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강좌/언약신학

언약신학의 역사

호리홀리 2014. 12. 1. 16:39

 


                    언약 신학의 역사

 

                                                                박인대교수



개혁신학의 창조적인 노력을 통해서 칼빈주의 신학은 가장 성경적인 신학으로 성장해 왔다. 특히 칼빈주의 신학은 언약 신학에 이르러 더 확실하게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되었다. 개혁신학의 전체 구조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을 중심하여 인간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있다. 하나님을 배제한 채, 인간 중심의 신앙 세계를 구축하려는 어떤 신학 구조도 배격한다. 특히 칼빈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의 교훈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종합적이요 포괄적인 핵심 구조를 강조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언약신학이다.


언약이라는 단어는 성경에 무려 300번 이상 나오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과 맺은 특별한 관계에 대해서 언급한 용어이다. 언약은 하나님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고 있고, 사람이 어떻게 행해야 하는가에 대한 것들이 언약 관계를 통해 잘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언약은 역사적 칼빈주의가 다루어온 핵심 주제 가운데 하나가 되어 왔다. 엄밀하게 말하면, 모든 칼빈주의가 다 언약 신학자인 것은 아니다. 언약을 거론하는 모든 신학자들을 언약 신학자들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언약 신학은 칼빈주의 신학의 대명사처럼 불려지고 있다. ‘대표 신학’ 속은 ‘대표 주의’라는 명칭도 언약신학과 유사한 용어이다. ‘대표주의’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점진적인 구원 계획을 풀이하고자 하였다.


맨 처음 언약 신학이 신학사에서 등장한 것은 16세기 유럽의 종교 개혁 시대였다. 언약 신학은 테오도르 베자가 시작한 개혁주의였다. 스콜라신학과는  계보를 달리하는 신학이면서도 매우 온건하고 포괄적으로 성경의 계시 역사를 탐구하였다. 그러나 점차 베자의 후예들이 강조하는 하나님의 작정과 예정 교리와의 조화와 융화 작업도 시도되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17세기 후반의 언약 신학자들은 돌트총회 이후로 하나님의 영원한 작정의 순서를 강조하는 점과 믿는 자들의 삶에서 구원의 순서를 규명하는 데에 그다지 큰 관심이 없고, 좀더 포괄적인 새로운 언약 신약으로 선회하였다는 점이다. 한편으로 독자적인 예정론이 발전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쌍무적인 언약 신학을 발전시키면서, 개혁신학의 주류는 이 양자를 축으로 하여 대세를 형성하여 나갔다.

 

종교 개혁자들의 언약 신학


- 쯔빙글리와 불링거의 언약 사상

초기 언약사상을 주장한 사람은 쯔빙글리였다. 그는 유아 세례를 반대하는 재세례파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언약이라는 성경의 가르침을 사용하였다. 아마도 쯔빙글리가 생각한 언약 제정의 시점은 타락 후라고 추정되지만, 그 후로는 이 언약은 역사 가운데서 지속적으로 발전된 것으로 보인다.

하인리히 불링거에 의해서 언약 사상은 빛나게 다듬어졌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모든 언약들은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제시하면서 개혁 신학들로 하여금 언약이라는 주제의 중요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도록 만든 공로자이다. 불링거는 메시야가 오실 때까지의 약속의 형태로 지속된 언약이 유지되어 왔다는 점을 강조하고, 언약의 통일성과 다양성을 주의하였다.

언약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은총이라는 단순한 사항만 쯔빙글리가 강조하였다면, 불링거는 언약의 본질에서 있어서 ‘쌍무적 성격’을 새롭게 추가하고, 인간의 완전한 책임 의식과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확연히 드러내었다. 불링거는 은혜의 언약을 조건적 언약이라고 이해하였다.


- 칼빈의 언약 신학

칼빈의 경우, 언약은 선포되고 발표되는 것일 뿐이지 인간에게 강요되거나 준수하라고 간청할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칼빈에게도 언약 그 속에 들어와 있는 자들에게 조건적 요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는 바, 언약 백성들에게는 신실함에 대한 요구와 순종의 책임이 반드시 수반되어진다는 것을 포함시키고 있다. 칼빈과 불링거는 둘 다 언약이라는 인류 역사 전체를 통해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이라는 인식에 동의하지만,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행위를 다룸에 있어서 강조점이 서로 차이가 난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불링거와 유사한 주장을 편 필립 멜랑톤은 1550년에 구원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총과 협력하는 인간의 참여를 주장하여 여전히 로마 가톨릭의 신인 협력설과 유사한 주장을 폈고, 쌍무적 언약이라는 관점에서 믿음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구원의 조건이라고 보았다. 부써 역시 1527년 이래로 쌍무적 언약을 받아들였다고 볼 때, 라인강을 중심으로 독일 지역에서는 인간의 반응에 따라서 믿음의 창출되고 언약이 효과를 발휘한다는 언약 사상이 널리 퍼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초기 개혁자들은 칼빈과 같이 하나님은 선택자들을 구원하시고 일방적이며 단독적인 행동을 하신다는 점에서 편무적 언약에 동조하였다.


언약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위대한 구속의 은혜, 즉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와 성령에 의한 성화와 동의어이다. 인간의 행위를 의롭다고 여겨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믿을 수 있는 것은 언약적인 혜택이라는 빛 가운데서 성도들이 하나님께로 그 행위를 가져왔을 때에 주어진다고 칼빈은 믿는다. 복음의 약속들과 율법의 약속들은 일치한다. 이것은 인간의 행위가 칭의를 얻는 공로가 된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들을 주셔서 선행에 대해서 상급을 잊지 않으신다는 점을 강조하는 말이다.

