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열왕기하15:13-17:4 제 13장 북방 이스라엘의 쇠퇴와 멸망(752-722B.C., )

호리홀리 2014. 12. 10. 13:29

 

제 13장 북방 이스라엘의 쇠퇴와 멸망(752-722B.C., 왕하15:13-17:41)


여로보암 2세의 치리 기간 동안 이스라엘은 그 역사에서 가장 찬란한 기간이었으나 그의 아들 스가랴가 살룸에게 죽자 북 이스라엘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살룸은 혁명으로 예후 왕가를 무너뜨리고 왕위에 올랐으나 한 달 뒤 혁명을 일으킨 므나헴에게 죽었다.

-므나헴 왕조(752-742 B.C., 왕하15:16-22) - 므나헴은 혁명을 일으킨 후 그를 환영하지 않은 딥사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였고 앗수르 세력에 눌려 조공을 바치며 속국이 되었다 . 그의 통치 10년이 끝나고 그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으나 계속되는 궁중반란으로 2년후 죽었다.


1. 앗수르에 항복한 베가(742-732B.C., 왕하15:27-31) -

브가히야를 죽이고 왕이 된 베가는 20년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왕이 된지 6년 만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여 '트렌스 요르단'과 납달리를 점령하고 많은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갈 때에 호세아의 반란이 일어나 베가를 죽였고 호세아는 앗수르의 보호 아래 이스라엘 왕이 되었으나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완전히 점령이 되는 때였다.


2. 마지막왕 호세아(왕하17:1-6) -

베가를 죽이고 호세아가 왕위에 올랐을 때는 앗수르가 '트렌스 요르단'과 길르앗과 납달리를 점령하고 9년을 치리하는 동안 앗수르에 굴복하며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디글랏 빌레셀이 죽자 호세아는 앗수르를 벗어나려 했다. 이것을 안 디글랏 빌레셀의 아들 살만에셀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여 다시 호세아는 조공을 바쳤다. 애굽과 동맹을 맺고 앗수르에 조공을 거절했으나 애굽은 이스라엘을 도울 힘이 없었다.

앗수르가 다시 공격해 와서 호세아를 잡아 가두고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사마리아 성을 삼년동안 포위하였다. 호세아 9년에 성은 함락되었고 백성들은 포로로 잡히니 북 이스라엘의 역사는 끝이 났다.(209년 존속)

하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와 그 외에도 많은 선지자를 보냈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고 결국 앗수르는 많은 포로들을 잡아가고 거기에 많은 이방 사람들을 이민시켜서 잡족의 동거로 종교의 혼란이 생기며 이방 신과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같이 섬기는 혼합종교와 혼혈족으로 인해 "사마리아 인"이라는 한 족속이 생겨났다.


3. 앗수르와 이스라엘 -

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에 패망했고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앗수르는 북부 메소보다미아의 광야에 자리잡고 서로는 수리아와 남으로는 바벨론과 북쪽은 '우라르트'와 동쪽은 파사의 고지로 국경이 이루어져 있다. 그 세력이 최고였을 때에는 바벨론과 애굽, 수리아와 팔레스틴과 메대 전역에 그의 세력이 확대되어 있었고 주로 셈계통의 종족들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깨우치기 위한 '진노의 몽둥이요 막대기며 세내어 온 삭도라 했으며 넘치는 하수라'고 했다.

 

  유다-BC722년 이스라엘이 멸망한 후에도 남 유다는 586B.C.까지 계속되었다. 역사적 배경은 이스라엘이나 유다가 비슷하다. 계속되는 앗수르의 위협과 남북의 충돌과 선지자들의 활동은 거의 같고 남 유다와 에돔과의 관계가 북 이스라엘과 다메섹(아람)과 비슷하나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북 이스라엘은 왕조가 여러번 바뀌었으나 남 유다는 다윗 왕조로서 다윗왕가가 일관하였다는데 있다. 한때 일시적으로 아합왕의 딸인 아달랴가 유다왕국을 지배한 적도 있었으나 7년 만에 다시 요아스가 왕위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