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30장,누구를 의지하겠는가?

호리홀리 2015. 4. 14. 12:11

 누구를 의지하겠는가?(29:31-30:24) 

        야곱과 라반은 이제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관계가 된다.

 야곱은 첫 7년은 수일 같이 여겼다. 그러나 다음 7년은 수십 년과 같았을 것이다.내가 살아가는 인생은 어떤가?

 30:2에 잠깐 화를 내며 등장한다.여기에서 주인공은 야곱의 아내들이다. 이들을 통하여 야곱의 후손들은 생육하고 번성하지만, 그들 사이에 주도권 다툼이 치열하다.

기본적으로 라헬은 사랑 받지만 무자하며, 레아는 자식은 많이 낳지만, 미움을 받고 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을 인정한다(30:2). 따라서 야곱의 후손들이 등장하는 이 부분은 단지 그들의 출생에 대한 기계적인 묘사가 아니라, 아내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을 보여주는 역동적인 이야기로 독자들에게 다가오며 이 배후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먼저 아이를 낳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1) 레아(29:31-35)
        (2) 빌하와 실바를 통한 라헬과 레아(30:1-13)
        (3) 레아와 라헬(30:14-24)

        야곱의 아내 네 명은 각각 네 명의 자녀를 낳아 모두 12명이 태어나게 된다. 여기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아내들끼리 야곱의 사랑 받기 위해 경쟁하면서, 그의 자식들의 이름을 짓는 부분이다. 그들은 아이들의 이름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 상태를 보여준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어머니들이 자녀 이름을 지을 때, 바락(‘벼락’), 라헬(‘암양’), 다말(‘종려’)과 같이 자연의 요소를 가져오거나, 혹은 주님의 이름을 넣어(엘리야, 요나단, 여호야긴) 믿음을 표현하였다. 그런데 여기에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는 전혀 나타나지도 않으며, 아내들이 서로 경쟁하면서 아이를 낳고 이름을 짓는다. 아이들의 이름이 어머니의 기쁨과 좌절을 표현한다. 즉, 정상적인 이름 짓기가 아니다. 

         레아(29:31-35). 
         “여호와께서 레아에게 총이 없음을 보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나, 라헬은 무자하였더라”(31절)

이 이야기의 중심 문제를 소개하고 있다. 불임의 문제는 아브라함 이야기가 시작될 때에도 제기 되었던 것이다(11:30). 그런데 왜 라헬이 무자한 것 배후에 주님이 계셨다고 말할까? 앞장에서 주님은 야곱의 후손이 ‘땅의 티끌’처럼 되리라고 말씀하셨다(28:34). 이제, 야곱이 자신의 참 아내로 생각하는 라헬이 무자하다. 따라서 주님께서 이 불임의 배후에 계신 것이 분명하다. 이리하여 야곱의 인간적인 계획이 무산된다. 야곱은 라헬을 자기 아내로 삼았고 후손을 이어가고 싶었지만, 주님은 레아를 그의 아내로 만들고 후손을 이어가게 하신다. 따라서 야곱의 인생에 두 개의 역전이 생긴다. 야곱은 라헬과 살려고 했으나, 라반이 그를 속였고, 야곱은 라헬을 통해 가족을 이루고자 했지만, 주님은 레아의 태를 여신다.
남편에게 무시당하며, 동생에게 미움 받는 레아는 홀로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녀에게 복을 주시고 네 아들을 연거푸 낳게 하신다(31절).그리고 그녀는 조금씩 성화된다. 
(1) 레아는 첫 아들 ‘르우벤’을 낳고, “여호와께서 나의 괴로움을 권고하셨으니 이제는 내 남편이 나를 사랑하리로다”라고 고백한다(32절). ‘보라 아들이다’(르우벤)라는 레아의 이름짓기는 그의 비참한 상황을 보여준다.
(2) 레아는 둘째 아들 ‘시므온’을 낳고, “여호와께서 나의 총이 없음을 들으셨으므로 내게 이도 주셨도다”라고 말한다(33절). 즉, 레아는 시므온의 출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응답을 경험하게 되었다 (창16:11).
        (3) 레아는 셋째 아들 ‘레위’를 낳고, “내가 그에게 세 아들을 낳았으니 내 남편이 지금부터 나와 연합하리로다”라고 말한다(34절). 그녀는 남편과 깊은 분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자식이 이것을 메워줄 수 있을까?
        (4) 레아는 넷째 아들 ‘유다’를 낳고,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한다(35절). 아마 레아는 네 번째 아들을 낳고, 더욱 깊은 신앙적 체험을 한 것 같다. 그러나 레아는 여전히 남편에게 냉대를 받는다. 

