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구약성경과 사본들

칠십인역

호리홀리 2015. 3. 9. 14:47

 칠십인역  

 


 

주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흥왕하여 당시 말하는 '세계'를 정복한 일은 유대인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커다란 전환점을 이룬다. 알렉산더는 '세계'를 정복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고 아울러 소위 말하는 '헬레니즘 문화'를 온 세계에 뿌리는 일에 주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는 삽시간에 헬라화되어 그 후 수백년간 헬라 문화의 옷을 입고 거의 공동 운명을 나누게 된다. 이때 유대인도 이 헬라화라는 거대한 물결을 벗어나지 못한다. 헬라 세계가 시작되면서 유대인들은 또 다시 타의 또는 자의로 본토를 떠나 헬라 세계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것이 바로 헬라 세계 유대인 디아스포라(요한복음 7:35 참조)의 시작이다. 사도행전에 기술된 바울의 전도 여행을 통하여 우리는 주후 1세기 얼마나 넓은 지역에 유대인이 흩어져 살고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주전 4세기부터 형성되기 시작한 헬라 세계 안의 유대인 디아스포라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역시 알렉산드리아의 디아스포라였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북쪽 지중해변에 위치한 도시로서 전 헬라 세계를 통하여 손꼽히는 헬레니즘 도시였다. 헬라화의 물결 이전에도 유대인들이 이집트 땅에 드문드문 들어온 일이 있었으나 이때처럼 대규모의 유대인이 이주하여 커다란 디아스포라를 형성한 적은 없었다. 주전 332년 알렉산더 대왕이 자신을 기념할 목적으로 알렉산드리아를 세울 때, 그는 이 새 도시 안에 특별히 유대인을 위한 구역을 설정해주었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완전한 시민권까지 허락하였다. 주전 323년 비록 알렉산더 대왕이 요절하였으나,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들은 이집트 통치를 계승한 프톨레미 왕조하에 계속 번영을 누렸다.

 


 

이들은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유대교의 독특한 종교 및 문화 유산을 지키는데 노력을 경주하였으나, 헬라화라는 거대한 물결에 노출된 나머지 점점 자기들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당대의 공용어인 헬라어를 모어로 대치하기 시작하였다. 언어의 변화는 그들의 고유 종교 유산을 지켜나가는데 있어서 크나큰 장애물이 되었다. 유대인은 책의 민족으로서 성경이라는 그들의 경전을 통하여 하나님 섬기는 도를 배웠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종교적 생존에 위기를 느낀 알렉산드리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은 드디어 '거룩한 말씀'을 자기들의 일상 생활 언어인 헬라어로 옮길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이런 필요의 결과가 바로 소위 말하는 칠십인역 성경의 탄생이다. 먼저 주전 3세기에 모세의 토라가 번역되었으며, 그리고 다음 세기까지는 네비임(= 예언서)과 케투빔(= 성문서)이 모두 완성됨으로서 유대인의 경전인 구약 성경은 오랜 은둔을 깨고 헬라어라는 옷을 입고 그 당시의 '세계'에 노출된 것이다. 이는 실로 이스라엘과 헬라 세계의 접촉이라는 점에서 역사상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알렉산드리아와 이집트에서 칠십인역은 히브리어 성경 못지 않게 권위 있는 성경으로 존중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다른 헬라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스라엘 안에서는 칠십인역에 대한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하였을 것이다. 비록 쿰란에서 칠십인역 사본이 몇 점 발견되긴 하였으나 이스라엘 내의 회당에서 칠십인역이 쓰인 일이 있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헬라어를 사용하는 유대인들은 칠십인역을 대대적으로 환영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사도 시대와 그 다음 세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었다. 칠십인역은 실로 장소 여하를 막론하고 헬라 세계 유대인의 성경이 되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성경이었던 칠십인역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하면서부터 초대 교회를 위한 성경으로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였다. 교회에 이방인의 수가 유대인을 훨씬 초과하면서 교회의 지도층 역시 이방인 쪽으로 옮아갔다. 이들 이방인들중 히브리어를 해독할 줄 아는 이들은 거의 전무였다. 이들의 대부분은 당시 지중해 모든 지역과 유럽 세계까지 지배하던 헬라 문화의 언어, 곧 코이네 헬라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칠십인역은 교회의 성경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기 시작하였다. 소위 말하는 이방인 교회는 칠십인역을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던 것이다.

 


 

주후 2세기 이후로 유대인 가운데 칠십인역에 대한 불신이 싹트기 시작하자 이방 기독교 지도자들과 저술가들은 자연히 알렉산드리아 성경에 더욱 귀착하게 되었다. 본래 칠십인역은 모세 오경에 국한되어 사용된 용어였으나, 주후 2세기 경부터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그들이 표준 성경으로 받아들인 헬라어 구약 전체(이중에는 외경도 포함됨)를 가리키는 용어로 확장되어 쓰이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칠십인역이 오래 된 점과 또 복음 기자들과 사도들에 의하여 사용된 점을 들어서 칠십인역의 권위를 옹호하였다.

 


 

주후 2-9세기 사이에 교회의 확장 및 선교 활동을 통하여 성경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는데, 제롬의 라틴역 불가타와 페쉬타라고 불리우는 시리아어역만 제외하고 모두 칠십인역에서 번역되었다. 이처럼 칠십인역에 기초한 번역들로는 라틴어 구역, 이집트어(곱트어)역, 이디오피아어역, 아랍어역, 고트어역, 아르메니아어역, 죠지아어역 등을 들 수 있다. 칠십인역은 오늘날까지도 동방 정교회의 구약 경전으로 쓰이고 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이 헬라어로 번역된 이후 약 6세기 동안 이 칠십인역은 헬라 세계의 디아스포라 유대인과 초대 교회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칠십인역은 우선 헬라 세계 디아스포라 유대인의 성경으로서 헬라어를 쓰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이방인 개종자들까지 복음을 위해 준비시켰으며, 헬라어라는 새로운 종교 언어를 창출하여 헬라어로 기록된 복음의 전파를 가속화시켰다. 기독교는 자연스럽게 칠십인역을 자기들의 경전으로 받아들였고, 칠십인역에 기초한 번역 작업으로 기독교의 복음은 헬라 세계의 경계를 넘어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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