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사사기(구속사)

(2) 시험의 의미와 목적 /사사기3:1-4

호리홀리 2015. 3. 9. 19:19

(2) 시험의 의미와 목적

 

[3:1-4]

 

여기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그들이 여호와의 길을 쫓아 행하는지 그것을 알기 위해 시험하셨다고 되어 있다.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전쟁을 가르쳐 알게하기 위함이라고 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단번에 구원하지 않으시고, 모든 대적 세력으로부터 일시에 구원하지 않으시고 그들을 남겨두신 것은 그들을 시험하려 하신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 시험의 내용이라는 것은 그들이 참으로 하나님을 순종하는가? 그것을 아시기 위해서 라고 되어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아스러운 것은 시험이라는 말이 나올 때 마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과 그 모든 것을 생각할 때 우리로 하여금 이해할 수 없는 생각이 드는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체질을 아시는데, 즉 우리가 얼만큼 견딜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또 우리의 연약함과 악함과 부패함을 다 아시는데 무엇을 또 구태여 알아 보시려고 시험하시는가? 특히 신명기 같은 곳을 보면 내가 너의 체질을 안다고 하셨다. 그 체질이라고 하는 것은 의학에서 사용하는 그런 체질이 아니고 영적인 체질을 뜻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들이 어떻게 생겨먹은 존재인지 아신다는 것이다. 이렇게 타락과 부패성을 다 아시는데, 어떻게 될 것인지 다 아시는데 또 시험하시겠다고 하니 도대체 무슨 뜻인가? 의아스러울 수 밖에 없다.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시험하시겠다고 할 때 그것은 대개 긍정적인 의도를 내포한 시험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체질, 믿음의 성격을 모르셔서 알아 보시기 위해 시험하신다는 뜻보다 아시기 때문에 시험하신다는 뜻으로 해석을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시험하실 때는 연단의 의미를 갖는다. 그와 같은 어려움을 통해서 연단을 받게 하시는 그러한 의미의 시험인 것을 광야시대의 역사를 통해서나 그 이후의 여러 가지 역사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을 일시에 멸하지 않으시고 그대로 남겨 두셨다. 남겨두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계속 전쟁을 하도록 하셨다는 이야기다.

 

가나안 정복, 정착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또 역사라고 하는 것, 곧 성경의 역사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된 땅에 견고하게 뿌리를 박는 삶이다. 그것이 성경의 역사다. 가나안 땅이 우리에게 상징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복된 영역이다. 그래서 신약에 오면 바로 이 땅이라고 하는 것이 성도가 받을 기업(구약에서 이 땅을 기업이라고 했다) 즉, 믿는 자가 받을 축복, 구원과 동일시 한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의 복된 다스림 속에 사는 삶 그것을 상징하는 것이 구약에서의 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나안 정복, 정착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가 약속의 땅, 약속하신 축복 속에 삶의 뿌리를 깊이 내리는 그런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 약속의 땅에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는 이 과정을 하나님께서는 대적 세력을 남겨 두셔서 계속 싸우게 하심으로서 끊임없는 긴장 속에 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런데 특별히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로 하여금 전쟁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이것도 이해하기 곤란하다. 전쟁이 뭐가 좋은 것이라고 그냥 차라리 편안하게 지내게 하시면 오히려 나을 것인데 왜 전쟁이라고 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게 하시는가?

 

그러나 전쟁을 반드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전쟁이라고 하는 것은 그들 자신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신뢰하고 의지하고 붙잡을 때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서 그들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전쟁인 것이다. 이 전쟁이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전쟁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무엇을 경험하게 되어 있는가 하면 교회 내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있는 역사를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 전쟁을 통해서 오히려 믿음이 성숙하게 되고 믿음이 더욱 확실해져 간다고 할 수 있다. 쉽게 말하면 전쟁을 통해서 그들의 믿음을 훈련해 가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시험의 긍정적인 목적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전쟁은 교회 안에 존재하는 악의 세력들과 끓임없는 전투를 통해 악을 제거함으로써 성결한 백성의 모습을 이루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의 표명이요, 이와 같은 과업을 교회에 맡기셨고, 교회는 이와 같은 사명을 감당함으로써 그들 가운데서 친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어 더욱 큰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니 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더욱 견고해져 간다고 말 할 수 있다. 얼핏 보면 외적인 전쟁인 것 같지만 실제에 있어서 그것은 영적전쟁의 차원을 그 자체가 포함하고 있고 또한 이것은 신약의 교회가 겪을 그것을 예표, 상징하는 의미도 있겠다. 마치 이스라엘이 정복, 정착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축복 속에 더욱 뿌리를 내리는 그런 과정이었듯이 신자들도 죄와 끊임없이 싸움으로서 오히려 하나님의 약속, 축복 속에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는 영적 유익을 얻게 되는 것이다.

 

롬 5장에서 이것을 표현하기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말씀으로 표현한다. 환난 자체가 어떻게 보면 긍정적이지 않은 것 같이 보이지만 그러나 신자에게 있어서는 그것이 신자를 낙담하고 절망케 하는 것이 아니고 매우 긍정적인 기능을 갖는다는 것이다. 지상교회가 편안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오산이다. 끊임없는 마귀의 도전과 파괴공작이 연이어 교회 안팎에서 있을 것인데 이것을 부정적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대처하면 그들과의 영적인 전쟁을 통해서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고 또한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이 연단받고 더욱 확실해져가고 믿음이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렇다면 시험이 우리에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기 보다는 오히려 우리를 긍정적인 데로 더 나은 상태로 인도하게 될 것은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족속들을 다 멸하지 않으시고 남겨 두셨다고 하는 것은,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 그러셨다는 것은 이와 같은 뜻을 갖는다고 생각된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대적 세력인 가나안 족속이라는 구체적인 세력들과 싸움의 방식도 칼과 창으로 싸웠으니 오늘 우리하고는 사정이 다르지 않겠는가 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물론 외형적인 차이는 분명히 있으나 그 본질은 동일하다고 생각된다. 비록 외형의 모습은 다르지만 그러한 외형적인 전쟁은 우리와 동일한 영적인 차원의 전쟁이며, 시련과 연단의 측면이 분명히 있었던 것이다. 믿음 없이 싸움을 할 수 없다. 그것이 외적인 전쟁이든 내적인 전쟁이든.

 

이런 목적에서 하나님께서 가나안 민족을 다 멸하지 않으시고 남겨 두시어 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계속 영적인 전쟁을 수행케 하심으로 그 전쟁을 통해 연단받게 하시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그 전쟁의 긴장을 견뎌내지 못하고 전쟁의사를 포기 해 버리고 그저 적당히 타협해서 공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악을 제거하시고 교회의 영역으로 지정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가 이루어지고 의로운 나라로 거룩한 나라로 세우시려고 하는 근본적인 뜻이 좌절되게 되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더이상 교회로서의 존재의미를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하나님의 전쟁을 포기할진대 나도 더 이상 너희의 대적을 너희 목전에서 축출하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