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열왕기하(구속사)

열왕기하6:1~7,요단강의 기적

호리홀리 2015. 4. 14. 10:15

엘리사 선지자가 물에 빠진 도끼를 건지는 이야기(6:1-7)는 왕하 4장에 있는 선지자들의 이야기와 이어져야 자연스럽다(왕하 4:1-44). 

        (1) 빚더미에 앉은 한 선지자의 과부 이야기(4:1-7, A)
        <수넴 여인의 아들 이야기>(4:8-37)
        (2) 길갈 선지자 학교에서 음식에 든 독을 풀어주는 이야기(4:38-41, B)
        (3) 길갈 선지자 학교에서 보리떡을 함께 나눈 엘리사 이야기(4:42-44, B’)
        <나아만의 치료 이야기>(5:1-27)
        (4) 선지자 학교 신축공사 중 물에 빠진 도끼를 건지는 이야기(6:1-7, A’)
        위의 네 이야기에서 첫 번째(A)와 네 번째 이야기(A’)는 모두 선지자들이 “빌린 것” 때문에 생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엘리사가 등장하고 있다. 즉, 첫 이야기에서는 한 선지자가 “과도한 빚”을 지고 죽은 후 과부가 된 그의 아내가 두 아들을 종으로 빼앗길 수 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엘리사가 “기름의 기적”으로 그 가정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네 번째 이야기에서는 “빌린 도끼”가 강에 빠져 일어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중앙에 있는 두 이야기는 “음식”과 연관된다(B:B’).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엘리사는 “주님을 경외하는 사람들”과 특히 “선지자들의 가정과 그 생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보여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역사가 아합 가문의 우상숭배와 폭정으로 하향 곡선을 깊게 그리고 있지만, 주님은 선지자 엘리사를 통하여, 자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며 돌보시고 위기에서 구원하여 주신다.
        그렇지만, “빌린 도끼” 이야기는 열왕기서의 현재 문맥에서 바로 아람과의 평화와 전쟁 이야기 속에 “샌드위치”처럼 싸여 있다.
        (1) 나아만의 치료 이야기(5:1-27)
        <물에 빠진 도끼를 건지는 이야기>(6:1-7)
        (2) 아람의 도단 성 포위(6:8-23)
        (3) 아람의 사마리아 성 포위(6:24-7:20)

        이런 흐름에서 보면, “물에 빠진 도끼”를 건진 사건은 앞 뒤와 전혀 흐름을 만들어 주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이야기는 바로 “요단 강” 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라는 점에서 앞에 나온 “나아만이 요단 강에서 받은 치료 이야기”와 직접 연결되고 있다(6:2; 5:10). 또한 “도끼”를 건진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엘리사가 “강을 정복한 이야기”이므로, “거룩한 용사”로서의 엘리사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뒤에 나오는 “아람”과의 전투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도끼”를 건진 사건은 앞의 이야기들(4:1-5:27)과 뒤따르는 이야기들(6:8-7:20)을 이어주는 “고리”로서의 역할을 잘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1. 요단 강에 빠진 도끼를 건지는 엘리사(왕하 6:1-7)

        1.1. 배경: 신학교의 확장(6:1-3)

        여기에 등장하는 “선지자 생도”(개역)는 새 번역에서 “선지자의 제자”(개역개정), “선지자 수련생”(표준, 공동)으로 번역되고 있지만, “여러 선지자들” 혹은 “선지자의 무리”로 번역되어야 한다. 여기의 “아들들”(banim)은 단지 “제자들”이나, “수련생들”이 아니며,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자들을 가리키므로, “선지자들”로 보아야 한다. 따라서 이들은 “신학생들”이 아니며, 엘리사와 함께 일하는 “선지자들”을 가리킨다.  
        “요단 강에 빠진 도끼”를 건지는 이야기의 발단은 간략하게 소개되고 있다(1-3절). 엘리사의 성공적인 사역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게 되었고 현재 일하는 곳은 너무나 협소하여졌으므로, 선지자 학교를 확장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1절). 이리하여, 선지자 학교의 여러 선생들은 “더 넓은 곳”으로 시설을 확충하자는 제안을 하게 되었다(2절). 엘리사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고 있다(3절). 그렇지만, 여기에서 “엘리사”와 “선지자들” 간에 이루어진 두 번의 대화를 살펴보면, 엘리사의 “사도”(士道)와 그의 제자들의 “제자도”(弟子道)가 뚜렷이 나타난다.

        1.1.1. 스승과 제자들의 첫 대화(1-2절)
        선지자들: “보십시오. 우리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살고 있는 이 곳이, 우리에게는 너무 좁습니다.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들보감을 각각 하나씩 가져다가, 우리가 살 곳을 하나 마련하는 것이 좋겠습니다”(1-2절, 표준).
        엘리사 선지자: “가라”(2절 하).
        첫 대화에서 엘리사의 “제자 선지자들”은 새 집을 지어야 할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며, 무엇보다도 “공손하게” 말하고 있다. 엘리사는 “가라”라는 간략한 한 마디로 제자들의 제안을 “허락한다.”

