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 6:8-23,포위되었을 때

호리홀리 2015. 4. 14. 10:22

 포위되었을 때(왕하 6:8-23)

     아람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끊임 없는 분쟁이 있었다. 이제 아람 왕이 , 기습적인  전투를 통하여, 이스라엘 왕을 죽이려고 한다.  우리는 이 들이 왜 싸우는지, 여기에 등장하는 두 왕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어디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지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다. 그렇지만, 열왕기 저자는 이런 사건들을 통하여, 아합의 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사라지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선지자 엘리사는 “기계적인 심판 집행자”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에 최선을 다하며, 아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더 큰 평화의 틀을 짜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1. 아람군의 기습작전과 엘리사의 신통력(6:8-12)
        아람 왕은 한 번도 이런 싸움을 싸워 본 적이 없었다. 그는 그의 군사 전문가들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군사적인 약점을 정확하게 찾아내었다. 그들의 정보수집 능력은 탁월하였다. 그들은 “함께 모략을 짜며”, 이스라엘 진지 가운데 어느 곳을 공격하여야 하는지 정확하게 집아내었다. 그러나 번번히 실패하였다. 뿐만 아니라,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을 칠 계획을 여러 번 짜고, 그의 특수부대를 보내어 암살을 시도하였지만, 번번히 실패하였다(10절). 왜냐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아람의 공격 시간과 장소를 정확하게 알려 주었기 때문이다(9, 10절).
        아람 왕은 현재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드디어, 그의 신하들까지 의심하게 되었다. 그는 “내부 밀고자”가 있을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11절). 그는 신하들에게 새로운 군사작전을 지시하기 전, 내부 기밀 유출 가능성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묻고 있다. “우리 가운데서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자가 없고서야,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이냐?”(표준).
        그렇지만, 신하들은 아람 왕이 몰랐던 “새로운 비밀”을 알려준다. “임금님,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선지자가 있어서, 임금님께서 침실에서 은밀히 하시는 말씀까지도 다 알아서, 일일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줍니다”(12절). 엘리사는 아람 왕의 전략 회의장 뿐 아니라, “침실에서 은밀하게 하는 말까지” 모두 훤히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정상적인 정보 수집 능력의 범위 밖에 있는 것이며, 달리 말하자면 왕의 생각까지도 간파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엘리사는 “천리안”이었다.  

        2. 아람군의 도단성 포위 작전(6:13-17)
        2.1. 엘리사를 포위하는 아람 군대(13-14절)
        아람 왕은 “엘리사”를 제거하지 않고는, 결코 승리를 거둘 수 없다고 판단하고, 엘리사를 먼저 죽이기 위하여, 그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게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람의 정보국에서는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람의 정보 수집 능력의 정확성과 신속성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더 확인하게 된다. 아람 왕은 신속하게 움직인다. “왕은 곧 그 곳에 기마와 병거와 중무장한 강한 군대를 보내어서, 밤을 틈타 그 성읍을 포위하였다”(14절). 그렇지만, 어째서 그는 자신의 생각까지 천리안으로 훤히 보고 있는 엘리사를 잡으려고 보낼까? 그는 여전히 세상의 군사력을 믿고 있다. 그는 엘리사의 배후에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엘리사와 아람 왕의 대조를 보라.
        9절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사람을 보내어서”
        13절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엘리사)를 붙잡을 것이다”
        14절 “(아람) 왕은 기마와 병거와 중무장한 강한 군대를 보내어서”
        하나님의 사람과 아람의 왕은 모두 자신의 “사자”를 보내고 있다. 엘리사는 “이스라엘 왕”을 살리기 위해, 아람 왕은 “엘리사”를 죽이기 위하여 사자를 보내고 있다. 이것이 “선지자”와 “왕”의 차이점이 아닌가. 

        2.2. 아람 군대를 포위한 하나님의 군대(15-17절)
        아람 군대는 “야간 침투 작전”을 벌렸고, 그들의 작전은 성공적이어서 엘리사가 머물고 있던 “도단 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였다(14절). 그들이 사마리아에서 별로 멀지 않은 도단까지 단숨에 쳐들어와 포위한 것을 보면 이 때 이스라엘이 얼마나 연약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선지자 한 명을 두려워 하여 그를 사로잡으려고 한다. 아람 군대가 도단성을 포위하고 엘리사를 포로로 잡으려고 애쓰는 것을 보며, 우리는 왜 엘리야와 엘리사가 "이스라엘의 병거와 기병"으로 불려지는지 알 수 있다(왕하 2:12; 13:14). 이스라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열국과 싸우는 일을 하였다.
        엘리사의 시종이 그 다음 날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보니 성이 완전히 포위 되었음”을 알고 충격을 받으며, “큰일이 났습니다. 스승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라고 묻는다(15절). 그는 아침에 일찍 일어났지만, 아직도 영적인 세계를 보는 눈이 없었다.  엘리사는 그에게 “두려워 말라”(16절)고 말하며 격려한다. 이 말씀은 “구원 예언”에 대한 전형적인 형식이다(창 15:1; 26:25; 사 41:10; 렘 1:8; 애 3:57).  믿음의 눈을 떴을 때, 그는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었다. 두려움에 떨던 종이, 이제 담대함을 갖게 되었다.
        엘리사는 그의 시종이 “눈을 뜰 수 있도록” 기도하자, “온 언덕에는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루 에워싸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15절). 여기에서 두 군대의 대조가 분명해 진다.
        (1) 아람 군대는 “군마와 병거로 포위하고 있었다”(15절). 그러나 주님의 군대는 “불 말과 불 수레로 가득하였다”(17절). 아람 군대가 아무리 강하여도, 그 군대는 불탈 수 밖에 없는 “인간의 군대”에 불과하였다. 불말과 불수레로 무장한 거룩한 천상의 군대와 비교될 수가 없었다.
        (2) 아람 군대는 “성을 포위하고 있었다”(15절). 그러나 “온 언덕에는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루 에워싸고 있었다”(17절). 아람 군대는 기꺼하여야 “도단 성”을 에워쌀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군대는 “온 언덕을 모두 에워싸고 있다.”  

