것이다. ‘힘’이란 대부분 육체적 힘을 의미하며, 발전된 의미로 “보화”(스가랴 14:14)를 의미하기도 하고, 에스겔 17:17에서처럼 “군대”로 번역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성전건축을 완성하는 것이 인간의 육체적 힘, 재력 또는 군사력이 아님을 선포하는 것이다. “능” 또한 동일한 의미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 두 표현을 함께 사용하면서 인간의 어떠한 노력으로도 성전이 완성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만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히브리어 단어 ‘루아흐’는 하나님의 인격을 의미하는바, 이는 그의 뜻을 알리고 인간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성전건축에서 하나님의 임재롸 개입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결국 4:6절은 하나님의 임재와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서만 성전건축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또한 이것은 성전건축이 확실히 이루어지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성전건축이 연약한 인간의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성전건축의 장애 또는 방해는 스룹바벨 앞에 놓여 있는 큰 산으로 표현된다.(참고 스 4:2-4, 24). 큰 산이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어 제거될 것을 약속한다. 하나님의 능력과 임재 앞에서는 어떠한 장애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리가 은총을 외치는 가운데 스룹바벨이 건축을 마무리하는 머릿돌을 놓게 된다.

 


 

  두 번째 신탁의 내용은 4:9절에 스룹바벨이 성전건축을 마무리하리라는 약속의 말씀을 다시 한 번 전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성전건축을 이루실 것이지만 이것은 인간의 관여를 배제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인간 에이전트를 사용하여 성전건축을 이루신다. 즉 스룹바벨을 통하여 성전의 기초를 놓으시고 그를 통해 성전건축을 완성하실 것을 선포하시는 것이다. 이 약속의 성취는 하나님께서 천사를 백성에게 보내신 것을 스가랴가 알게 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10절에 보면 스가랴 선지자는 이스라엘이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건축하는 성전을 이전 솔로몬의 성전과 비교하여 그들의 성전건축 사역을 "작은 일의 날"이라고 쓰고 있다. 이것을 학개서에서는 “보잘것없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학 2:3). 그리고 그때의 성전 재건이 원수들의 방해로 인하여 미천(微賤)해 보였다. 그러나 스룹바벨이 다림줄을 갖고 건축을 진행하는 것을 볼 때 이를 멸시하는 사람들이 모두 기뻐할 것을 그린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더러 이런 미천해 보이는 시기(時期)를 멸시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일은 처음에는 미천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복음 운동이 역시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미천한 것이다.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공사가 그때에 미약해 보였으나  필경 완성될 이유는, "세상에 두루 다니는 여호와의 눈" 곧, 모르심이 없으신  성령께서 그 일을 성사 (成事)시켰기 때문이다. "일곱"은 완전을 의미하는 수(數)이니, "일곱 눈"은 무소부지(無所不知)하신 성령을 비유한다.

 

   "다림줄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는 것은, 하나님의 성령, 곧,

 

"일곱 눈"이 스룹바벨의 성전 재건 공사를 위한 다림줄을 기뻐 하신다는 뜻이다. 성령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완성되는 것이다. “큰 산”이 외부에서 오는 방해를 의미한다면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태도는 내적 어려움을 나타낸다. 즉, 스룹바벨은 외부와 내부에서 오는 어려움을 겪게 되지만 하나님의 신으로 성전건축을 마무리하게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다 이 말씀대로 성전은 이 신탁이 주어진 후, 다리오 왕 6년 아달 월 3일에 완성된다(참고 스 6:15).

 


 

11절의 “등잔대 좌우의 두 감람나무”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이다. 다시 12절에서  “기름을 흘리는 두 금관 옆에 있는 이 감람나무 두 가지”는 “기름 발리운 자(또는 부음을 받은 자) 둘”을 의미한다. 이들은 순금 등대에 금 기름을 풍부하게 공급하는 역할을 감당하게 된다. 금 기름은 6절과 연관하여 해석할 때 풍부하게 공급되는 하나님의 영/힘을 의미한다. 즉, 대제사장과 정치적 지도자가 같은 위치에서 성전건축 과업과 성전을 이끌어 갈 하나님의 원동력을 공급하는 통로가 되리라는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를 구약에서 왕과 제사장이 그름 부음을 받을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히브리어 ‘사만'이 아닌 ‘이츠하르’)라는 단어를 4:14에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이 단어를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의미와는 다른 표현인 “기름 발리운 자”로 해석하기도 한다. 이 단어의 사용은 기름 부음 받는 사실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기름을 공급하는 그들의 역할을 강조하는 의도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스가랴 4:14에서 천사는 성전건축의 원동력이 되는 하나님의 신의 공급과 임재를 나타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스룹바벨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름 발리운 자 둘”에 대한 언급은 제사장과 지도자의 상호보완적 역할을 강조된다. 결론적으로 본문이 전해주는 메시지는 성전건축 사역이 인간의 사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이며, 그러므로 성전건축이 필히 마무리될 것임을 예언하는 것이다. 스가랴 4장에서 제시하는 이상의 중요한 목적은 성전건축의 완성을 확언하여 주는 것이며 회복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