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언약적해석)

스가랴서1:7-17,여호와께서 돌아오심

호리홀리 2015. 4. 21. 09:52

첫 번째 비젼(1:7-17)-여호와께서 돌아오심

 

  성전을 건축하러 조상의 땅에 돌아온 백성들은 재난과 박해를 당하여 성전 건축을 중단하였다. 이때에 스가랴는 성전의 중요성과 성전이 필히 완공될 것을 환상을 통하여 보여 주며, 백성들을 격려하였다. 또한 앞으로 있을 완전한 성전을 건축할 자인 '순'을 기다리게 하고. 먼데 이방 사람들까지 와서 성전 건축을 도울 미래의 때가 있을 것을 예언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종교가 만방에 퍼질 것에 대한 예언이다. 이러한 환상과 예언들은 하나님께서 이루실 것이다. 그 분은 인류 역사의 주권자이시며 천지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여덟 개의 환상이 교차대구법으로 구성 되었다. 첫 번째 환상과 여덟 번째 환상은 “땅 위를 살펴보는 다양한 색깔의 말들”을 중심으로 병행을 이룬다. 첫 번째 환상이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에 초점을 맞춘 데 반해(1:12, 17), 여덟 번째 환상은 죄 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승리에 초점을 맞춘다(6:8). 첫 번째 환상에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전체적’으로 선포된 후 이어서, 두 번째 환상에서는 특히 이방 민족들의 죄악과 이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에 초점을 맞추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구체화한다. 세 번째 환상은 두 번째 환상과 마찬가지로 이방 민족들에 대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포괄적으로 전개한다. 특별히 여기에서 바벨론이 명시되어 나온다(2:7-9, 두 번째 환상에서는 간접적 언급(1:21)). 이 바벨론은 일곱 번째에서 시날로 표기된다(5:11). 네 번째 환상과 다섯 번째 환상은 새로운 메시아 시대의 영적, 정치적 지도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선포한다. 여섯 번째 환상과 일곱 번째 환상은 죄악의 땅과 죄인들을 징벌하는 문제를 다루며 서로 병행을 이룬다. 특히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죄악의 세력을 언급한다. 이 여덟 개의 환상은 교차대구적 구조체로 되어 있는데, 그중 가장 명백한 면모는 첫 번째 환상과 여덟 번째의 환상과 네 번째와 다섯 번째 환상의 병행이다.

 


 

1) 첫 번째 환상(1:7-17)-여호와께서 돌아오심

 

  환상의 내용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회복되고 이 도성의 종교와 삶이 다시 풍요롭고 거룩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스가랴가 상상하는 예루살렘의 회복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의 안정을 위한 것에 머물지 않는다. 그가 예언하는 시온의 회복은 곧 하늘과 세상이 만나는 거룩한 공간의 회복이요, 재창조다. 스가랴가 상상하는 예루살렘의 회복은 이처럼 성전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회복을 의미한다. 이러한 그의 생각은 이 환상들의 구조와 범위에서 역력하게 드러난다. 선지자는 모두 어덟 개의 환상을 같은 날 밤에 받았거나, 며칠 내에 보았던 것으로 여겨진다. 환상이 시작되면서 끝날 때까지 선지자는 천사의 설명을 통해 환상의 의미를 이해하게 된다.

 

  스가랴의 처음 세 환상(1:7-17; 18-21; 2:1-13)은 여덟 개 중 공통점을 지니는 첫 번째 부류의 환상들이다. 이 환상들의 공통적인 테마는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와 예루살렘/유다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다. 첫 번째 환상에서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을 약속하며 세 번째 환상의 마지막 순간에 가서는 이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기 시작 하는가를 보여 준다. 스가랴가 본 환상들은 모두 같은 날이나 비슷한 때에 비롯된 것으로 보이며(참고 1:7), 모두 밤에 임한 것이다(참고 1:8). 스가랴가 본 날짜는 그의 첫 메시지가 선포된지 3개월이 지났던(참고 1:1)다리오 왕 2년 11월 곧 스밧월 24일로 밝히고 있다. 24일은 중요한 날짜다. 백성이 정확히 이날에서 5개월 전이었던 다리오 왕 6월 24일에 성전재건을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다.(학 1:14-15). 오늘날의 달력에 의하면 스가랴는 주전 519년 2월 15일 첫 환상을 보았다. 환상 속에서 선지자는 빨간 말을 탄 한 사람을 보았다. 그는 화석류나무 혹은 소귀나무 사이에 서 있었으며 그 뒤에 여러 말이 서 있었다. 말을 탄 사람은 여호와께서 보내신 천사였다. 말이 몇 마리이며 말을 탄 사람은 몇 명인지는 모른다. 다만 11절에 “그들이 화석류나무 사이에 선 여호와의 천사에게 말하되 우리가 땅에 두루 다녀 보니 온 땅이 평안하고 조용 하더이다”에서 말들이 천사에게 구도로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그 말들 위에 탄 자들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올 뿐이다.

