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열왕기상12-22장, 열왕기하1장-17장) 제10장 -북 이스라엘

호리홀리 2014. 12. 10. 13:22

 

제10장 -북 이스라엘(왕상12-22장, 왕하1장-17장)


1.이스라엘의 첫번째 왕, 여로보암(931-910B. C.) -

유다 지파를 제외한 다른 지파들의 오랜 불만으로 유다 지파에 대한 반발의식이 숨어 있었고 르호보암은 종족적인 단합에 실패하고 이스라엘과 유다의 분열을 가속화시켰다. 르호보암은 유다 지파 하나만을 여로보암은 10지파를 중심으로 북 이스라엘 왕이 되었다.


2. 여로보암의 정책과 범죄(왕상 12:25-14:20)

- 여로보암은 위에 올라 세겜을 건축하고 거처를 삼았으나 부느엘을 건축하고 그곳으로 수도를 옮겼다가 다시 디르사(아가6:4절에 정결한 신부의 순결성을 정복할 수 없는 요새인 디르사로 비유)로 옮겨 거처를 삼았다.

그는 백성들이 절기에 예루살렘으로 갈 것을 염려했고 불안해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는 남쪽 벧엘에 하나는 북쪽 단에 두어 제사하게 함으로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삼고 절기도 유다와 비슷한 날로 정하여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막았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형상화시켜 보려는 인간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3. 여로보암 왕조의 몰락(왕상13:1-14, 14:18, 15:25-30) -

여로보암은 금송아지와 바알신도 함께 섬기는 혼합적인 제사를 드리는 악을 범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징벌하게 되었고 벧엘에서 한 선지자가 와서 "다윗의 집에 요시아라 이름하는 아들"이 나타나서 여로보암의 제사장들의 뼈를 그 단 위에서 불사를 것을 예언하였다. 여로보암은 진노하여 손을 펴서 선지자를 잡으려 할 때 그 편 손이 말라 거두지 못했다. 그때 선지자의 도움을 청했고 선지자의 간구로 그 손이 성하여졌으나 마음이 강퍅하여 돌이키지 않았다.

그후 그의 아들이 병들었을 때에 아내를 변장시켜 선지자 아히야에게 보냈는데 선지자는 여로보암의 집이 진멸될 것을 선포했으나 그는 회개하지 않았고 22년간 이스라엘을 치리하다 죽었다. 그 아들 나답이 위에 올라 2년을 치리하다 블레셋 깁브돈을 포위하고 있을 때 바아사의 반란으로 피살되었다.


4. 바아사의 몰락 -

이스라엘 왕국을 혁명으로 이어받은 바아사는 24년간 재위하였고 여로보암의 죄악을 그대로 답습하였다. 유다왕 아사와 일평생 전쟁하였다. 그후 그의 아들 엘라가 왕위에 올라 2년을 치리했으나 깁브돈을 점령하기 위해 군대장관 오므리를 파송하여 그 성을 포위하고 그는 궁내 대신 아르사의 집에서 마시고 취할 때 신복 군대장관 시므리에 의해 피살되어 바아사의 왕가는 예후의 예언대로 영원히 도말되었다(왕상16:11-12).


5. 오므리의 통일(왕상16:8-22) -

  시므리와 오므리는 엘라왕의 군대 장관으로 오므리가 깁브돈에 출정하여 있을 때에 시므리가 반란으로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깁브돈의 군대들은 오므리를 왕으로 세우고 본국의 수도인 디르사 성을 포위했고 시므리는 성이 함락됨을 보고 왕궁에 불을 놓고 자살함으로 그의 치리기간은 7일뿐이었다. 그러나 그 때 이스라엘은 둘로 분열되어 절반은 '디브니'를 왕으로 삼으려 했고 절반은 오므리를 쫓았다. 이 상태는 4년간 지속되었고 오므리가 디브니를 이기고 이스라엘 전국을 다스리는 왕이 되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