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역대하34-36,열왕기하22-25 제18장 -신흥 바벨론과 유다 왕국의 멸망(640-586 B.C,)

호리홀리 2014. 12. 10. 13:38

 

제18장 -신흥 바벨론과 유다 왕국의 멸망(640-586 B.C.,대하34-36, 왕하22-25)


- 요시아왕을 계기로 하여 유다왕국은 마지막 시대로 접어들게 되고 앗수르도 앗수바니발왕 이후 점점 나약해졌다. 그때를 이용하여 신흥 바벨론은 새로운 국제질서의 주도권을 잡고 일어나게 되었고 그 세력이 활발해지기는 요시아왕 말기 때 부터였다.


1.유다왕국 최후의 개혁왕 요시야(640-609B.C.,대하34-35, 왕하22:1-23:30)

요시야는 8살의 어린 나이로 아몬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그 배후에는 경건한 신앙의 인물들이 충성으로 섬겼다.(대제사장 힐기야와 예레미야) 그의 치리기간 31년은 유다왕국의 창건 이래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던 때이며 크게 부흥하고 발전했던 시기로 모든 우상을 멸하는 숙청작업이 유다뿐 아니라 온 이스라엘까지였다.


⑴ 개혁 운동(대하34:8-35, 왕하22:3-23:25)

- 요시아왕이 위에 오른지 8년(그의 나이 16세)에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12년(20세)에 모든 우상과 산당들과 모든 우상의 제단들을 다 훼파하여 남유다왕국에서 북이스라엘까지 온 이스라엘을 정결케 하고 모세의 율법을 따라 유월절을 크게 지켰다. 이처럼 유월절을 크게 지킨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사사시대 이후 처음이었다.

  6년의 세월에 걸친 이 개혁운동은 유다왕국의 역사에 전무후무한 일로서 성전 수리를 할 때 제사장 힐기야가 발견한 율법 책(모세의 친필 신명기)으로 그 절정에 이르렀다. 왕 앞에서 율법 책을 읽게 했을 때 왕은 옷을 찢으며 회개했고 온 백성들과 여호와 앞에 언약을 세워 진정으로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서약했다. 요시아 왕의 개혁은 히스기야 때보다 더욱 철저했다.


⑵ 요시아왕 말기의 국제정세(왕하23:28-30)

앗수르 제국은 앗수바니팔이 죽은 후 뒤를 이은 왕들이 무능하여 나라가 쇠약해졌고 614B.C.에 바벨론과 메대가 연합하여 앗수르를 공격하여 앗수르를 점령하고 2년 후에 니느웨를 포위했다. 3개월 후에 수도인 니느웨가 함락되고 앗수르의 왕은 피살되었다.

니느웨는 대오를 정비하여 '하란'에서 전쟁을 다시 시작했으나 610B.C.에 하란은 함락됐고 다음해에 대오를 정비하고 공격했으나 실패했다. 이때 애굽은 앗수르를 도우려 했으나 요시아왕은 반앗수르였기에 앗수르를 도우려는 애굽을 가로막기 위해 므깃도에 진출했다가 전사했다.


2. 애굽왕에게 폐위된 여호아하스(609B.C., 대하36:1-4, 왕하23:31-33)

요시아왕에게는 세아들(엘리야김, 여호아하스, 시드기야)이 있었다. 아들 셋이 차례로 왕이 되었다. 둘째인 여호아하스가 먼저, 다음에 맏이가, 세 번째로 셋째 아들이 왕이 됐다. 요시아왕을 죽인 애굽의 바로느고는 여호아하스를 제거하고(여호아하스는 3개월만에 폐위되었고 애굽에 포로로 가서 거기서 죽었다) 형 엘리야김으로 왕을 삼고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고치게 하고 유다를 속국으로 삼아 은100달란트와 금 한달란트를 조공으로 받았다.


3. 두루마리를 태운 극악한 여호야김왕(609-597B.C.,대하36:4-8, 왕하23:34-24:7, 렘22:13-19, 렘36:1-32)

⑴ 여호야김의 악정 - 여호야김은 애굽왕 바로느고의 임명으로 왕이 되었다. 여호야김은 애굽에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에게 많은 것을 늑징하였으며 자신의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 백성들을 압박하고 많은 피를 흘렸다. 선지자 예레미야와 동시대의 하박국, 우리야가 그런 행동들을 신랄히 경책했으나 우리야를 죽였고 예레미야도 죽이려고 했으나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으로 살았다.


