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삼무엘하1-24장, 열왕기상1:1-2:11,역대상12-29장 제8장 다윗의 통치

호리홀리 2014. 12. 10. 13:16

 

제8장  다윗의 통치 (삼하1-24장, 왕상1:1-2:11, 대상12-29장)


다윗이 즉위할 때만 해도 이스라엘의 여러 지파들은 서로 분열되어 있었으나 그들을 효과적으로 단결시켜 부강한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이스라엘에 있어서 가장 강력하고 위대했던 전무후무한 왕이었다.


1. 다윗왕의 즉위(삼하2-5) -

사울이 죽은 후 다윗은 유다 족속만의 왕이 되었고 사울의 넷째 아들 이스보셋이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의 지지를 받아 유다 족속을 제외한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군대를 지휘했고 요압은 다윗의 군대 장관이 되었다. 아브넬의 도발로 전쟁이 일어나 이스라엘이 패하자 아브넬이 도망 할때 아사헬이 그를 추격하다 아브넬에게 죽고  아브넬의 군대는 마하나임으로 요압은 헤브론으로 철수했고 두 집 사이의 전쟁은 장기화되었다.

유다는 점점 흥왕하였고 사울의 집은 점점 미약해져갔다. 그때 아브넬이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 돌아오려고 하였는데 요압에게 피살되었고 다윗은 슬퍼하며 금식했다. 이스라엘은 다윗이 아브넬을 죽인 것이 아님을 알고 다윗을 기뻐하였고 얼마 후 이스보셋은 자기의 부하 장군에게 피살되었고 그를 죽인 자들은 그 머리를 다윗에게 가지고 와서 자기들의 공로를 인정받으려 했으나 다윗은 그들을 사형에 처했고 사울의 집의 멸망을 기뻐하지는 않았으며 드디어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


2. 예루살렘(삼하5:6-9, 대상11:4-9) -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수도를 헤브론(8년통치)에서 예루살렘으로 옮겼다. 예루살렘은 정치적 중앙도시로서 위치가 좋았고 기혼 샘이 있어 물 공급이 좋았으므로 통일 이스라엘의 정치적 중심이 되었고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다. 또 다윗이 종교적 중심지로 삼으려고 시온산에 궁전을 짓고 오벳에돔의 집에서 법궤를 옮겨왔다. 다윗이 법궤를 안치할 성전을 지으려 했으나 하나님의 거절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3. 다윗 언약(삼하7장, 대상17장) -

실로는 파괴되고 성소는 임시로 운영될 때 다윗은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누구보다 잘알고 있었다. 다윗은 궁전을 지은 후 언약궤가 장막에 있는 것을 민망히 여겨 성전 건축을 놓고 기도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 소원을 받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이 건축하리라고 말씀하시고 그를 축복하셨다. 그때에 다윗에게 세운 언약은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고 하셨다.

다윗언약은 하나님의 구속사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데 창3:15의 "여자의 후손(씨)", 노아 때의 창9:29의 "셈의 장막"에 대한 축복의 언약, 창12:1-3의 아브라함에게 주신 "복의 근원", 렘31:31-34의 또 먼 후일에 예레미야의 "새 언약" 에 이르기까지 구약시대의 모든 언약들은 모두 다윗과 세운 "내 언약'에 집중되어 있다.


4. 다윗의 승리 -

(1)블레셋(삼하 5:17-25) -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블레셋이 2차에 걸쳐 침공해 왔다. 그들은 다윗이 유다만의 왕이 되었을 때보다 통일 이스라엘 왕이 되어 강성해지려는 틀이 마련되는 것에 위협감을 느껴 다윗 왕국의 분열을 노리고 에브라임 남방 르바임 골짜기에 포진하여 공격했고 다윗은 헤브론 동북에 있는 아둘람 굴에 본부를 두고 대항했다. 다윗에게는 충실한 3용사가 있었고 매복 작전으로 블레셋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2) 모압과 에돔(삼하 8:2, 대상18;2, 삼하8:13-14, 대상18:12-13) -

  블레셋을 이긴 후 모압과의 전쟁이 있었는데(모압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한때 피난을 갔던 곳이기도 하다) 다윗이 모압을 쳐서 정복했고 모압은 이제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얼마 후에 다윗은 에돔을 쳐서 이기고 에돔에 수비대를 두었고 암몬과 모압을 이김으로 중요한 무역로를 확보하고 국력을 신장하는 발판을 이루게 되었다.(두로와 에일랏을 연결하여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중계무역을 통해 부를 쌓게된다.)