        3. 사마리아 성에 갇힌 아람군(6:18-20)
        하나님의 군대가 엘리사를 보호하고 있음을 아람 군대는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엘리사를 잡기 위하여 “내려온다”(18절). 그러자 엘리사는 두 번째 기도를 드린다(19절). 그의 첫 번째 기도는 그의 시종이 “눈을 뜨는 것”이었으나, 두 번째 기도는 “저들의 눈을 멀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들의 눈이 얼마나 어둡게 되었는지 우리는 잘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 사마리아 성까지 걸어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대로 보지 못하고,” 엘리사의 “소리” 만 듣고 있다. 엘리사는 그들을 이끌고 사마리아 성 안으로 들어가며, 성 안에서 “그들이 눈을 뜰 수 있도록” 기도하자, 그들은 적국의 수도 안에 갇혀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20절).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야전 사령관으로 활동한다. 그에게는 거룩한 군대의 전차와 말들이 함께 한다(6:17). 엘리야를 하늘로 데려간 전차와 말들이 그의 후계자인 엘리사의 사역을 지원하고 있다(왕하 2:11). 엘리사는 홀로 천상의 대군을 이끌고 싸운다(6:18-19). 적군은 철저하게 무능해진다. 그는 눈이 어두워진 적군들을 도단에서 데리고 12마일 북쪽에 있는 사마리아 성까지 끌고 간다.

        4. 아람군에게 자유를 주는 엘리사의 평화제안(6:21-23)
        4.1. 아람 군을 죽이려는 이스라엘 왕(21절)
        이스라엘 왕은 “호박이 넝쿨 채”로 들어온 것을 보자 마자, 엘리사에게 두 마디를 한다.
        (1) 그는 엘리사를 먼저 “내 아버지여”라며 부른다. 그는 엘리사를 존경하며, 엘리사의 말을 순종하며, 왕으로서 사용할 수 있는 최고의 존칭으로 엘리사를 부르고 있다.         

(2) 이어서 왕은 바로 “내가 칠까요?”라고 묻는다(21절하). 그의 눈에는 복수심이 이글거리고 있었다. 이 때 아람 군인들의 가슴은 어떠했을까? 

       4. 2. 아람 군을 살리고 잘 대접하라는 엘리사(22절)
        그러나 엘리사는 “왕이 잡지도 않은 군대를 칠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다. 그렇다면, 엘리사는 왜 그들을 데려 왔는가? “원수에게 친절을 베풀어 그들을 더욱 당황하게 하려는 것인가”? 혹은  “원수를 잘 먹이라는 격언”을 따르는 것인가?(브루거만; 잠25:24). 이 이야기에서 엘리사는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의 중간에 화해자로 서 있다.
그는 두 왕들과 두 나라의 군인들에게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가르치려고 한다. 그는 두 나라와 군대의 화해를 시도하고 있다. 그는 “칼과 활로 사로잡은 군인들이라도 칠 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떡과 물을 주어서 먹고 마시고 그 주인에게 돌아가게 하라”고 말한다. 그는 원수와 친구를 모두 바른 길로 인도하고 있다.            

        4.3. 햇빛을 지나치게 베푸는 이스라엘 왕(23절)
        엘리사는 이스라엘의 왕에게 단지 “떡과 물을 주어 보내라”고 말하지만(22절), 왕은 “식물을 많이 베푼다.”(23절). 그는 분명히 적군을 지나치게 대접하고 있다. 지나친 햇빛은 적군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무시하게 하였을 것이다.
        열왕기 저자는 “그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였다”는 말로 이 이야기를 끝낸다(23절). 주님께서 놀랍게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고, 주님이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보전해 주신다. 엘리사는 원수의 군대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지만, 아무도 죽이지 않았고, 두 나라 사이에 평화의 초석을 마련하였다.
        엘리사가 아람 군대에 베푼 잔치는 장차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잔치상에 둘러 앉는 종말론적인 환상을 만들어 준다. 이것은 만국을 위한 잔치상이다(사 25:6). 이방인 로마 백부장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큰 믿음을 보였을 때, 예수께서는 이 날을 바라보았다.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을 것이다" (마 8:11). 우리도 장차 그 잔치에 동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