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열왕기하9:11-10:36, 13:, 14:16-29) 제12장 - 예후 왕조의 발흥과 몰락

호리홀리 2014. 12. 10. 13:27

 

제12장 -  예후 왕조의 발흥과 몰락(왕하9:11-10:36, 13:, 14:16-29)


- 오므리 왕조의 마지막 4대왕 여호람을 죽이고 왕위에 오른 예후의 왕조는 5대에 걸쳐 이스라엘을 통치했는데 89년간의 기간으로 오므리 왕조의 44년에 비해 2배가 넘는 장기간이었고 종교적인 면에서는 예후의 왕조가 오므리의 왕조와는 달리 바알신을 제거하는데 힘을 쓰긴 했으나 우상을 떠나지는 못했다.

예후가 오므리 왕조를 멸한 것은 20년전에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로 예언하였던 것으로 선지자 엘리사는 생도 하나를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어 군대 장관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이 되게 하고 아합의 집을 숙청하여 멸할것을 지시했다. 예후는 선지자의 지시를 받은 후 곧바로 왕이 되어 요람왕을 죽이고 성을 차지하였다. 그때 요람왕의 병문안을 온 유다왕 아하시야는 이스라엘에서 탈출하였으나 므깃도에서 죽었다.

예후는 이스르엘로 돌아와 이세벨을 죽이고 아합 왕가에 속한 모든 귀족들과 바알의 제사장들을 다 죽여 그 왕가를 전멸시켰고 신당의 목상을 불사르고 바알의 당을 헐어 변소를 만들었으나 그도 하나님의 율법을 전심으로 섬기지 않았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음으로 다메섹 왕 하사엘과 앗수르왕 살만에셀의 침략을 받아 세력은 줄어들고 열국들의 압박과 수모를 받게 되었다.


1. 예후(841-814 B.C.)와 다메섹(아람) 및 앗수르의 침략 -

예후가의 약화의 원인은 종교적으로는 아합집의 대대적인 숙청이었지만 정치적으로는 그의 지나친 숙청으로 하나님의 뜻과 달리 존귀한 고급 관원들까지 숙청을 해서 그를 도울 수 있는 고급 인력을 잃게 되었고 혁명이 너무 감정적이어서 유능한 사람들도 협력하기를 꺼렸고  유다왕 아하시야를 죽이고 그 형제들까지 죽임으로 유다와의 긴장이 고조되고 북쪽 베니게(두로와 시돈을 중심으로 한 도시국가로 해상무역이 발달하여 스페인 카르타고까지 영역을 넓혔고 바알을 숭배했다.)와의 관계악화로 경제적 정치적 부담이 컸으며 또 예후의 정치적 능력의 부족함이 이유라고 학자들은 본다.

- 다메섹(아람) 왕 하사엘의 침략 : 범죄한 예후를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다메섹의 아람왕 하사엘을 일으켰다. 그는 '트렌스 요르단'을 공격하여 갓 지파와 르우벤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모든 땅을 점령했다.

- 앗수르왕 살만에셀의 침략 : 이스라엘의 예후왕은 앗수르의 압박에 시달려 마침내 앗수르왕 살만에셀에게 많은 조공을 바쳐야 하는 위치로 몰락했다.


2. 구원자를 만난 여호아하스(814-798B.C., 왕하13:1-9) -

예후의 나라는 약화되었으나 16년간의 긴 기간을 통치했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스도 왕이 되어 16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나 다메섹에게 시달려야 했다. 아람 군대들은 이스라엘의 영토를 지나 블레셋을 공격하고 예루살렘까지 진격했다. 이때 여호아하스는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하여 하나님께서 한 구원자를 보내셨는데 앗수르를 일으켜 다메섹을 치므로 이스라엘은 다메섹의 압박에서 해방을 받았으나 완전한 해방은 아니었다.


3. 국력를 회복한 요아스 왕(798-782B.C.)(왕하13:10-25, 14:15, 16, 역대하25:17-22) -

여호아하스가 죽고 그 아들 요아스가 위에 올라 국력은 점차 회복되었다. 그는 16년을 치리하며 악한 길을 걸었으나 선지자 엘리사가 죽을병이 들었을 때는 찾아가서 눈물을 흘리며 사랑과 존경을 나타냈다. 엘리사는 요아스에게 활로 땅을 치라고 하였는데 요아스가 땅을 세 번만 쳤더니 엘리사가 왜 5-6번을 치지 않았느냐고 책망하면서 왕이 아람을 세 번만 칠 것이라고 하였다. 그의 예언대로 아람을 세번 쳐서 이겼다.


4. 여로보암 2세의 부흥(793-753B.C, 왕하14:23-29)

-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 2세는 부왕의 업적으로 부강하고 안정된 황금시대를 맞았고 통치 기간도 40년이라는 최장기간을 누리며 '하맛어귀에서부터 아라바 바다(사해)까지' 회복했고 다메섹을 속국으로 삼았으며 '트렌스 요르단' 전체를 장악했다.


5. 호세아와 아모스의 활동

호세아 -

호세아는 여로보암 2세의 전 통치기간 약 40년을 활동한 선지자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이 풍요로운 만큼 종교적으로는 타락된 길을 걸었기에 그는 거짓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을 꾸짖으며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외쳤다.

아모스 -

아모스도 호세아와 같은 동시대 여로보암 2세 때의 선지자로 호세아와는 달리 남방 유다 출신으로 북방 이스라엘에 와서 활동한 선지자였다. 그는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에 유다가 이미 예속되어버린 상태에서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며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간곡히 외쳤다.

요나

요나 선지자도 여로보암 2세 때 활동했던 선지자로 그가 니느웨에서 복음을 전파했을 때 그들이 크게 회개하고 여호와의 종교로 돌아온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이스라엘 국경을 넘어서 이방에 미칠 수 있음을 보여주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으나 앞으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포로되어 갔을 때의 생활을 미리 준비하심이며 니느웨의 회개는 이스라엘에게는 축복이었다.


6. 예후왕조의 마지막 왕 스가랴(753B.C., 왕하15:8-12) -

이미 선지자 아모스가 예언했던 대로 여로보암 2세의 아들 스가랴가 위에 올랐으나 불과 6개월 만에 반역이 일어나 살룸에게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