        라헬과 레아(30:1-13)
        라헬은 더욱 절망적이 되었다. 이리하여 그녀는 옛 리브가를 닮아가며(25:22), 야곱에게 ‘아들을 달라’고 한다. 그러나 야곱은 폭발한다. “내가 하나님이라도 된단 말이오? 당신이 임신할 수 없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이오?”(표준, 31:2). 이 점에 있어서 야곱의 반응은 그의 아버지 이삭과 아주 다르다(25:21). 이삭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왜냐하면, 아브라함 가문에서는 하나님 만이 자식을 주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라헬도 이 점에 있어서 실패하였으며, 빌하를 통하여 어머니가 되고자 한다. 이 점에 있어서 그는 하갈을 통하여 후손을 가지려는 사라를 닮았다 (16:1).
        (1) 라헬은 빌하를 통하여 첫 아들 ‘단’을 낳으며,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라고 말한다. 즉, 그녀는 ‘단’을 그의 아들로 입양하였다.
        (2) 라헬은 빌하를 통하여 둘째 아들 ‘납달리’를 낳으며, “내가 형과 크게 경쟁하여 이기었다”라고 말한다(8절). 앞의 29장에서 라헬은 수동적이었다. 그러나 이제 ‘내가 이겼다’고 말한다(32:29 참조). 그러나 정말 라헬이 이긴 것인가? 라헬은 아직까지도 하나님께서 그의 태를 닫고, 레아의 태를 여신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3) 레아도 라헬의 본을 따라, 그의 여종을 실바를 준고 다섯 째 아들 ‘아셀’을 얻으며, “모든 딸들이 나를 기쁜 자라 하리로다”고 말한다(13절). 즉, 레아는 ‘나는 행복하다’고 고백하고 있다.  

         레아와 라헬(30:14-24)
        두 자매가 한 남편을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리고 있을 즈음, 레아의 첫 아들 르우벤은 상당히 자라게 되었다. 그는 어느 날 우연히 ‘합환채’라는 식물을 발견하게 되며 이것을 그의 어머니에게 드렸다(14절). 합환채는 가지과에 속하는 만드라고라의 작고 노란 열매로서, 이 열매의 즙이 번식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열려져 있었다(이 식물의 이름은 ‘애무하다’는 어근을 갖고 있다). 라헬은 이 소식을 듣고, 그 합환채를 팔라고 부탁한다. 레아는 남편을 하룻밤 소유할 수 있는 조건으로 합환채를 동생에게 넘긴다. 이리하여, 라반의 장녀 레아가 야곱의 장자의 도움을 받고, 그의 동생에 대하여 주도권을 갖게 된다. 레아는 남편의 사랑과 인정을 받고 싶고, 라헬은 아들을 갖고 싶어 한다.
        (1) 레아는 그날 밤 야곱과 동침하여 아들을 낳았으며, “내가 내 시녀를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잇사갈’로 지었다(18절). 여기에서 ‘값을 주다’는 말은 바로 야곱의 라반 집 생활을 보여준다(29:15, 30; 30:25-31:43). 그는 ‘종살이’를 하고 있으며, 그 ‘삯’을 받고 있다. 이와 같이 레아도 야곱을 고용하여 아들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레아가 야곱을 하룻 밤 사도 야곱은 그를 사랑하지 않는다. 야곱 자신은 안팎으로 종이 된 신세였다.
        (2) 레아는 여섯 번째 아들을 낳고 ‘스불론’이라고 이름지으며,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거하리라”고 말한다(20절). 스불론은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후한 선물’이었다( // 29:34).
        (3) 라헬이 드디어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고 부른다. 요셉의 탄생 이야기는 여기에서 가장 길게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 고로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하나님이 나의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함이었더라”(22-24절). 여기에서 강조점은 ‘하나님께서 라헬의 태를 여셨다’는 데 있다. 앞에서 라헬은 레아에게서 합환채를 샀지만, 이것을 먹고 아들 낳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아들을 낳게 하셨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라헬은 아들을 더 갖고 싶어 ‘요셉’으로 이름짓는다.
이리하여 레아는 유다의 어머니가 되고(29:35), 라헬은 요셉의 어미가 된다(30:24). 이 둘은 앞으로 열두 지파의 중심 지파를 이룰 것이다. 열두 아들이 모두 중요하지만, 이 두 아들이 다음에 나오는 이야기의 중심을 이룬다. 이미 여기에서도 유다가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양을 치는 야곱(30:25-43)

                야곱은 요셉을 낳자 말자 가나안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한다(25절).

달리 말하자면,야곱은 그 동안 오직 한 가지만 기다려 왔다. 즉, 그의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아들을 한 명 낳기 만을 바라며 기다려 왔다. 이제 14년 만에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는 외삼촌 라반에게 하란을 떠나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랐다. 