(3) 소바와 다메섹과 하맛(삼하8:3-12) -

다윗은 북쪽의 강력한 왕국 소바(다메섹 북쪽에 위치한 아람의 도시국가)를 점령했고 전쟁에서 마병1,700과 보병2만을 사로잡았다. 그때 소바를 도우려고 아람 군대가 동원되었으나 2만2천의 전사자를 남기고 굴복했고 다윗은 다메섹에서도 조공을 받으며 수비대를 두어 지키게 했다. 또 다메섹과 전쟁 상태에 있던 최북단에 위치한 하맛왕이 자원하여 조공을 드리는 자가 되었다. 두로와는 평화적인 교역을 통해 세력을 뻗쳤다.


(4) 암몬(삼하10장, 대상19장) -

다윗이 암몬 왕 하눈에게 베푼 호의가 오해를 사게 됨으로 암몬(위에서부터 암몬-모암-에돔이 위치)과의 전쟁을 했다. 이 전쟁으로 아람계의 여러 나라를 완전 정복하여 중요한 지대를 수중에 넣는 좋은 기회가 되었지만 소바왕 하닷에셀이 패잔병들과 아람인들을 불러모아 전쟁을 일으켰고 다윗의 군대는 요단강을 건너가서 헬람에서 그들과 싸워 승리했다.

요압은 암몬의 수도 랍바를 포위했고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은 범죄를 한 것도 이 전쟁 때였으며 요압이 다윗의 지령을 따라 우리아를 전사케 했고 마침내 랍바성은 함락되고 암몬은 완전히 다윗왕국의 한 지방이 되고 말았다.


5. 다윗 왕국의 판도

다윗은 온 유다와 이스라엘의 통일뿐만 아니라 암몬과 블레셋 모압과 에돔 다메섹과 소바와 마아가와 하맛까지(유프라테스강까지) 정복하여 편입시키기도 하고 조공을 받기도 하며 지대한 영향력을 끼쳤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이 다윗 때에 역사적 사실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제 이스라엘은 주변 국가의 공포의 대상이 되었고 상비군 28만 8천을 두고 12반열로 나누어 매달 2만 4천명씩 예루살렘 궁을 지키도록 했다. 또 행정적으로 각 지파마다 관할하는 관장을 두어 다스리게 했으며 궁중에 고문단과 서기관을 두어 국사를 논의했으며 인재들의 등용과 종교제도를 세워 대제사장 사독과 아히멜렉 밑에 제사장들과 레위족속들을 분대별로 조직했다.


6. 다윗왕의 선행과 악행 -

다윗의 아름다운 행위는 요나단의 유일한 아들로 절뚝발이인 므비보셋을 찾아 왕궁에 살게 하고 사울의 밭을 돌려주었으며 그의 상에서 함께 먹게 했고 왕자 중 하나와 같이 대우했다.

또 기브온 사람들에 대해 공의를 베푼 일로 기브온 사람들에게는 여호수아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사울이 깨고 그들을 학살하였는데 다윗 왕 때에 3년간 큰 기근이 임하여 다윗이 하나님께 그 원인을 물어보았을 때 하나님께서 사울의 악한 행위를 말씀하셨다. 그는 기브온 거민들을 불러 소원을 다 들어주었다.

다윗의 악행은 밧세바와의 무서운 죄악(삼하11:1-12:25)으로 요압이 랍바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불러 범하고 그가 잉태하자 우리아를 전선에 보내 전사케 한 후에 밧세바를 아내로 취한 것이며 또 왕위에 오른 여러 해 후에 9개월 20일에 걸쳐 인구 조사를 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슬퍼하시며 이스라엘을 치시매 온 땅에 온역이 있어 죽은 자가 7만이었다. 후에 다윗은 회개하였다. 이 일이 악함은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소유로 아는 세상 권세를 추구하는 교만에 빠진 때문이다.


7. 다윗의 말년(삼하13-20, 왕상1:1-2:11, 대상22:28-29) -

다윗의 말년에 가정의 어려움이 계속되어짐은 하나님의 징계였다. 왕궁에서 왕위의 계승을 놓고 반역과 반란이 계속되었다.


