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

4.도망가는 야곱, 돌아오는 이스라엘

호리홀리 2015. 3. 17. 13:37

4.도망가는 야곱, 돌아오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자손이란 이름은 명칭 그대로 그들의 조상 '이스라엘'에서 기원한다. 이스라엘의 본래 이름은 야곱이다. 야곱이라는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뀜에는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이 개명 과정을 통하여 유대 민족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유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요, 이삭의 아들이다. 그는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자기의 쌍둥이 형제와 싸우곤 하였다 (창25:22 "아이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 출생 때에도 야곱은 쌍둥이 형제인 에서보다 뒤늦게 나올까봐 안간 힘을 썼다 (창25:26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 하지만 그는 결국 약간 늦게 나왔기 때문에 장자의 지위를 빼앗기고 만다.

 

야곱의 장자권 탈취 작전은 그의 평생을 통하여 계속하여 전개된다. 그의 어머니 리브가 역시 야곱의 편이 되어, 아니 어떤 면에서는 야곱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야곱의 장자권 탈취를 돕는다. 야곱은 결국 속임수로 형 에서로부터 장자의 축복을 빼앗는다 (창27:36 "에서가 가로되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함이 합당치 아니하니이까. 그가 나를 속임이 이것이 두번째니이다. 전에는 장자의 명분을 빼앗고 이제는 내 복을 빼앗았나이다"). 하지만 이 일이 결국 야곱 자신의 불행한 운명의 근본 원인이 될 줄이야.

 

장자권과 그에 따른 축복을 동생에게 빼앗긴 에서가 야곱을 죽이려고 계획하자, 야곱은 할 수 없이 외삼촌이 사는 밧단 아람을 향하여 머나먼 도망 길을 떠난다. 잠시만 도망가 있으면 그 어머니 리브가가 부르겠노라고 약속하였으나, 그 잠시가 20년이나 되어 버렸다 (창31:41 "내가 외삼촌의 집에 거한 이 20년에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14년, 외삼촌의 양떼를 위하여 6년을 외삼촌을 봉사하였거니와").

 

고향 떠난 도망의 길 20년은 한 인간의 삶에 있어서 결코 짧은 기간은 아니다. 야곱은 총 147년을 산 사람으로서, 130세 이후 죽기까지 17년은 이집트 땅에서 (창47:9,28), 그리고 젊어서 형 에서를 피하여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산 것은 이미 언급한대로 20년에 이른다. 따라서 그의 타지 생활은 도합 37년으로서 전 생애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만일 외삼촌 라반과 사촌들의 태도 변화만 아니었더라면 (창31:1-2 "야곱이 들은즉 라반의 아들들의 말이 야곱이 우리 아버지의 소유를 다 빼앗고 우리 아버지의 소유로 인하여 이같이 거부가 되었다 하는지라. 야곱이 라반의 안색을 본즉 자기에게 대하여 전과 같지 아니하더라") 야곱은 더 오랜 세월을 아람 땅에서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들의 태도 변화와 또 그에 따른 하나님의 권고로 (창31:3 "야웨께서 야곱에게 이르시되 네 조상의 땅,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있으리라 하신지라") 야곱은 마침내 환향을 결심하고 이를 실천에 옮긴 것이다.

 

이러한 배후 동기와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인간 야곱의 귀향은 결코 쉬운 걸음이 아니었다. 그로서는 연약한 부녀자들과 어린 아이들, 그리고 각색 가축을 끌고 가야만 하는 머나먼 길의 위험은 그만 두더라도, 자신의 죽음을 초래할지도 모르는 형 에서의 해묵은 분노를 대면하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을 떠날 때 비록 혈혈단신에 지팡이만 가지고 요단강을 건넜으나 (창32:10), 적어도 그에게는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할 수 있는 꿈이 있었다 (창28:12-15). 그러나 이제 비록 처자들과 수많은 가축떼를 끌고 환향하는 걸음임에도 불구하고, 야곱에게는 오직 죽음의 공포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때 야곱의 두렵고 답답했던 심정은 창세기 32장에 잘 묘사되어 있다. 야곱은 인간의 수단도 강구해 보았고, 하나님께 간절히 호소도 하였다. 결국 야곱은 자신의 운명을 내놓고 밤새도록 천사와 싸워 마침내 승리를 얻고야 만다. 이때 야곱이 새로 얻게 되는 이름이 바로 '이스라엘'이다. 그는 새 이름 그대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긴 것이다 (창32:28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

 

유대 민족의 조상 야곱, 곧 이스라엘은 여러 모로 유대 민족의 역사를 대변해주고 있다. 주후 70년 이후 서서히 고향을 떠나 먼 유랑의 길을 떠난 유대인, 20년이 아닌 2000년의 디아스포라 생활, 디아스포라의 주인 민족들로부터 학대와 박해를 받아 결국 고향으로 다시 돌아오려고 꾀하는 유대인, 다시 돌아와 1948년 고토에 나라를 세우고 평화롭게 살아보고자 하였으나 그 출발시부터 온 이스라엘을 지중해로 쓸어버리겠다고 위협하며 전쟁을 걸어온 주변의 아랍 국가들. 이 모든 역사적 상황은 그들의 조상인 야곱의 삶에 이미 축소판으로 반영되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켜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고 (출4:22) 말씀하신 적이 있다. 유대인의 이러한 역사적 운명은 그들이 본래 장자가 아닌 자로서 하나님 앞에 장자의 지위를 차지하였기 때문에 생긴 역사적 필연이란 말인가? 하지만 야곱의 생애는 야곱으로 끝나지 아니하였다. 그는 죽음과 파멸의 공포 앞에서 하나님과 겨룸으로써 야곱이 변하여 이스라엘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새 사람이 된 이스라엘의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리게 되었다. 형 에서가 생각과는 달리 야곱, 아니 이스라엘을 형제의 도로써 따뜻하게 맞이해준 것이다.

 

구약 성경의 소선지서중 하나인 호세아서는 어느 모로 보나 유대 민족의 역사를 예언적으로 기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안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군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 그 후에 저희가 돌아와서 그 하나님 야웨와 그 왕 다윗을 구하고 말일에는 경외함으로 야웨께로 와 그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호3:4-5). 이 구절을 20세기의 언어로 바꾸어 말하면 "유대인이 2000년 동안 나라도 없고, 하나님도 섬기지 않고 (제사와 에봇은 야웨 하나님 숭배를 대변한다), 우상 숭배도 (주상과 드라빔은 우상 숭배를 대변한다) 하지 않다가, 그 후에 유대인들이 고토로 돌아와 비로소 하나님과 그의 왕 메시야 예수를 찾고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은총을 입을 것이다"가 될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적성 아랍 국가들에 의하여 완전히 포위되어 있다. 평화와 안전을 바라고 고토로 돌아왔으나, 지난 40여년 이스라엘의 역사는 전쟁과 각종 테러의 공포로 점철되어 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도 마찬가지이다. 유대인은 지구 어느 구석에 살든지 '반 유대 감정'이라는 골치 거리를 직면하여야 한다. 자, 이제는 하나님과 겨루어 볼 때가 아닌가? 그의 왕 메시야 예수를 찾을 때가 아닌가? 야곱이라는 낡은 옷을 버리고 참 이스라엘로 변화받을 때가 아니겠는가?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호세아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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