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언약적해석)

스가랴1:1-6 여호와께 돌아오라

호리홀리 2015. 4. 21. 09:49

여호와께 돌아오라(1:1-6)

 

  잇도의 손자이자 베레갸의 아들인 스가랴는 다리오 통치 2년 8월에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다(1절). 이때가 주전 520년경이다. 다리오 1세가 페르시아 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한 것은 주전 521년이었으며 이후 잠시 페르시아 제국이 여러 민족과 속국의 반역에 의하여 많은 혼란에 빠진 듯했으나 스가랴가 소명을 받을 즈음에는 모두 평안을 되찾고 다리오의 왕권은 더욱더 굳건하게 형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페르시아 제국은 평안을 찾았지만,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새로운 삶을 추구하던 유다 사람들의 삶은 평안하지 못한 시대였다. 그들의 메시아 왕국의 시작에 대한 기대는 날이 갈수록 비현실적으로만 생각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대에 의하면 메시아 왕국이 도래하기 전에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세상 모든 나라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망해야 했다. 그러므로 가우타마의 반역과 캠비스 자살로 비롯된 페르시아 제국의 혼란은 잠시나마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여호와의 열방에 대한 심판이 임한 것이 아닐까 하는 소망을 불어넣어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다리오가 왕권을 장악한 다음 모든 반역이 진압되고 다시 평온이 찾아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다시 잠잠히 여호와를 바라보며 다른 때를 기다려야 했던 것이다.

 

  페르시아 제국이 다시 평안을 되찾았다는 것은 단순히 메시아 시대의 도래가 미래로 지연되었다는 결론만으로 끝날 상황이 아니었다. 포로시대 이전에 사역했던 선지자들과 심지어는 포로시대 때 활약했던 선지자들이 한결 같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포했던 것 중의 하나는 머지않아 이스라엘은 바빌론에서 본국으로 돌아가는 제2의 출애굽을 맞이할 것이며, 이 일이 있은 다음에 시온에 메시아가 오셔서 그의 백성을 회복하시고 새 날을 건설해 나갈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이들이 그 약속을 믿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다. 그런데 아직도 메시아 왕국은 도래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초조해졌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도 조금은 흔들렸던 것이다. 이처럼 기다림은 때로는 우리를 지치게 하며 심지어는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이렇게 사람들의 믿음이 퇴색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릴 때 하나님께서 스가랴를 통해 백성에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결코 내 백성을 포기하시지 않았고, 오히려 사랑이 날이 갈수록 진해져 간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신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학수고대하던 메시아 왕국의 도래에 대한 청사진을 선지자에게 보여 주심으로써 소망을 절대 포기하지 말 것을 당부하셨다. 주의 백성이 가장 절망적이라고 느끼는 순간이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때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는 것이다.

 

 

  스가랴서는 어둠 속을 헤매며 이제나 저제나 하나님의 구원의 빛이 임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안고 살다고 지쳐 버린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해 자신의 지난날의 침묵이 결코 무관심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때를 기다려 온 것임을 밝히시며 머지않아 서광의 빛이 그들의 발길을 밝혀 줄 것임을 선언하신다.

 

  스가랴서 1장 초두에서는 하나님께서 스가랴에게 말씀이 임하는 내용이다. 조상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2절), 현세대를 향한 회개의 촉구(슥 3-4절), 사람은 유한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는 사실의 선포(5-6절)를 하신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의 말씀이 선포되었으나 그들은 순종하지 않았고, 결국 하나님의 징벌을 받았다. 이제 현세대도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회개하지 않으면 그와 같은 운명에 처해진다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가랴는 주님의 말씀 “너희 조상들을 본받지 말라 옛적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악한 길, 악한 행위를 떠나서 돌아오라”에 순종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충성하는 것이 생명의 길이라는 예언적 경고를 선포한다(슥 1:3-4, 암 5:10-27; 4:1-15; 호 6:1-3; 14:1-3; 사 1:18-31; 42:18-25). 이것만이 축복과 형통의 길이며(신 6:4-9; 7:12; 11:13-23, 28; 암 5:10-27; 4:1-15; 호 6:1-3; 14:1-3; 사 1:18; 시 1:1-6), 사탄에게서 승리할 수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벧전 2:2). 특히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도는 말씀임을 강조한다(슥 1:6; 사 40:6-8; 55:10-11; 57:19). 여기에서 예언적 명령(슥 1:3-4절, 불의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는 명령)은 스가랴서의 중간 단원인 스가랴 7:1-8:23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7:9-12; 8:16-17).

 

 스가랴가 가장 먼저 백성에게 전한 메시지는

 이스라엘의 과거에 대한 회고였다(2절). 그들의 선조들이 여호와와 그의 말씀을 꾸준히 거역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께서 분노하셨던 것이다(4하절). 하나님의 분노는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체험했던 모든 재앙과 환난을 통해서 드러났다(5절). 스가랴가 4절에서 옛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회고하며 기록하는 말씀은 이스라엘의 모든 선지자의 가르침을 요약하는 말이며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렘 25:5, 참고 겔 24:14)는 말씀을 회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울러 6절의 “내가 종 선지자들에게 명한 내 말과 내 전례들이 어찌 네 열조에게 임하지 아니하였느냐?”라는 수사학적인 질문은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언약적 저주들을 연상케 한다. 심지어는 ‘임하다’, ‘명하다’, ‘전례’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들은 신명기 28장에서 사용되는 단어들이다(참고 신 28:2, 15). 백성의 응답에 사용되는  “여호와께서(우리에게 행하시려고) 뜻하신 것을(우리에게) 행하셨도다”(6하절) 역시 예레미야애가 2:17, 예레미야 24:8, 51:12 등을 배경으로 하는 말씀이다.

 

  자신의 사역에 대한 정당성과 역사성을 옛적 말씀과 연결하여 정리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역의 능력은 5-6상절에 제시된 수사학적인 질문들에서 비롯된다. “너희 열조가 어디 있느냐? 선지자들이 영원히 살겠느냐?” 그들의 선조들은 모두 죽었다. 그들에게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들도 모두 죽은 지 오래다. 그러나 폐허가 되어 버린 예루살렘의 모습은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확실하게 성취되었는가를 보여 주는 증거로서 그들과 함께한다. 여호와의 말씀과 전례들은 아직도 건재한 것이다. 스가랴는 자신을 바로 이 영원히 존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로 보았던 것이다.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스가랴의 능력과 권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