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창세기(구속사)

10,하나님 나라의 시작

호리홀리 2015. 3. 30. 14:05

10. 아브라함(1) : 하나님 나라의 시작

 


 

하나님은 위에서 언급한 두 번의 심판에도 불구하고 실패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마지막 심판인 바벨탑 사건에서 언어를 혼돈하게 하신 것은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흩어져서도 여전히 악한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더 악한 길로 갈 것이며 또 악은 너무나 쉽게 자신의 영역인 세상 나라를 넓혀갈 것이고 상대적으로 하나님 나라는 더 빨리 축소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 하나님은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셨고 그것을 때가 되매 펼치셨다. 대부분의 셋의 후손과 노아의 후손들조차 세상의 영향을 받아서 타락의 길을 갔기에 세상 나라는 항상 공격적이고 하나님 나라는 항상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으나 하나님은 이제부터 전혀 새로운 차원의 길을 여신 것이다. 그것은 부름을 받은 한 사람의 후손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 나라로 빼앗기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부르심과 구원은 단순히 한 사람이 어떻게 불러지고 구원을 받는가 하는 예로 생각하는 개인적인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를 통해서 구속역사가 전혀 새로운 방법과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통한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그 자체로 완성된 것이 아니라 이삭과 야곱과 요셉을 통하여 준비되어서 이스라엘이 민족으로 형성되고 출애굽을하여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드디어는 약속된 땅을 받음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아브라함을 통하여 새롭게 진행되는 역사는 이 때까지 하나님이 사용하시던 것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전략가운데서 나온 것이다. 또 그렇기에 이 아브라함 한 사람을 부르심은 새로운 차원의 하나님 나라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에서 나온 부르심이다.

 


 

이 부르심의 명령에는 엄청난 약속이 동반되었다 (창 12:1-3).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이 크게 되는 것은 우리 신자들이 동일한 페턴을 따라서 하면 우리도 큰 민족을 이루고 큰 이름을 가지게 된다는 개인적인 교훈이라기 보다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역사적인 교훈이다. 후대에 사는 우리가 또 하나의 아브라함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그 축복에 동참하는 것이다. 즉 아브라함은 이제 하나님의 구속역사의 전개방식이 결정적으로 변화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서 있다. 12:2의 약속중에서 마지막에 나온 "너는 복이라"라고 직역될 수 있고 "너는 축복의 대명사라"라고 번역할 수 있는 구절(개역 :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은 모든 약속의 결론이다. 이것은 12:3에서 부연 설명되었다.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를 통하여 축복을 받을 것이다. 그런데 이 축복은 후대에 일어날 선지자의 예언의 내용인 정죄와 심판을 지나서 마지막 소망의 차원을 거쳐서 아주 먼 훗날에야 비로소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에 대해 어떤 부정적인 반응도 없이 순종한 아브라함의 믿음은 앞으로 하나님이 인정하실 믿음의 행위(15:7)에 대한 서론이었다는 것을 신약은 증거한다 (히 11:8). 그러나 아브라함이 첫 여행을 끝내고 멈추어 섰을 때 이것이 네 땅이니라 라고 하신 곳은 아무도 살지 않은 임자가 없는 곳이 아니라 이미 전통과 유서가 깊으며 사람이 많이 살고 있는 세겜이었다 (12:6-7). 그런데 이 약속은 사람들이 이미 사는 땅위에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될 것인가 ? 이것은 아브라함이 마음으로 해 보았을 본질적인 질문이다. 세겜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이 약속은 언젠가 그 속에 사는 사람들이 제거되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하나님 나라의 성격이 분명해진다. 15:16에서 밝혀지지만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죄악이 관영하여 하나님이 인내하시는 한계를 넘을 때 하나님은 그 곳의 사람들을 심판하셔서 그들을 뽑으시고 그 대신에 이스라엘을 그 자리에 심으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하나님은 한 걸음 더 나가셔서 가나안 사람들을 심판하는 도구로서 이스라엘을 쓰실 것이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의 구원과 이방의 심판은 글자 그대로 한 진리의 양면이며 이것은 먼 훗날 신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할 마지막 사건과 연관된다.

 


 

아브라함은 지금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성취될 하나님의 이런 약속에 대해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으나 현실적인 문제에서 허물어진다. 그것은 그가 거하는 남방에 닥친 견딜 수 없는 심한 기근이었다. 그 결과 물을 따라서 하나님이 약속하지도 않은 땅인 애굽에 내려가는 인간적인 결단 때문에 생기는 문제에 대하여 인간적인 속임수를 베푸나 오히려 그 계획이 드러나고 바로에게 책망받게 된다 (12:10-20).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교훈을 받고 가나안에 돌아온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의 문제가 생겼을 때에 그 섭리를 신뢰하여 조카에게 양보를 할 줄 알게 된다 (13:1-8). 조카 롯이 '악하고 큰 죄인'인 소돔의 영적인 환경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풍요로운 자연적인 삶의 조건을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여 그 곳을 찾아 떠난다 (13:9-18). 그러나 그런 개인적인 소망과는 관계없이 롯은 국제분쟁에 휘말려 노예가 될 신세가 되지만 아브라함 결사대의 도움으로 해방된다 (14: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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