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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하12:17:,역 대하23:16-28:27 제16장 - 남북 평행시대의 유다왕국(835-722BC ) -

호리홀리 2014. 12. 10. 13:35

 

제16장 - 남북 평행시대의 유다왕국(835-722B.C., 왕하12:17:, 대하23:16-28:27) -


예후의 반란으로 아합 왕가는 무너지고 남유다에서는 아합의 딸 아달랴의 죽음과 여호야다의 반정으로 남북의 밀접한 관계는 무너지고 서로 평행을 이루는 시대가 되었다.


1. 제사장 여호야다의 반정과 요아스왕(835-796B.C., 왕하11:4-12:36, 대하23:1-24:27)

⑴ 반정의 성공(대하23:1-21, 왕하11:4-21) -

아하시야왕의 누이 여호사브앗의 손에서 숨어 자란 어린 왕자 요아스가 7세 되던 해에 제사장 여호야다는 반정을 일으켜 어린 왕자를 무리 앞에 인도하여 면류관을 씌우고 율법책을 주고 기름을 부어 요아스왕 만세를 부르게 했다. 군중들의 찬송과 나팔소리에 놀란 아달랴는'반역'이라고 외치며 도망했으나 병사들에게 피살되었다. 


⑵ 요아스왕의 성전 수리(대하24:4-14, 왕하12:4-16) -

요아스는 장성한 후에 여호와의 성전을 수리할 계획을 세우고 레위사람들에게 백성들로부터 연보를 거두게 하여 성전 수리를 했고 성물이 정돈되고 번제도 회복되어 하나님을 섬기는 영적부흥이 편만하게 되었으나 제사장 여호야다의 생전에만 그러했다.


⑶ 요아스왕의 타락과 징벌(대하24:15-27, 왕하12:17-21) -

여호야다가 죽자 요아스는 정책을 바꾸어 방백들의 청원에 따라 아세라 목상을 세우고 섬기게 했다. 선지자 스가랴(큰 은혜를 입었던 여호야다의 아들)가 이 일에 경고하자 그를 돌로 쳐죽이도록 허락했다. 이일 후에 하나님께서 아람왕 하사엘을 일으켜 유다를 치게 했고 그는 성전과 왕궁의 모든 금을 주어 예루살렘을 떠나게 하였으나 그때 많은 방백들이 죽고 자신도 크게 부상을 입었고 결국 부하들의 반란으로 죽었다. 재위기간은 40년이었다.


2. 아마샤왕의 승리와 실패(796-767B.C., 대하25, 왕하14:1-20) -

요아스왕이 피살된 후 그 아들 아마샤가 왕위에 올라 부왕을 죽인 신복들을 처형했고 국방을 든든히 하고 에돔 공격을 위해 30만의 군대를 조직하고 이스라엘에서 10만을 고용했으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다는 선지자의 충고를 따라 이스라엘의 용병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이 불만을 품고 유다 성읍들을 공격하여 3천의 사람들을 죽이고 물건을 노략했다.

아마샤왕은 에돔을 공격했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돌아올 때 그는 에돔의 우상을 가져다가 자기의 신으로 경배하며  분향했다. 이 사실을 안 선지자가 충고하자 "어찌하여 맞으려느냐"고 크게 꾸짖었다. 아마샤는 이스라엘을 공격했고 크게 패하여 성전은 훼파되고 성전의 기구는 약탈되고 많은 사람은 포로가 되고 자신도 포로가 되었다. 백성들의 모반으로 피살되어 재위29년이 끝났다.


3. 유다왕국을 부강케 한 웃시야왕(767-739B.C., 대하26, 왕상14:21-22)

아마샤의 아들 웃시야는 16세에 왕위에 올라 52년간을 치리했고 유다 왕국을 부강케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2세와 대등한 인물로 평가되었다.

- 영토의 확장 : 아마샤가 정복한 에돔을 주관하고 엘랏엘롯(에일랏) 항구를 건축하여 무역정책에 힘을 썼다. 동쪽으로 암몬을 다스리며 조공을 받았고 서쪽으로 블레셋을 쳐서 여러 성읍을 정복했다.

- 산업정책 : 에일랏을 건설하여 아라비아와의 무역을 힘쓰고 거친 땅에 물웅덩이를 파서 목축과 농업에도 힘을 썼다.

- 국방과 군사정책 : 군대의 조직을 재편성하여 용사26,000명과 307,500명의 정예병을 두고 훈련시켰고 당시의 무기들도 풍부히 제조 준비하였다.

- 교만과 실패 : 유다 왕국이 강하여지자 백성들은 물질주의에 빠졌고 왕도 교만해져서 제사장의 직분까지도 무시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징계로 문둥병이 들어 별궁에 살면서 그 아들 요담이 나라를 다스렸고 그는 문둥병으로 죽었다. (웃시야신드롬)


4. 앗수르의 발흥과 요담과 아하스왕(대하27,28, 왕하15:32-38, 16:)

⑴유다의 부패를 다스리지 못한 요담왕(739-731B.C.,대하27, 왕하15:32-38)

요담은 16년간 유다를 치리했다. 비교적 경건생활을 했으나 백성들의 죄악을 다스리는데는 실패했다. 백성들은 점점 부패해졌고 이사야 선지자의 경고도 듣지 않았다. 이때 앗수르의 디글랏벨레셀의 세력이 커져가는 때였다.


⑵ 친 앗수르의 아하스왕(731-715B.C., 대하28, 왕하16:11) -

아하스는 왕위에 올라 16년을 치리하였으나 유다왕국은 심히 약해진 나라로 북쪽에는 다메섹과 이스라엘의 압력이 계속되었고 서쪽과 남쪽에는 블레셋과 에돔의 공격이 그치지 않았다. 아하스는 친 앗수르 정책을 썼으나 앗수르는 오히려 유다를 괴롭게 했다.


⑶ 베가와 르신의 공격(대하28:5-21, 왕하16:5-9) -

친 앗수르 정책을 펴는 아하스왕을 다메섹왕 르신과 이스라엘왕 베가가 연합하여 공격했다. 유다는 많은 희생자를 내었다. 왕은 앗수르만을 의지했고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자'라고 하면서 친 앗수르의 정책이 실패할 것을 선포했으나 끝까지 듣지 않고 앗수르에게 은금을 보내며 구원을 요청했다. 앗수르의 도움으로 다메섹과 이스라엘은 물러갔으나 더 큰 원수는 앗수르인 것을 알지 못했다.


⑷ 에돔과 블레셋의 반격(대하28:16-21) -

아하스의 세력이 약해지자 에돔이 공격해 와서 백성들 중 많은 사람이 포로로 잡혀갔다. 그 후 블레셋이 침략해 와서 여러 성읍을 점령했다. 에돔과 블레셋의 공격을 받은 아하스는 또 앗수르에게 많은 재물을 주며 구원을 요청했다. 앗수르는 그 기회를 이용하여 다메섹과 이스라엘 블레셋과 에돔까지 그 힘을 뻗쳤고 유다도 그 손에 빠져 들어가게 되었다.


⑸ 아하스의 종교적 타락(대하28:1-4, 22-25, 왕하16:2-4, 10-18)

이사야는 아하스가 백성들과 하나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하였다. 그는 가나안의 모든 우상을 다시 섬긴 자로 바알 우상을 만들었으며 어린 자녀를 불살라 드리는 몰렉 종교를 따랐고 산당에서 우상을 섬기는 일들을 자행했다. 우상의 제단을 예루살렘에 두고 제사를 드리며 성전을 폐쇄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