        야곱과 라반의 협상(25-36절)
        야곱은 라반과 새로운 협상을 하게 된다. 라반도 보통 내기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야곱도 만만치 않다. 두 고수가 협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 내용에는 수많은 허점과 모호성이 깔려 있다.
        (1) 먼저 야곱은 자신이 충성스럽게 외삼촌을 위하여 일하였음을 말한다(26절).
        (2) 라반은 이 점에 대하여 인정하며, “여호와께서 너로 인하여 내게 복 주신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유하라”고 말한다(28절). 여기에서 라반은 야곱이 떠나겠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으며, 단지 ‘하나님의 축복’에 대하여서만 말하는 것이 흥미롭다. 라반은 야곱을 계속 데리고 있고 싶어한다. 그는 야곱에게 ‘내가 은혜를 입었으면’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앞에 나온 말 ‘무료’와 대조된다(29:15). 그는 그 동안 야곱을 실컷 부려 먹었는 데, 이제 와서 ‘은혜’를 구한다고 말한다.
        (3) 야곱은 자신이 그 동안 최선을 다하였을 뿐 아니라, 주님께서도 그를 통하여 라반에게 복을 주셨음을 다시 한 번 더 길게 말한다(29-30절). 여기에서 ‘번성하였다’는 동사는 벧엘 사건을 반영해 준다(28:14). 주님께서는 ‘내가 어디로 움직이든지 내 공력을 따라 삼촌에게 복을 주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어느 때에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라고 묻는다(31절).
(4) 라반은 야곱에게 새로운 봉급 계약을 하자고 제안한다. 이에 대해 야곱은 매우 수수한 급료를 제안하게 된다. 그는 좋은 양떼는 모두 라반의 것이 되며, 비정상적으로 색이 있는 짐승만 그의 것이 되도록 하자고 한다. 그는 엄숙하게 법적인 용어로 말한다. 그는 색갈을 통하여 ‘내 의’를 천명하겠다고 말한다.
        (5) 라반은 야곱의 함정에 빠진다. 그렇지만, 이 단계에서 그는 ‘안전제일’ 원칙을 지키며 단음절로 말한다. ‘너가 말한대로 하라’는 짧은 말이며, 앞에 야곱이 말한 바와 같이 ‘참으로’(29:14), ‘진실로’(30:34) 등의 말이 없다. 그는 매우 모호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을 생각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새 번식법을 통하여 자기 양을 기하급수적으로 불리는 야곱 (37-43절)
        라반의 양을 치던 목자 야곱은 그 동안 라반에게 수많은 사기를 당했는 데, 이제 비로소 엄청난 재물을 모으게 된다(43절). 그는 특이한 번식 방법을 개발한다. 라반도 그 동안 야곱을 통하여 ‘번성하였다’(30절). 그러나 야곱은 더욱 ‘크게 번성한다’(43절).
        라반은 야곱과 사흘 길이 뜨게 움직였다(36절). 이것은 그의 짐승과 야곱의 짐승이 서로 접촉을 못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는 얼룩 무늬가 없는 짐승을 차지하게 되었으므로, 무늬가 있는 야곱의 짐승과 섞이지 않아야 자기 재산이 불어나기 때문에 머리를 쓴 셈이다. 그런데 야곱은 이 기간에 새로운 번식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37절).
        여기에서는 다시 한 번 ‘색깔’의 싸움이 이루어진다. 야곱의 외삼촌 라반은 ‘희다’는 뜻이다.

35절부터 ‘흰 바탕’이 나오며, ‘흰 것’은 모두 ‘라반의 것’이다.

‘백인’ 라반은 ‘흰 것’을 가진다(35절).

그런데 야곱은 ‘흰 나무’에서흰 무늬’를 내고 있다.

즉 야곱은 ‘라반으로 라반과 싸운다’. 그는 ‘흰 것’의 가지에서 ‘흰 것’을 만들고, 흰 것이 지나갈 때 그 가지를 보여준다.

그는 특히 건강한 양 때에만 자신의 번식법을 사용하며, 약한 양은 그냥 버려둔다.

앞에서 그가 에서와 싸울 때에는 붉은 색으로 승부를 걸었는 데, 여기에서는 흰 것으로 싸운다.

즉, 그는 에돔과 라반의 가장 큰 강점으로 그들과 싸워 이긴다.

 

 야곱의 싸움을 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27장. 야곱은 사기꾼이다.
        29장. 라반은 사기꾼의 사기꾼이다.
        40장. 야곱은 사기꾼의 사기꾼의 사기꾼이다.
        
        이리하여 라반의 좋은 양은 다 야곱이 취하게 되며, 그는 거부가 되었다.

“이에 그 사람이 심히 풍부하여 양떼와 노비와 약대와 나귀가 많았더라”(43절).

이 마지막 절은 야곱의 부가 라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해준다(14:31 참조). 야곱이 앞에서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의 껍질을 벗겨 양떼가 새끼를 밸 때, 그 앞에 둔 것은 어떤 비방이나, 주술이나, 유전적인 것이라기 보다, 하나님의 축복이었음을 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