        1.1.2. 스승과 제자들의 두 번째 대화(3절)
        엘리사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갑작스럽게 새로운 제안을 하고 있다.
        한 선지자: “선생님도 종들과 같이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엘리사 선지자: "같이 가자"  
        우리는 왜 제자 가운데 한 명이 “함께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는지 잘 모른다. 그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여러 제자들은 엘리사를 좋아했던 것 같다. 그들은 단지 앞에 나온 게하시처럼, 스승의 능력을 빙자하여, 돈이나 한 몫 벌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지 않다. 여기의 제자는 “함께 갑시다”라고 부탁한다. 그는 단지 엘리사의 능력이나 명예 만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엘리사와 “함께 함”을 좋아하고 있다. 엘리사의 제자들은 함께 만나, 공동의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며, 함께 길을 모색하고, 함께 행동하고 있다. 엘리사는 제자들과 깊은 친밀성과 연대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 신뢰하며, 가깝게 지내고 있다. 참으로 좋은 학교의 모습이다.

        1.2. 위기 상황: 강에 빠진 도끼(6:4-5)
        4절의 주어는 “엘리사”이다. 엘리사는 “그들과 함께 갔고, 드디어 요단에 도착하였으며,” 제자들은 “나무를 베기 시작하였다”(4절). 그 때에 “한 사람이 들보감을 찍다가 도끼를 물에 빠뜨렸다. 그러자 그는 부르짖으며 ‘아아, 선생님, 이것은 빌려 온 도끼입니다"라며 소리질렀다”(5절). 여기에서 “들보감을 쓰러뜨리다”(napal)와 “도끼가 빠지다.”(napal)이 이어진다. 즉, “나무가 쓰러지는 모습”과 “도끼가 물에 빠지는 모습”이 동시적으로 그려지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제자의 절망감을 이해하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오늘 날 도끼는 별로 비싸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친구에게 빌린 도끼 한 자루를 잃어 버렸다고 당황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주전 1200년경 철기시대가 시작할 때부터, 도끼 한 자루는 너무나 비샀다. 왜냐하면 나무를 모아 불을 만들고 금속을 제련하고 도구를 다듬고 예리하게 하는 데 엄청난 시간과 기술이 걸렸기 때문이다. 철은 원래 군사용으로 사용되었는데 농경용으로 전환하는 데도 많은 경비가 필요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은 철기를 응용하는 기술이 너무나 뒤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늘 기술적으로 블레셋을 의지하곤 하였다(삼상 13:20-21). 따라서, 빌린 도끼를 잃어 버리는 것은 빌린 차를 부수어 버린 것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그는 갚을 수 없는 부채를 지게 된 것을 깨닫고 놀란 것이다.  

        1.3. 강의 정복자 엘리사(6:6)
        “하나님의 사람이 물었다. ‘어디에 빠졌느냐?’ 그가 그곳을 알려 주니,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하나 꺾어서 그 곳에 던졌다. 그랬더니 도끼가 떠올랐다”(6절). 이제 엘리사는 네레이터에 의해 “하나님의 사람”으로 소개된다. 엘리사는 일하는 제자들과 함께 있었고, 가까이 있었다. 그는 제자들의 위기에 신속하게 개입하고 있다. 그가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서, 강에 던져 도끼가 떠오르게 한다.” 
        여기에서 엘리사가 베푼 기적은 너무나 “사소해 보이며”, 마치 “금도끼 은도끼” 이야기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렇지만, 주전 9세기의 배경에서 보면,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그 당시 가나안 사람들은 “강”과 “바다”를 “바알 신”의 대적으로 보았으며, 바알은 “강”과 “바다”를 정복하고 신이 된다. 그러나 그 어떤 바알의 선지자도 강에 빠진 도끼를 바알이 건져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요단 강에서 도끼를 건진 사건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강과 바다를 정복하심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명령하실 때, 자연질서가 순종한다. 여기에서 선지자 엘리사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물을 떠오르게 한 “나무”는 자연적인  “도구”나 “수단”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기적을 눈에 보이도록, 혹은 사람들이 이해하도록 사용한 “보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엘리사의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선한 뜻을 위해 자연질서를 다스리신다.

        1.4. 부채에서 벗어난 선지자(6:7)        

       “엘리사가 말하기를, ‘그것을 집어라.’ 하니, 그가 손을 내밀어 도끼를 건져내었다”(7절). 엘리사의 제자 선지자는 여기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였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그의 “구속주” 하나님이심을 체험하였다. 그의 하나님은 바로 옛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건지신 하나님이시며, 바로 앞에서 과부가 된 선지자의 아내의 부채를 해결해주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의 부채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부채는 “죄의 빚”을 지는 것이다. 이후 신약시대로 접어 들면서, 하나님은 그의 종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게 하신다”(사61:1; 눅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