 

  이 말들이 사방(四方)을 두루 둘러보고 오는점을 염두에 둘 때 각 색깔별, 즉 빨간색, 밤색, 흰색의 말에 타고 있었을 것이다. 천사가 타고 있던 빨간 말 뒤에 여러 말이 보인 것으로 보아 총 4마리였던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스가랴서 안에 4라는 숫자가 지니는 중요성을 염두에 둘 때, 천사가 탄 말 역시 넷으로 구성된 조의 한 일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 넷은 환전함을 상징하는 숫자다.

 

  세상을 둘러보고 온 기마병들이 천사에게 온 세상이 “조용하고 평안하였다”고 보고했다(11절). 그러자 천사는 만족해 하기는커녕 오히려 실망에 찬 어투로 곧바로 하나님께 언제까지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을 폐허로 버려두실 것인지 물었다. 천사는 온 세상이 조용하고 평안하게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성읍들을 보살피시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12절). 열방이 평안한 것은 곧 주의 백성이 아직도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하여 버림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유다의 현실을 예레미야가 선언했던 70년의 심판이 지속되는 것으로 간주한다(참고 렘 25:11). 예레미야의 70년은 이사야의 70년(사 23:15-17)처럼 오랜 세월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스가랴는 이 70년을 자신의 시대에 문자적으로 적여한다. 이 경우 70년은 바벨론의 손에 유다가 멸망했던 587년에서 시작해서 스가랴가 이 예언을 받았던 520년까지를 뜻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천사의 탄식어린 질문을 받으신 하나님께서 위로와 좋은 말로 그에게 말씀하셨다(13절). 천사의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 백성을 버리시지도, 저주 아래 두시지도 않았다는 점을 역설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반응은 여러 면에서 천사의 염려를 완전히 불식시킨다. 하나님의 긍휼이 주의 백성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천사의 탄식이 하나님의 긍휼로 대치되며(16절),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의 어려운 형편을 풍요로운 모습이 대신한다(16-17절). 뿐만 아니라 열방의 평안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을 것이 확고히 예고되고 있다(15절). 저자는 다시( 161쪽 오드)라는 말을 17절에서만 네차례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확고한 회복을 예언한다. 이처럼 지연되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실망에 가득 찬 사람들에게 14-17절은 이스라엘에게 임할 하나님의 위로와 축복을 노래한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지칠줄 모르는 하나님의 열심, 열방에 대한 하나님의 분노, 은혜와 자비로 충만한 여호와의 예루살렘 귀성, 성전재건, 파괴된 도시의 무궁무진한 발전, 시온과 예루살렘에 임할 위로 등 주의 백성이 갈망할 만한 모든 것을 약속한다.

 

  스가랴 선지자는 혼란과 비관으로 가득한 세상에 좌절하지 않고 현실에 대치되는 미래를 예고하고 있다. 선지자가 환상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백성을 버리시지 않는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은혜와 관심이 주의 백성에게서 멀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셔서 온 세상을 관찰하고 둘러보고 계셨다. 뿐만 아니라 하아님의 자비는 끊임없이 주의 백성을 감쌀 것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본문을 통해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시지 않으며, 그분의 은혜는 바로 그 순간에도 계속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다. 선지자들은 대체적으로 평안과 조용함을 지향했던 사람들이다. 특히 스가랴의 선배들은 한결같이  전쟁을 문제 삼은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본문에서처럼 때로는 세상의 평안과 조용함이 주의 백성에게는 문제일 뿐만 아니라 불안한 미래에 대한 예고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