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4장,가인의 후예

호리홀리 2015. 4. 16. 11:44

가인은 "놋"으로 간다(4:17). 여기에서 "놋"이란 말 자체가 의미심장하다. 가인은 "놋 땅" 즉 "방랑의 땅"에서 살고 있다.

   가인은  첫 아들을 "에녹"으로 이름 짓는다.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4:17, 개역개정).  "방랑자"가 "성"을 세운 것은 아이러니이다. 아마 자신을 은폐하기 위하여, 혹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을 세웠다.요세의식이다.

 가인의 성에는 많은 후손들이 태어나며, 그곳에서 문화가 꽃피고 있다. 특히 문화의 창달은 가인계통으로 볼 때 아담의 7대 손인 라멕의 세 아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라멕은 최초의 일부 다처주의자로서 그에게는 두 아내가 있었으며, 그의 첫 아내인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주하며 가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그의 두번째 아내인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 ('날카로운 기계'; 개역)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이었더라"고 한다(4:20-22).

   즉, 가인의 도시에 문화가 꽃피며 농사는 야발로(20절), 음악과 예술은 유발로(21절), 기계는 두발-가인으로(22절), 법은 라멕(23-24)으로 발전하고 있다. 라멕의 세 아들인 야발, 유발, 두발-가인은 다 비슷한 이름으로서 모두 "야발" 즉 "생산하다, 가져오다, 이끌다, 인도하다"라는 어근에서 나왔다. 이들은 다 보이지 않는 가능성을 실용적인 것으로 이끌어 내는 통찰과 능력을 가진 자들이었다. 흥미롭게도 예술이 살인자의 활력과 연관된다


  
   가인의 후손들 이야기는 "검가" 혹은 "복수가"로 알려진 라멕의 짧은 시로 갑작스럽게 끝난다. 라멕은 자신의 두 아내를 부르며, 자신이 얼마나 잔인한 보복을 하였는지 자랑하고 있다. "라멕"은 원래 "강한 젊은 이"라는 뜻이며, "아다"는 "장식품", "씰라"는 "그림자", 혹은 "짤랑짤랑"처럼 여성의 아름다운 목소리에 대한 암시로 볼 수 있다(Cassuto 234). 이렇게 보면 "아다"와 "씰라"는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과 매혹적인 소리를 상징해 준다(아가 2:14에는 "얼굴"과 "소리"가 쌍을 이룬다).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



   이 라멕의 검가는 완전한 히브리시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아름다운 평행법과 강력한 영상과 숫자의 병행(x와 x+1)이 나타나지만, 내용은 야만적이기 짝이 없다.

   라멕은 조그만 "창상"을 당했지만 그에 대한 보복으로 "살해"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조그만 "상처"를 입은 것에 대한 보복으로 "생명을 빼앗는다." 그것도 당당한 용사들끼리의 싸움이 아니라 "내가 사람"을 죽였는데, 구체적으로 그 사람은 바로 "소년"이었다. 라멕은 자신이 받은 상처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으며, 그를 반대하고 대적하는 자에 대한 노기로 가득 차 있다. 혹은 우리가 "인하여"(le)라는 전치사를 "하자 말자"로 번역한다면, "내가 때리자 말자, 나는 사람을 죽였고, 내가 상처를 주자 말자, 소년은 죽었다"가 된다(Cassuto 240). 그렇다면 라멕은 자신의 아내들에게 자신의 팔뚝이 얼마나 굵은지를 자랑하고 있다. "내가 잽만 먹여도 죽고, 훅만 넣어도 숨이 끊어진다."

   그는 자신의 잔인한 살인을 아내들에게 뽐내고 있다. 나아가 라멕은 어떤 도전과 복수도 자신이 용인하지 않겠다는 강인한 의지를 가인의 예를 들어 뽐내고 있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24절). 인류의 첫 살인자 가인이 세운 성에는 농업과 목축과 음악과 예술과 각종 산업이 발전하고 있지만, 이 문화는 근본적으로 그 창시자가 "여호와의 앞을 떠나" 세운 것이므로(4:16), 생명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가치가 없다.

   가인의 성에는 억제되지 않은 살인 충동이 분출하며, 끝이 없는 복수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소외되며 인간성은 파괴되고, 이 세상은 무서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느낌을 준다. 라멕의 자랑은 가인 성과 그 문화를 기초부터 흔들고 있다. 



   새로운 복(4:25-26)



  하나님의 구원사는 새로운 아들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아담이 다시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라"(25절).

   여기에서 하와의 태도에 큰 변화가 생겼다. 하와는 "가인"을 낳고 "나도 여호와처럼 창조자가 되었다"고 자랑했으나, 이제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고 고백한다(여기에서 "내게"는 하와를 가리킨다). 즉 4장을 시작하는 말, "내가 득남하였다"와 "하나님이 내게 다른 씨를 주셨다" 사이에 강한 대조가 있다.

   여기에서 히브리어로 "셋"은 "주어진다"(granted)는 뜻이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은 자신이 낳은 것 보다 훨씬 더 좋다. 특히 하와는 셋이 가인을 대치한다고 말하지 않고, 아벨을 대신한다고 말한다. 가인은 장자이지만, 축복을 상속하지 못하고, 동생이 한다. 하나님께서 아벨을 대신하여 다른 "씨"를 주신 것이다.

   가인의 족보와 그 파괴적인 절정과 대조적으로, 새로운 희망이 한 씨를 통해 주어진다. 가인의 성과 문화에 대안적인 역사가 셋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셋과 그의 후손 시대로부터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고 한다(4:26; 12:8; 13:4; 26:25). 더 이상 물질문명이 아니라, 순교자의 피로 이어지는 참된 경건의 역사가 시작되고 있다. 이후로부터 인류의 흐름은 가인 계통으로 추적되지 않는다. 그의 족보는 라멕으로 끝난다. 이제부터는 셋으로 이어진다. 새 생명이 셋으로부터 시작된다. 그와 그의 후손들은 하나님을 의지한다(2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