(1) 압살롬의 반역(삼하13-19) -

압살롬은 다윗의 3남으로 그술성의 왕 달매의 딸 마아가 공주에게서 난 아들로 다윗의 장남 암논이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범하자 양털 깎는 잔치 자리에 암논을 불러서 죽이고 누이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 이유를 들어 왕권을 탐내었으나 두려움이 생겨 어머니의 고향 그술로 도망하여 3년을 지낸다.

다윗은 압살롬을 사랑하는 마음이 간절했고 요압의 중재로 압살롬을 데려오기는 했지만 그 아들을 보려 하지 않았다. 사랑은 하지만 압살롬의 죄과를 전부 용서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압살롬은 왕자의 입장에서 병거와 말들을 준비하고 부하를 두며 이스라엘 모든 지파들의 마음을 사, 신임을 받으려고 애를 써서 4년 후에 헤브론으로 가서 "왕이 되었다"고 나팔을 불어 반역을 일으키매 따르는 자가 많았고 아히도벨과 군대장관 아마사도 압살롬을 따랐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피난길에 올랐다. 그때 사독과 아비아달이 함께 하였고 충복 600명과 그렛 사람과 블렛사람도 함께 했다.

두 제사장이 법궤를 가져가자고 하였으나 다윗은 이를 거절하고 생명을 온전히 여호와께 맡겼다. 그는 두 제사장과 고문관인 후새를 예루살렘 압살롬에게 보내어 아히도벨의 지략을 물리치게 하였다. 다윗이 마하나임에 이르렀을 때 그곳의 부호들과 유지들이 다윗의 군대를 도왔고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정면 대결하게 되었다. 다윗은 출전하는 그들에게 "나를 위하여 소년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접하라"고 간청했으나 에브라임 수풀에서 압살롬의 군대는 패전하여 압살롬은 죽었고 다윗은 심히 슬퍼함으로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들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릴 정도였다.


(2)세바의 반역(삼하20:1-26) -

압살롬이 죽자 온 이스라엘이 다시 다윗에게 돌아왔고 다윗의 환궁을 서두르다 유다와 이스라엘이 서로 환궁을 앞장설려고 하는 충돌 속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분열을 일으켰다. 이때 베냐민 사람 세바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충동하여 반역을 일으켜서 온 이스라엘이 세바를 따르므로 압살롬의 반역보다 사태가 더 심각해졌다. 다윗은 이 일에 압살롬의 반역에 주동이 됐던 아마샤를 군대장관으로 임명하여 3일 안에 군대를 모으고 세바를 추격하게 했다.    그러나 요압 형제들이 이 일을 못마땅해 하였다. 정한 3일이 되어도 아마사가 돌아오지 않자 다윗은 요압의 동생 아비새에게 세바를 추격할 것을 명령하였고 도중에 아마사를 만나자 요압이 아마사를 죽였다. 세바는 아비새의 추격을 받아 어떤 성에 숨었으나 성의 포위됨을 보고 한 여인이 지혜를 내어 세바의 머리를 아비새에게 넘겨주므로 반란은 종결되었다.


(3) 아도니야의 반역과 솔로몬의 즉위(왕상1:1-2:9, 대상22:6-23:1) -

다윗이 나이 많아 늙었을 때 넷째 왕자 아도니야가 불법으로 왕위에 오르려 했다. 그는 군대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자기편으로 포섭하여 일을 진행하였다(요압은 기회주의자였다). 선지자 나단이 밧세바를 시켜 아도니야의 반역을 다윗에게 알렸고 나단도 다윗에게 들어가 알렸다.

다윗은 즉시 솔로몬을 왕의 노새에 태우고 기혼의 대제사장 사독의 성막에서 기름을 부어 왕이 되었음을 선포케 했고 명령대로 행하여 솔로몬 왕 만세를 부르자 아도니야와 요압의 군중들이 놀라 흩어짐으로 아도니야의 계획은 무너지고 말았다. 다윗은 임종을 앞두고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며 행할 것과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것과 모든 백성들에게 솔로몬을 도와 성전 완성에 크게 협력할 것 등을 유언으로 호소했다. 다윗의 통치 기간은 40년으로 헤브론에서 7년 예루살렘에서 33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