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전도서(구속사)

전도서4장,모순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호리홀리 2015. 4. 1. 11:45

나는 세상의 모든 학대와 슬픔을 보았다. 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려도 위로하는 자가 없으며, 학대하는 자에게는 권세가 있다. 그래서 나는 이미 죽은 자가 살아 있는 자보다 더 행복하다고 선언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 행복한 사람은 아직 태어나지 않아 이 세상의 악을 보지 않은 자이다(4:1-3)

 

여기 내용은 세상의 여러 부조리한 문제를 제시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느니라’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이에게는 위로해 주지 않고 포악과 아픔과 학대만 준단 말입니다. 우리 자신들을 잘 봅시다.

 

잘 차려 입은 사람만 반대로 대접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권력을 가졌던 사람이라는 것으로 그가 마땅히 비난받아야 할 엄청난 비리가 폭로 되었음에도 함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속성이 아닙니까? 반대로 약자는 위로를 주기는 커녕 짓밟는다 말입니다. 또한 포악하게 하는 자가 더 큰 권세를 가지고 행사하고 있는 모습을 봅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럴 바에는 차라리 이 세상에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지 않겠느냐고 전도자는 아주 냉소적으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학대와 착취를 당하는 한 마디로 약육강식의 세상을 살아간다는 말입니다. 정말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에게는 위로를 해주는 사람이 없고 오히려 포악한 사람이 더 권세를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아니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세상이 왜 이렇게 부조리가 있느냐? 하고 이 전도자는 하나님을 인정하기 때문에 하나님 편에서 생기는 심각한 고민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고민과 갈등은 기독교인이라면 마땅히 제기하고. 거기에 대해 어물쩡 넘어가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답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또 이런 부조리도 있습니다.

 

나는 또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여 성공하고자 하는 동기가 자기 이웃에 대한 시기 때문인 것을 알았다. 이것 역시 헛되고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 팔짱을 끼고 스스로 굶어 죽는 바보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별로 가진 것은 없지만 마음이 편안한 것이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정신없이 일하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보다 낫다(4:4-6)

 

여기 내용은 온갖 수고와 노력을 다하여도 칭찬은 커녕 온갖 욕만 당한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쉽게 말해서 한 사람이 자기가 한 만큼의 수고에 대해서 인정을 안해주는 사회란 말입니다. 경쟁사회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삶의 정당한 능력과 가치를 평가하기 보다는 어찌해서든 깎아내려 놓아야만 속이 시원한 사회란 말입니다. 또한 실력으로 승진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편법이 동원되는 것이 인간 사회가 아니냐는 심각한 지적입니다.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나는 이밖에도 세상에서 또 헛된 것을 보았다. 어떤 사람은 아들이나 형제도 없이 혼자 살면서 억척스럽게 일하면서 자기 부를 만족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는 즐거움도 마다하고 누구를 위해서 그처럼 열심히 일하는가? 이것도 다 헛된 것이며 불행한 일이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더 나은 것은 협력하므로 일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사람 중 하나가 넘어지면 다른 사람이 그를 도와 일으킬 수 있으나 혼자있다가 넘어지면 그를 도와 일으켜 주는 자가 없으므로 그는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추운 방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진다. 그러나 혼자서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겠는가? 한 사람으로서는 당해낼 수 없는 공격도 두 사람이면 능히 막아낼 수 있으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 외로움을 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인류가 타락하고 난 다음에 제일 먼저 생기는 일이 창세기 4장의 사건으로 가인이 그의 형제 아벨을 죽이는 그런 장면이 나옵니다.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살인으로까지 가는 것이며 산상수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살인의 진정한 의미를 지적하심으로 죄 문제를 정확히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물질을 위해서라면 형제도 아니다. 아무리 형제애 뭐라해도 자기가 손해를 보는 일은 안하려고 합니다. 우리 현실에 널려 있는 이야기가 아닙니까? 인간은 결국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간다는 근본적인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또 이런 문제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지혜로운 소년은 모든 조언을 거절하는 늙고 어리석은 왕보다 낫다. 그런 소년은 감옥에 있어도 나와서 성공할 수 있으며 비록 가난하게 태어나긴 했지만 왕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앞으로 왕이 될 그와 같은 소년을 따르는 것을 보았다. 왕이 다스리는 백성이 아무리 많을지라도 그 다음 세대는 그를 좋아하지 않으니 이것도 헛된 것이며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은 것이다(4:13-16)

 

이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왕이 젊었을 때는 백성들을 참 지혜롭게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모두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왕이 늙었다고 이제는 왕을 쫓아 내려는 것입니다. 민심이 소위 말해서 조변석개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서로에 대한 신실함이 없고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까 인간이 혼자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왜 인간이 혼자일 수 밖에 없느냐?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4장 마무리에 하고 있습니다.

 


 

4장에서 제기했던 문제를 뒤집어서 추적해 보면 어떤 일관성 있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맨 마지막에 살펴 본 것이 무엇이냐 하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서로 협력할 수가 없고 서로 협력할 수가 없으니까 개인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개인주의로 빠질 수 밖에 없으니까 경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경쟁을 하다가 보니까 강자가 약자를 잡아 먹을 수 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사회는 약육강식의 사회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차근차근 한 단계씩 올라가는 것입니다.

 

4장 제일 처음에서 제기했던 문제가 약육강식의 사회문제였는데 그 문제의 핵심은 서로에 대한 신의와 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마무리 합니다. 그래서 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다스려 나가신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부조리가 많고, 불의가 많고, 정작 위로를 받아야 할 사람이 위로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천대를 당하고 또 포악한 사람이 권력을 많이 가지고 있고, 또 끊임없이 사람은 하나가 되지 못하고, 서로 못잡아 먹어서 으르릉 거리고 또 신의가 없는 이런 사회냐는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