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언약적해석)

창세기29장,함께하시는 하나님

호리홀리 2015. 4. 14. 12:02

야곱은  형과 아버지를 속였다.

이제 그는 그 값을 밧단 아람에서 외삼촌에게 톡톡히 지불하게 된다.

그는 결혼 첫날 밤부터 시작하여 밧단 아람 생활 20년을 마무리하는 날까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사기를 당한다. 이 모든 일의 배경 속에서 하나님은 야곱을 성숙하게 하시며, 야곱을 지켜주셔서 결국 고향 땅으로 돌아오게 된다.
        
        1. 만남(29:1-30)

        1.1. 야곱과 라헬의 첫 만남(29:1-14) 

        아브라함은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만나게 된다. 리브가는 이삭에게 최고의 신부감이었다.

이제 창세기 30장에서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하란에 도착하였으며, 그 역시 우물로 나온다.

그는 우물 가에서 동네의 목자들을 만나며, 라반에 대하여 묻는다. 그들은 라반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가 평안하다고 전한다. 그 때 한 소녀가 나아 왔다.

그는 하란에서 만난 첫 소녀였으며, 알고 보니 라반의 딸 라헬이었다. 야곱은 라헬을 보고 너무 감격하여, 입맞추고 큰 소리로 운다(11절). 야곱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본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벧엘에서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지켜주셨다.

        리브가를 찾아온 아브라함의 종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은 야곱을 우물로 인도하신다. 그 때에는 리브가가 아브라함의 종의 약대들을 돌보아주었지만, 이젠 야곱이 라헬의 양떼들을 돕고자 한다. 그러나 우물 물은 ‘돌’로서 닫혀 있었고, 야곱은 목자들에게 함께 돌을 옮기자고 제안하였지만, 그들은 ‘우리는 할 수 없다’(8절)고 대답한다.

그러나 야곱은 ‘할 수 있는 자’이다(32:26, 29, yukal).

그는 장정 4명이 옮겨야 하는 돌을 홀로 옮긴다.

어디에서 이런 힘이 나오는가?

그 순간 그는 라헬 보고 사랑에 빠졌는가?

그러나 여기에는 라헬의 미모에 대한 언급은 없으며 단지 라헬과 그의 양떼만 나온다.

이 본문에서는 ‘돌’이 중요하며, 돌이 반복된다.

돌은 ‘우물 아구를 덮었다.’

목자들은 ‘돌을 옮기고 양을 먹이며,’ ‘다시 돌을 제자리에 덮는다.’

야곱은 홀로 ‘돌을 들어낸다’(10절).

 

즉, 여기의 ‘돌’은 ‘상징성’을 띠고 있으며, 야곱은 그의 앞에 있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하는 자로 처음부터 등장하고 있다.

        내레이터는 야곱이 우물을 덮고 있는 돌을 들어내고, 또 닫는 장면을 놀란듯이, 생생하게 그리고 있다.

사실 우물가에서 배필을 만나는 장면은 하나의 전형적 장면이다. 이후 모세가 그의 아내를 만날 때에도, 우물 가에서 목자들과 싸운다(출 2:17).

 그리고 그는 미디안 제사장의 일곱 딸들의 양떼에게 물을 준다.


        라헬은 그의 아버지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한다.

라반은 라헬의 이야기를 듣고, ‘달려 나온다’(13절). 이 모습은 옛날 아브라함의 종이 왔다는 소식을 리브가에게 듣고 ‘달려 나온 모습’을 우리에게 연상시켜 준다(24:29). 그 때 그는 큰 선물을 받았다.

이제 아브라함의 손자가 왔으니, 얼마나 많은 선물들을 가지고 왔을까?

아마 라반은 옛날 보다 늙었지만, 더 열심히 달려 왔을 것이다.

그는 야곱을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그러나 그는 곧 야곱이 무일푼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생각이 달라졌다.

그는 야곱을 통하여 그의 ‘모든 일’을 들었기 때문이다(13절). 그는 돈도, 신부 값도 종도 없는 무일푼이었다.
        라반이 야곱을 향하여 ‘너는 참으로 나의 골육이다’라고 말하지만, 실망을 감출 길이 없다(14절). 그러나, 야곱은 훌륭한 ‘노동력’을 갖추고 있다.

그는 홀로 ‘우물을 막고 있는 돌’을 들어낼 뿐 아니라, 다시 닫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우물의 돌을 돌려놓은 자이다.

그는 노동자로서 야곱을 탐내며, 그의 집에서 일하라고 제안한다.


        이 장에서 야곱은 비교적 침묵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나, 주님의 약속에 대해(28:15) 별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야곱의 말 보다는 행동으로 주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드러내고 있다.

        1.2. 라반이 야곱을 속임(29:15-30)

        “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의 생질이나 어찌 공으로 내 일만 하겠느냐 무엇이 네 보수겠느냐 내게 고하라”(15절). 라반의 제안은 공평해 보이며, 또 너그럽게까지 보인다. 아무리 친척 관계이지만, 무보수로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여기에 함정이 있었다.

