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사기(구속사)

(7) 타협(사사기2:1~5)

호리홀리 2015. 3. 9. 19:16

(7) 하나님의 조치

 

2장 1절에서 5절까지 보김에서 있었던 사건은 이처럼 여호수아 시대를 이어서 교회(하나님의 나라)를 세워야 할 가나안 땅에서 계속 악의 근원을 제거하고, 축출하고, 그 영역에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지며, 그 통치 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복되게 사는 그런 복된 삶의 영역을 이루어 가도록 전투하는 교회로서의 사명을 받은 이스라엘이 그 때까지 행해 온 진행과정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받아 들여셨는가, 말하자면 그때까지 진행된 교회의 시대적 사명 감당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라고 할 수 있다. 그 평가가 한 마디로 이스라엘이 공존의 길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러면 이 공존이라는 것이 왜 그렇게 심각한가, 심각한 책망을 들어야할 만한 잘못된 일인가? 그것은,공존이라는 것은 싸울 의지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전쟁의사를 포기해 버렸다는 것이다. 당시의 이스라엘이 싸울 의사를 포기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더 이상 악과 싸우길 포기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시대의 교회에 명하신 뜻, 이루시고자 하신 뜻이 전투하는 교회인 것이다.

 

교회의 영역으로 지정된 곳에서 모든 것을 정결케 하시고 모든 악과 오염의 근원을 제거하시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또한 그 사명을 교회에 주셨는데 교회가 그 사명을 포기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정면적 거역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이와 같은 사명을 주셨는데 교회가 그 사명을 감당치 않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교회로 존재할 가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싸울 의사가 없는 즉, 교회의 시대적 사명을 거부하고 공존하기를 원한 이스라엘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너희에게 전쟁의 승리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요, 너희들이 싸워서 멸하고 제거하기를 거부한 대적 세력들이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옆구리의 가시처럼 너희를 괴롭히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원칙적으로 교회였다고 하면 이런 원칙은 오늘의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 것이다. 분명히 교회가 성별되기를, 교회가 참된 모습을 굳건히 지켜 나가면서 계속 교회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야 될 터인데 세상 가운데서 교회의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고 거룩한 교회가 세워져 가야 할 것인데 오히려 이방(세상)과 타협하고 공존하기를 택한다고 한다면 사실 공존이 되는 것이 아니고 그 때부터는 세상 세력이 교회에 침투해서 교회를 변질시키고 교회의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