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의 역사

제20장 - 포로기간 중의 바벨론

호리홀리 2014. 12. 10. 13:42

 

제20장 - 포로기간 중의 바벨론


1. 바벨론의 새 왕 나보니더스 -

느부갓네살왕이 죽자 그 아들 에윌므로닥이 왕위에 올랐다. 그는 여호야긴을 감옥에서 내어놓아 지위를 높여 주었다. 왕이 된지 2년 후 궁중 반역을 당하여 피살되고 그의 처남인 '네르갈사레셀'이 왕이 되었다. 그가 죽자 그의 어린 아들'라바시말둑'이 왕위에 올랐으나 9개월 만에 음모단에 의해 무혈혁명으로 왕위에서 물러나고 '나보니더스'가 왕위에 올랐다. 그는 유능한 인물로 메데의 침입을 막고자 국방강화에 힘썼고 애굽과 통하는 남북연결의 통로를 확보했고 북아라비아의 '데마'를 점령하고 바벨론의 제2수도를 삼아 11년간 거기 머물면서 그의 아들 벨사살을 부왕으로 삼아 바베론 궁을 지키며 다스리게 했다.


2. 나보니더스와 벨사살에 대하여 -

바벨론 역사의 연대에는 나보니더스(556B.C.-539B.C.)가 바벨론의 최후의 왕으로 나타나 있다. 성경에는 벨사살 때 바벨론이 멸망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그것은 다니엘서의 기록오류라고 성경학자들이 말했으나 19세기 중엽에 고대 바벨론에서 발굴된 서판에 의해 성경내용이 사실임이 증명되었다. 나보니더스가 그의 모든 왕권을 벨사살에게 맡기고 데마로 군대를 이끌고 가서 데마의 왕을 죽이고 점령한 후 장기간 그곳에 정주했다는 사실이다.


3. 메데와 파사

- 파사는 본래 엘람 왕국의 멸망 후에 생긴 작은 나라였다. 벨사살은 메데의 세력을 막기 위해 파사와 동맹을 맺기도 했다. 파사는 메데의 영향 아래 있는 작은 나라였으나 그 지도자 고레스왕은 젊은 나이로 나라를 급속도로 발전시켰다. 그의 부왕은 메데와 정략결혼으로 동맹을 맺고 평화를 유지했으나 기원전 550년에 두 나라는 큰 전쟁을 벌였고 파사는 수적으로는 열세였으나 고레스왕의 강력한 지도로 메데를 물리쳐 승리했다. 그러나 고레스의 정책은 특수하여 메데를 연합국으로 만들어 두 나라를 통치하는 수반이 되었다.


4. 나보니더스의 종교정책 -

북아라비아의 데마에 제2수도를 건설하고 거기에 정주한 나보니더스는 바벨론의 본궁을 비우고 공식 신년제사인 '말둑'에게 올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에 다년간 불참하여 불평을 샀다. 그는 새로운 다른 월신 '난나'숭배에 열중해 있었고 바벨론의 다신교의 혼란한 종교를 정리하고 '난나' 신 중심의 종교를 세우려했다. 이런 종교정책은 사생활이나 종교생활에 자유를 누려왔던 유다의 포로들에게는 불안과 수난이 되었으나 파사의 고레스왕의 승리로 유다인들에게는 이중삼중의 해방과 큰 기쁨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