⑵ 세계사를 바꾼 갈그미스 전투와 여호야김 -

므깃도 전쟁에서 요시아왕을 죽인 애굽의 바로느고는 하란을 점령하진 못했으나 수리아 지역과 팔레스틴을 완전히 점령했다. 여호아히스를 폐하고 여호야김을 세워 왕을 삼았다. 바벨론왕은 병석에 있었고 그 맏아들 느부갓네살이 군대를 동원하여 유브라데강을 건너 갈그미스에서 애굽의 바로느고를 격퇴시켰다. 애굽군은 하맛으로 후퇴하여 대오를 재정비하려했으나 느부갓네살에게 전멸되었다.

바벨론이 앗수르와 애굽의 동맹군을 격퇴함으로 단번에 세계를 재패하였고 이 전투에서 앗수르는 역사에서 사라졌다. 느부갓네살은 점령지에서 조공을 받아들였고 여호야김도 3년동안 그를 섬기다가 느부갓네살이 애굽의 느고를 치려고 애굽 국경까지 진격할 때 느부갓네살을 배반했다(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야김에게 바벨론을 섬기라고 권면했으나 듣지 않고 애굽을 의지하였다). 느부갓네살은 갈대아 부대와 아람과 모압과 암몬의 부대들을 급파하여 여호야김을 쳤고 그들 부대들로 유다를 다스리게 하다가 바벨론 주력부대가 진격했다.


4. 여호야긴왕과 유다의 첫 포로(597B.C.,대하36:9-10, 왕하24:8-16)

여호야김의 뒤를 이어 여호야긴이 왕이 되어 3개월 10일을 치리했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쳐들어왔을 때 여호야긴은 바벨론으로 끌려가고 그의 숙부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다. 이때 에스겔을 비롯하여 왕의 모후와 환관들과 아내들과 나라의 유력한 자들을 사로잡아갔다. 잡혀간 여호야긴은 감옥에서 해방되고 일평생 왕궁에서 먹으며 후한 대우를 받았다.


5.시드기야왕과 유다왕국의 멸망(대하36:11-21, 왕하24:17-25:21, 렘39:1-10) -

여호야긴이 잡혀간 후 그의 숙부 맛다니야를 왕을 삼고 이름을 시드기야로 고쳤다( 시드기야는 왕이 되었으나 왕이라기보다 섭정자로 보아야 함). 시드기야의 왕위는 확고하지 못했고 능력도 매우 부족하여 반바벨론적 관원들과 백성들의 압력으로 바벨론을 배반하게 되었다.


⑴시드기야의 반바벨론과 예루살렘의 함락(왕하24:20-25:12, 대하36:13-21)

시드기야의 바벨론 배반은 반바벨론의 압력과 국제정세 때문이었고 거짓 선지자들의 잘못된 격려 때문이었다. 당시 모압과 암몬과 베니게의 여러나라가 반바벨론 동맹을 맺어 유다도 가담하라고 사신들이 찾아왔고 궁중의 반바벨론파 수뇌들이 시드기야를 강권하여 바벨론을 배반했다.

바벨론의 군대는 유다를 공격해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고 그 후 2년 뒤 예루살렘은 함락됐고 시드기야왕을 사로잡고 그의 앞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그의 두 눈을 뽑아버린 후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죽는 날까지 옥에 갇혀 있었다. 성전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비천한 자들만 남게 됐다. 이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들에게 그곳에 정착하여 깨어 기도하고 평안하기를 힘쓰면 70년 후에 반드시 돌아올 것이라고 선언했다.


⑵ 예루살렘 함락

예루살렘이 바벨론군에게 포위되었을 때도 유다의 관원들은 애굽의 원병이 오리라고 믿고 기다렸고 마침 애굽군대가 왔으나 예레미야가 애굽군이 다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다의 모든 성읍은 망했고 예루살렘과 아세가와 라기스만 남았다. 아세가와 라기스와 예루살렘이 차례로 함락될 때의 형편을 알려주는 '라기스의 편지'는 바벨론군의 진격이 빨라서 손 쓸 사이 없이 성읍들이 함락되어 가는 것을 탄식하는 심정을 읽을 수 있는 것들이다.


⑶ 유다왕국의 최후(왕하25:22-26, 대하36:17-21, 렘40-43) -

바벨론왕은 유다의 백성들을 포로로 끌어가고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삼았다. 그는 예레미야를 숨기고 보호했던 아히감의 아들이었고 조부 사반은 요시아왕의 개혁 당시 서기관이었다. 흩어졌던 유다인들이 그달리야가 총독이 되었다함을 듣고 미스바로 모였다. 총독 그달리야는 백성들에게 유다 땅에 거하면서 바벨론왕을 섬길 것을 권했으나 백성들 중에는 반바벨론의 강경파들이 그달리야를 매국노로 보고 죽이고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애굽으로 가게 되었다. 애굽으로 가는 것을 반대한 예레미야도 함께 끌고 갔다.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지 1500년 후에 그 후손들은 포로로 옛 고토인 갈대아 땅으로 끌려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