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역대하29:1-36:20, 열왕기하18:1-25:21 제17장 유다 의 단독 시대(722-586B.C.,)

호리홀리 2014. 12. 10. 13:36

 


제17장  유다 의 단독 시대(722-586B.C., 대하29:1-36:20, 왕하18:1-25:21)


1.반앗수르의 개혁왕 히스기야(715-686B.C.,대하29:1-32:33,왕하18:1-20:21사36:1-38:22)

  아하스의 뒤를이어 히스기야가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29년을 치리하였다. 그는 모세의 율법에 충실하였고 반 앗수르 정책을 썼다. 하나님이 형통케 하심으로 블레셋을 쳐서 이겼다.


⑴ 개혁 운동(대하29:3-31:21) -

히스기야는 부왕 아하스가 폐쇄한 성전 문을 열고 정결케 한 후 모세의 법대로 번제와 화목제의 큰 제사를 드림으로 유다 왕국이 하나님 앞에 돌아와 성대하게 유월절을 지킬 것을 명했는데 북 이스라엘에도 초청장을 보내어 유월절 지키기를 청했고 북쪽의 많은 사람들이 호응해서 온 이스라엘이 기뻐했다. 솔로몬 이후 그런 일은 없었다고 한다. 또 그는 산당들을 훼파하고 모세때부터 있던 놋뱀도 쳐부수고 그것을 '느후스단'(놋조각)이라고 했다.


⑵ 앗수르왕 사르곤과 히스기야 -

히스기야왕은 반 앗수르 정책을 폈으나 사마리아를 점령한 사르곤이 살아있는 동안 앗수르를 대항하지 않았다. 기원전 711년에 아스돗 지역의 반란으로 사르곤은 출정하여 진압했고 히스기야는 아스돗을 도와야 할 입장에 있었으나 선지자 이사야의 권면으로 지혜롭게 피하여 사르곤의 공격을 피하게 되었다.


⑶ 산헤립왕의 침략(대하32:1-21, 왕하18:13-19:37, 사36-37) -

사르곤의 아들 산헤립이 왕이 되었을 때 히스기야왕은 애굽의 후원을 얻어 두로, 아스글론, 에글론과 반 앗수르 동맹을 맺고 앗수르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국방을 튼튼히 하고 실로암 굴을 파서 물을 성내로 끌어들여 백성들이 그 물을 사용하게 했고 앗수르군이 공격해 왔을 때 물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큰 공사를 했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공격하여 포위했고 라기스를 점령하고 부하 랍사게를 보내어 갖은 모욕을 하며 히스기야의 항복을 요구했다. 이때는 주변의 모든 나라와 도성들이 앗수르에 굴복한 상태여서 참으로 위기였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에게 화해를 청하여 은3백과 금30달란트를 주게하고 성전과 왕궁에 있는 은과 금을 다 거두어서 보냈으나 산헤립은 계속 항복을 요구하며 공격해 왔다. 이때 이사야 선지자는 히스기야에게 용기를 주며 하나님께 기도하게 하고 앗수르 왕은 반드시 물러가리라는 것을 예언했다. 그날 밤 앗수르 진에서는 18만 5천이 죽고 산헤립은 떠나갔고 유다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구원을 받았다.


⑷ 히스기야의 병과 바벨론의 사신(대하32:22-31, 왕하20, 사38-39)

- 히스기야의 병 : 히스기야는 전쟁 중에 병이 나서 죽게 되었다. 간절한 회개와 기도의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15년의 생명연장과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을 약속하셨고 약속의 징표로 일영표가 10도를 물러가는 이적을 보이시기도 했다.

히스기야 왕이 병이 나은 후 바벨론왕 므로닥발라단이 위문의 사신들을 보냈는데 사신들은 예물을 가지고 왔다. 그때 히스기야는 그들에게 군기고의 모든 군기와 보물을 공개하여 보이며 부강함을 자랑했다. 그때 선지자 이사야는 후일에 유다가 반드시 바벨론에게 망할 것을 예언하며 그의 교만을 책망했다.


⑸ 선지자 이사야와 미가

- 이사야 : 웃시야왕이 죽던 해부터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에 이르는 3왕의 비상한 때에 선지자의 임무를 감당했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깨닫도록 하는데 힘을 썼다. 그 중에서도 53장의 구속주 하나님의 자기 백성에 대한 속죄의 큰 역사는 후일 '고난의 종'의 죽음을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을 예언했다.

- 미가 : 이사야와 동시대의 사람으로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히스기야왕은 미가 선지의 경고를 받고 크게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간구하며 회개하였다.


2. 암흑시대의 므낫세와 아몬왕

⑴ 므낫세왕(686-642B.C., 대하33:2-10, 왕하21:2-16) -

므낫세는 히스기야를 이어 12세에 왕위에 올라 55년을 통치하였다. 남과 북의 이스라엘 왕들 중에 최장기간 왕위에 있었던 사람이나 그의 통치는 유다로 심히 부패케 했다.


⑵ 종교적 부패(대하32:2-10, 왕하21:2-16) -

므낫세왕은 부왕과는 대조적인 인물로 부왕이 헐어버린 산당을 다시 짓고 바알의 단을 다시 세우며 아세라 목상과 하늘의 일월성신을 숭배했고 몰렉에게 아들을 드려 불 가운데 지나게 하며 점치고 사술을 행했다. 또 정책을 반대하는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렸다. 전승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도 그의 손에 죽었다.


⑶ 하나님의 징계와 회개(대하33:11-20) -

므낫세는 자기가 그렇게 섬기던 앗수르왕에게 비참한 모습으로 포로가 되어 잡혀가게 되었다. 그 이유는 바벨론과 협력하여 앗수르의 압박을 벗어나기 위한 전쟁에서 바벨론이 실패했기 때문이며 앗수르를 섬기며 조공을 바칠 것을 서약하고 유다로 돌아왔고 큰 혼란을 통하여 크게 겸비하여 기도했으며 우상을 제하고 여호와의 단을 중수하고 백성들에게 여호와를 섬길 것을 명하기도 하였다.


⑷ 아몬왕(642-640B.C., 대하33:21-25, 왕하21:19-26) -

아몬은 므낫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 2년간의 통치는 타락한 정치였고 2년 만에 궁중의 신하들의 반역으로 죽었으나 백성들이 일어나 왕을 죽인 자들을 처형하고 그 아들 어린 요시아로 왕을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