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언약적해석)

3. 스가랴서의 사회적 배경

호리홀리 2015. 4. 21. 09:33

3). 사회적 배경

 


 

  성경의 시대를 정확히 측정하거나 그 증거를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스가랴서는 스가랴서 스스로 정확한 시대적 배경을 제시한다.

 

  다리우스의 정복정책 후 자신의 영토를 20개의 하부분할구역(satrapy)으로 나누었으며 각 자치구역에 태수를 임명하였다. 예루살렘 주변은 이 하부분할 구역 가운데 하나님 예후드(Yehud)라는 독자적인 행정구역에 속하였다. 스가랴는 바로 이 예후드 지역에 살았으며, 특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다. 하지만 이 지역에는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재정적인 문제였다. 예후드는 생산활동의 근거들이 결핍되었으며 농업에 의존하였으나 그나마도 힘들었다(학 1:5-11). 이로 인하여 예후드의 거민들은 경제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두 번째 어려움은 사회적인 문제였다.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과 포로 잡혀가지 않았고 이스라엘에 머물러 있던 자들 사이의 긴장관계가 그것이었다. 이들 사이의 긴장을 일으키는 내용은 ‘누가 진정한 남은 자인가?’였다. 이 두 그룹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진정한 남은 자임을 주장했다. 또한 남 유다와 북 이스라엘에 속해 있던 자들간의 긴장관계도 있었다. 남 유다에 속한 자들은 북 이스라엘에 속한 자들이 덜 종교적이며 순결치 못하다 하여 공동체 속에 함께 속하는 것을 주저하였다(스 4:1-3). 그리고 이스라엘의 멸망 이후 이 땅으로 이주해 온 사람들과의 긴장도 존재했다.

 

  세 번째의 어려움은 정치적인 문제였다. 원래 예후드는 페르시아 자치 구역의 일부에 속하였다. 그러나 포로 귀환이후에 예후드는 자체의 총독을 갖고 독자적 행정구역이 되었다. 이로 인하여 사마리아 권위자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이 축소되는 것을 분개하였다. 

  마지막 어려움은 공동체의 신앙적 위기가 직면하는데 있었다. 이들 가운데 혼합주의가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바벨론을 떠나지 않았던 자들이 이방 종교와의 접촉을 시도하였다. 이로 인하여 포로 귀환 공동체 역시 변질된 이교적 혼합주의의 유혹에 직면해야 했다. 공동체의 신앙적 순결은 점차 위기에 이르게 되었다(학 2:10-14). 또한 신앙적 순결의 상실은 언약 백성으로서의 윤리적 의무와 책임에 대한 무관심을 야기 시키고 말았다(슥 1:1-6); 7-8장).

 

  이러한 어려움으로 인하여 백성들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미래의 영광과 현재의 어려움 사이에서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야 했다. 포로 귀환자들은 자신들이 기대했던 영광이 거의 실현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실망했으며, 여호와를 향한 그들의 신앙적 결속은 점차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이 바로 스가랴서의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