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사무엘상,하 제7장-통일왕국의 시작

호리홀리 2014. 12. 10. 13:13

 

제7장-통일왕국의 시작


사무엘은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를 연결하는 과도기의 주역을 담당한 인물로 왕정의 설립자로서 첫 두 왕인 사울과 다윗에게 기름 부은 사람이며 최후의 사사이기도 하고 최초의 선지자이기도 하며 라마에 선지 학교를 처음 세운 사람이다(삼상10:1, 16:1-13, 19:20).

그는 본래 에브라임 엘가나의 아들이었으나 근원은 레위의 후손이었다. 그의 어머니의 서원으로 태어난 그는 어릴때부터 엘리 제사장의 슬하에서 자랐고 그때 이스라엘은 블레셋의 위협을 늘 받고 있었는데 하나님의 법궤를 메고 전장에 가면 승리하리라고 생각했으나 아벡전투에서 블레셋에게 패하여 언약궤를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도 죽었다.

실로에서 소식을 기다리던 엘리는 이 소식을 듣고 그 자리에서 죽는다. 블레셋에 의해 200년간 지속되어온 실로의 성소가 파괴됨으로 이스라엘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이후 임시 성소는 높땅(후에 다윗이 피신)에 세워진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성소를 불태운 이 사건은 후에 예레미야7:12절에서 첫 성소인 실로를 하나님께서 태우셨는데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을 못 태울 것 같은냐고 경고하신다.

  사무엘은 라마를 근거지로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를 순회하며 이스라엘을 통치했으나 그가 늙으매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위협에 대한 불안이 더욱 커져서 왕을 구했고 사무엘은 기뻐하지 않았다(왕의 요구는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신정정치를 반역하는 것이기에).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허락하셨고 그 허락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의 징계였다. 이리하여 이스라엘의 왕정은 시작되었고 그 첫 임금은 사울이었으며 그가 처음에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은 개별적 의식이었고(삼상10:1) 공식적으로 이스라엘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위에 오른 때는 40세였다.


1. 사울의 통치 -

사울은 기스의 아들이었으며 이스라엘 중에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었다. 그는 인격의 준수함과 그 위풍이 화려함으로 온 이스라엘의 사모하는 자가 되었으며 겸손한 자이기도 하였다(삼상9:22-27, 11:12-13). 그러한 그에게 지도력을 시험하는 위기가 닥쳤다. 암몬 왕 나하스가 길르앗 야베스를 쳐들어 왔을 때 백성들을 다 소집하여 전쟁을 하여 크게 승리했다. 그 승리로 인해 사울의 지도력은 크게 인정을 받았고 오랜 원수 블레셋을 쳐서 이겼고 주위의 원수들은 이기게 되었으나 사무엘은 그를 버렸다.

사무엘이 사울왕을 슬퍼하게 된 것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이 하나님의 준엄한 법을 잊어버리고 독립적인 행동을 취했는데 제사장직을 침범했고 아말렉의 전쟁에서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는 말씀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사울은 질투와 시기의 노예가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산과 들로 그를 쫓는 비극적인 존재(악신이 임해 그를 번뇌케 하는)가 되었다(삼상16;14).


2. 다윗을 죽이려한 사울(삼상18:1-22:5) -

사울은 자기를 위해 수금을 타는 다윗을 벽에 박으려고 두 번씩이나 창을 던졌으나 온 이스라엘과 유다는 그를 사랑했다.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했으나 그의 아들 요나단과 그의 딸 미갈은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 보호하였다


3.블레셋으로 쫓겨 가는 다윗 -

유다로 돌아온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거친 황무지와 산간으로 광야로 유리했다. 고원지대 엔게디에 있을 때 사울이 3,000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추격해 왔다. 그때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왔으나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칠 수 없다 하여 그의 겉옷자락을 베는 것으로 아름다운 마음을 보였다. 그 후에 또 다윗은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사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와서 멀리서 그것을 사울에게 고했을 때 사울은 회개하는 듯 보였으나 다윗은 그의 회개를 믿을 수가 없어서 다시 시글락으로 갔다(삼상27:8-12).


4. 시글락에서의 다윗(삼상27:8-12) -

(1) 아말렉을 공격 -

시글락에 살게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의 감시와 아기스왕의 의심이 완전히 풀리지 않았다. 사울에게 쫓겨 이스라엘 땅을 떠나기는 하였으나 그의 애국심은 버려질 리가 없었다. 그는 시글락에 살면서 블레셋과 동맹관계에 있는 이스라엘의 원수 '그술' 사람과 '기르스' 사람과 '아말렉' 사람을 침로하여 그들의 남녀를 진멸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약대와 의복들을 취하여 왔는데 이 소식을 들은 아기스왕이 다윗을 추궁할 때 다윗은 유다 남방의 동족을 살해한 것으로 말했다. 아기스의 신임을 얻긴 했으나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삶을 산 때였다.

(2) 블레셋의 침략(삼상28:1-2, 29:1-30:30) -

다윗이 시글락에 16개월을 머물러 있는 동안 아기스 왕이 이스라엘을 치러 갈 때 다윗도 함께 전쟁에 가기를 요구하여 어쩔수 없이 아기스를 따르기로 했지만 블레셋 방백들의 완강한 거부로 다윗과 그 군대는 시글락으로 돌아왔고 동족을 치는 전쟁에서 몸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

잠깐 시글락을 비운 동안에 아말렉이 침범해 와서 성을 불사르고 여자들과 자녀들을 사로잡아 갔다. 처자를 잃은 다윗의 부하들은 군급하여 그 책임을 다윗에게 돌려 그를 돌로 치자고 하는데까지 이르렀으나 다윗의 신앙은 크게 소생하여 600명을 거느리고 뒤쫓아가서 아말렉의 낙후병 소년의 도움을 받아 아말렉을 진멸하고 잃었던 아내들과 자녀들을 도로 찾아왔다.


5. 사울의 최후(삼상28:3-25, 31:1-13)

- 사울은 수많은 블레셋의 군대를 보고 마음이 떨렸고 여호와의 계시와 사무엘의 계시가 그리웠으나 사무엘은 죽었고 여호와의 계시는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의 길을 가르치는 계시는 끊어졌다. 그는 예전에 신접한 모든 자들을 다 내어 쫓았으나 신접한 여인을 찾을 만큼 심령은 타락했다. 길보아산 전투에서 세 아들과 함께 죽었다.


6. 다윗의 활 노래(삼하1:1-27) -

다윗은 아말렉을 치고 돌아온 3일 만에 비보를 듣고 종일토록 슬퍼하며 금식했다. 그 소식을 전하여 준 아말렉의 한 소년은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죽였다고 말한 죄 때문에 처형되었다. 다윗은 사울과 요나단을 조상하고 슬픈 노래를 지어 유다 족속들에게 가르치게 하였고 그 이름을 '활 노래'(당시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활을 빗대어 한 노래 혹은 멜로디를 활에 맞추어 불렀다.)라 했다.

삼상31:4-5에는 사울이 자기의 칼에 엎드려 자결했다고 했으나 삼하1:9-10에는 아말렉 소년이 사울의 요구에 따라 그를 죽였다고 했다. 아말렉 병사는 거짓말을 하고있는 것이다. 이를 안 다윗은 그 병사를 처형한다.

우리는 이 장면에서 왜 아말렉인가를 살펴야한다. 하나님과 대대로 원수된 아말렉의 공격과, 속이는 영으로서의 아말렉에 대한 다윗의 올바른 판단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