라반의 제안에서, ‘일하다와 ‘삯'이 핵심 용어이며, 이 두 단어가 앞으로 야곱의 밧단 아람 생활 20년을 결정하게 된다. 라반은 ‘무보수’를 원하지 않았고, ‘적절한 보수’를’ 주겠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이면에는 삼촌 조카의 관계가 아니라 주인과 종의 관계가 전제되어 있다.

“라반은 사냥꾼, 야곱은 여우”이다(Fokkelman). 그러나 야곱은 이 순간 의심이 없었다. 이런 관계는 이후 두 사람 사이에 큰 분쟁의 불씨가 된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7년 동안 봉사하겠다’고 대답한다. 라반은, “그를 네게 주는 것이 타인에게 주는 것보다 나으니 나와 함께 있으라”고 대답한다(19절). 그러나, 여기의 ‘그’는 누구인가? 우리는 문맥을 따라 분명히 ‘라헬’로 이해하며, 야곱도 그렇게 이해하였겠지만, 라반은 단지 ‘그를 주겠다’고 만 대답하며, ‘라헬’을 주겠다고 명시하지 않는다. 이후의 이야기를 보면, 이 때 라반은 이미 ‘레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을 지 모른다. 레아는 ‘안력이 부족하며,’ ‘야곱은 라헬을 사랑한다.’ 그렇다면, 레아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후에 그는 레아를 ‘덤’으로 주어버린다.
        이것도 모르고 야곱은 7년을 수 일 같이 여겼다. “야곱이 라헬을 위하여 칠 년 동안 라반을 봉사하였으나 그를 연애하는 까닭에 칠 년을 수일 같이 여겼더라”(20절).

사랑이 얼마나 숭고하며 사람을 승화시킬 수 있지 가장 잘 보여주는 구절로 여겨진다.

7년이 지났지만, 라반이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는지 야곱은 라반에게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21절).

이리하여, 야곱은 장가를 가게 되었고 초야를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라반은 “저녁에 그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23절).

야곱이 신혼의 단꿈에서 깨어 일어나 보았더니, 그의 신부는 ‘레아였다.’(25절).

그는 충격을 받는다.

왜냐하면, 그는 라헬과 결혼한 후, 바로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앞 장에서 리브가는 “너가 몇 날 동안 그와 함께 거하라”(27:44)고 말했는데, 야곱은 첫 7 년을 ‘수일처럼’ 여기고 살지만(29:20), 이제 새롭게 7 년을 더 일해야 했다.

이리하여 야곱의 계획 뿐 아니라, 리브가의 계획도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라반은 ‘새로운 사기꾼’으로 등장한다(27절).

그는 야곱 보다 더 교활하다.

그는 야곱의 약점, 즉 라헬을 향한 사랑을 안다.

야곱은 사실을 알게 된 후 분노하며, 라반에게 따진다.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께 봉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찜이니이까”(25절).
 

       이 때 라반의 대답은 단호하다.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26절).

“큰 딸을 두고서 작은 딸부터 시집 보내는 것은 이 고장의 법이 아닐세”(표준)는 더욱 강력하다.

이 구절은 바로 앞에 있는 16절과 연관된다.
 

       물론 라반의 행동은 관습법적(형식적)으로는 옳을 수 있지만, 도덕적으로는 비난 받아야 한다. 그는 ‘라헬’을 걸고 야곱과 7년 동안 노동계약을 한 것이다.

즉, 이것은 사기이다.

그러나 내러티브적 관점에서 라반이 야곱을 속인 것은 야곱이 에서를 속인 것과 완벽한 대칭을 이룬다(창27).

라반이 야곱에게 ‘둘째를 첫 째 보다 먼저 줄 수 없다’고 말할 때, 야곱은 그가 한 짓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여기에서 ‘둘째’라는 단어는 ‘작은 자’가 아니라, ‘보잘 것 없는 자’이다(창 19:31, 34-35, 38; 29:26; 삼상9:21; 단8:9).

따라서 라반의 대답은 야곱의 과거를 찌르는 것이었다.

독자들은 이런 아이러니가 하나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야곱의 과거가 그의 발목을 잡는다.

이리하여 내레이터는 야곱이 축복을 얻기 위해 형과 아버지를 속인 것이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한 것임을 말해준다. 물론 야곱의 계획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만, 야곱의 계교와 속임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말해준다.

        이리하여 야곱은 그의 사랑하는 라헬을 위하여 7년을 더 일하게 된다.

라반이 한 말,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그를 위하여 또 칠년을 내게 봉사할지니라”(27절에서 다시 ‘일하다’가 나타난다.

, 야곱은 ‘종살이’를 하고 있다.

야곱은 더 이상 라반의 ‘형제’가 아니다.

앞에서 야곱은 라반과 ‘함께 거하였다’(14절). 그러나 이제 야곱은 라반을 ‘섬기는’ 신세로 변한다. 그 동안은 라헬을 위한 사랑 때문에, 7년을 하루같이,수고의 고통도 잊었지만, 이제는 하루가 칠년같은 벅찬 노동을 하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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