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예수의 세례

(6)아들의 권세

호리홀리 2015. 3. 9. 14:38

6)하나님 아들의 권세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복음서들의 기사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례때 예수가 성령으로 메시야적 기름부음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로 세움을 받았다는 복음서들의 기사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과격한 비판학자들이 간혹 있다. 이러한 부저적인 견해는 여러가지 근거들을 들어 반박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막11:27-33절(=마21:23-27/눅20:1-8)만을 살펴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 쫗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지를 둘어 덮으시며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치 아니하신 후(막11:15-16), 유대의 최고통치기관인 산헤드린에서 대표들이 나와서 예수께 물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들을 하느냐? 누가 네게 그런 권세를 주었느냐?’이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당시 랍비들을 토론방식에 따라 반대 질문으로 답하였는데 그것은 그들이 요한의 세례를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받은 것으로 보는가 아니면 요한이 거짓선지자로서 스스로 꾸며낸 것으로 보는가 하는 것이었다. 예수의 이 반대 질문은 요한의 세례가 자기의 권세와 어떤 연관성이 있을 때만 의미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토론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예수가 성전에서 둘러엎으실 수 있는 자기의 권세를 요한의 세례에 연관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자기의 권세를 받았기에 그의 권세의 성격과 원천을 묻는 유대의 지도자들이 요한의 세례운동을 하나님게로부터 위임받은 진정한 선지자의 운동으로 보는가, 아니면 거짓 선지자의 운동으로 보는가가 중요한 것이었다. 오직 전자일 때만 예수가 그들에게 자기가 하나님의 뜻을 실행하는 선지자 요한의 세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받았다는 증언이 설득력이 있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헤드린의 대표들은 예수의 이 반대질문에 대한 답을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고 피해버렸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는 자기의 권세의 성격과 원천을 직접적으로 밝히기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포도원 농부의 비유(막12:1-12/마21:33-46/눅20:9-19)로 간접적으로 자기의 권세가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임을 밝혔다.

 

 이렇게 막11:27-33절은 예수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았음과 그 세례때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를 받았음을 간접적으로 증명한다(J.예리미야스,김세윤).

 

 막11:27-33절은 또 예수께서 자기의 성전에서의 소란피움을 하나님의 아들의 권세로 했다고 은근히 밝히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우리는 이것을 예수가 산헤드린에서 재판받을 때 성전을 부수고 새로 짓겠다고 주장했다는 죄목(막14:58.마26:61)과 그것과 연관되어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다는 죄목(막14:11-62/마26:63-64.눅22:67-70)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아야 함을 알게 된다. 간단히 결론을 말하자면 예수는 세례때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자 구약과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의 한 중심인 나단의 뿌리인 나단의 예언(삼하7:12-16)의 전승에 의해 스스로를 이해한 것 같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메시야)로서 성전을 새로 짓는 임무를 가진 것으로 보고 당시 유대인들의 예배의 중심이었던 타락한 성전을 깡그리 무시하고 죄를 요서하고 불결한 자들을 청결케하는 등 성전의 기능을 스스로 성취하며 타락한 성전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파괴될 것을 예언하며(막13:2/마24;2/눅21:6) 자기 스스로 성전을 새로 지을것을 약속하였던 것이다(막14:58)

 

 예수가 새로 짓는 성전은 손으로 만든 건물로서의 성전이 아니라(막14:58) 성전의 기능(주로 속죄의 제사를 통해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언약의 백서으로 지탱하는 것)을 성취하는 뜻으로 스스로를 속죄와 새언약을 세우는 제사로 드려(막14:22-24) 창조할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였다. 이렇게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나단의 예언에 따라 성전을 새로 세우는 임무를 완수하려 하였는데 궁극적으로 스스로를 속죄와 새언약을 세우는 제사로 드려 다시 말해서 이사야에 예언된 주의 종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특사42:6/49:6/53:10-12 등) 그(다윗의 아들) 하나님의 아들의 임무를 완수하려 한 것이다.

 

 이것이 예수의 죽음의 진정한 의미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곧 예수가 세례 때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라는 시편2:7과 사42:1절의 혼합인용으로 된 하나님의 선포로부터 얻은 자기이해의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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