칼빈은 언약 사상을 율법의 제 3용법으로, 기도 응답에의 확신, 성도들의 위로, 그리고 회개에도 활용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예정론, 교회론, 성례에서도 역시 언약이 매우 중요하다.


- 하이델베르크 요리 문답의 언약 신학

올레비아누스는 언약 신학의 발전에 획기전이 전기를 이룩하는 업적을 남겼는데, 그는 발전적으로 계시된 하나의 은혜언약을 가르쳤을 뿐만 아니라, 이 언약이 하나님과 그리스도 사이에 맺어졌음을 가르쳤다. 우리의 대표이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선택받은 자들과 맺어진 것이다. 그는 두 가지 중요한 언약이 있음을 설명하였다. 첫째는 구원의 언약이 영원한 삼위 내의 약속이라는 것이요, 둘째는 타락 전에 아담과 맺은 행위언약이라는 것이다. 그는 은혜 언약, 영원 언약, 행위 언약이라는 세가지 언약을 언약 신학의 기초이자 핵심으로 풀이하였다.


- 롤록의 언약 신학

로버트 롤록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거나 행동하신 것 전부 다 언약의 방식으로 하신다고 그르쳤다. 그는 타락 이전의 행위 언약에 대해서 명쾌히 밝히고자 노력하였다.


대표 언약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언약 신학은 매우 논리적이고 정확성을 기하는 다른 내용이 첨가되고 발전하였다. 언약을 하나님의 약속으로 이해하고, 이를 ‘계약’, 어떤 것에 대한 양편의 같은 합의라고 생각하였다. 은혜 언약에서 구별되는 행위 언약은 독립적으로 다루게 되었다.

대표 언약설에 의하면, 하나님은 아담과 행위 언약을 맺으시고, 인류의 대표적인 머리로 삼으셨다. 그리하여 모세 이전에는 십계명과 같은 역할을 했던 도덕법과 자연법을 영구히 지켜야할 순종의 의무를 갖게 되었다. 아담과 그의 후손들이 타락한 후에 구원의 첫 번째 언약을 통해서는 불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은혜 언약을 세우셔서 그리스도가 율법을 성취하게 하시고 그 불이행에 대해서 속죄케 하는 믿는 자들의 머리로 삼으셨다. 이 두 언약 모두 다 하나님이 제정하신다는 측면에서 ‘일방적’이지만, 인간이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대방으로 참여하는 측면에서는 ‘쌍무적’이다. 모든 사람은 행위 언약의 의무 아래 있으나, 선택된 믿는 자들은 은혜 언약 아래 있다. 그로 인해서 행위 언약의 조항들을 의무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하시는 은혜를 통해서 헌신된 생활이 가능하게 하신다.


요한네스 크케이우스 : 언약신학을 분명하게 제시한 전환점을 제공한 신학자. 그는 타락 이전과 이후에 언약 형식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성에서 나타나고 있다고 보았다. 그는 새 언약의 역사를 세 부분, 혹은 세 경륜으로 구분하였다. 첫 세대는 율법 이전의 시대, 즉 족장들의 가정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나던 시대이다. 다음이 율법의 시대로 양심을 통해서 율법을 준수하도록 하였는데 선지자들과 대표적인 제사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국가적이었다. 세 번째 경륜은 율법 이후의 시대로 그 안에서 그리스도가 나타났으며, 하나님의 나라는 우주적으로 확장되었다. 오늘날 성경 신학에 밝혀진 바와 같은 계시의 점진적 발전을 분명히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구약과 신약에 널리 퍼져 있는 은총의 체계를 밝혔다는 점에서 큰 열매를 거두었다. 코케이우스의 언약 신학이 지닌 문제점도 상당하다는 것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는 은혜 언약의 초기 집행에는 죄가 단지 ‘가리워졌을 뿐이지’ 용서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가르쳤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죄책을 지니고 있다는 법률적 선언을 받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헤르만 윗시우스 : 17세기 언약 신학이 최고 정점에 도달. 그는 언약의 발전과 내용을 풀이하면서 ‘경륜’이라는 용어를 적용하여 보다 종합적인 하나의 체계임을 강조하려 한 것이다. 그는 베자의 스콜라주의적인 ‘높은 칼빈주의’와 ‘대표 언약’ 사상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탁월한 언약 신학자로 손꼽히고 있다.


미국의 존 코튼과 벌케레이 : 초기 이민자들에게 언약 사상 보급

18c 조나단 에드워즈 : ‘대표주의’라기 보다는 새로운 잉글랜드 신학으로 단장, 역사적 소명감을 강조

19c 찰스 핫지 : ‘조직신학’을 통해서 언약 신학과 제네바의 뒤르땡의 신학을 보급

20c 루이스 벌코프 : ‘조직 신학’ 대부분 신학교에서 교과서로 채택, 언약 신학의 영향력 발휘

존 길 : ‘신학의 체계’ 언약 신학의 입장을 견고히 고수하는 하이 칼빈주의자의 결정판

20c 아더 핑크 : 언약신학 관점으로 광범위한 저술 활동



언약의 개념

언약이라는 히브리 단어는 ‘베리트’로 발음 되는 데, 그 뜻은 ‘자르다’이다. 이 단어는 항상 헬라어 성경에서 ‘디아데케’로 번역되었다. 전자가 단독적이요, 일방적이라면, 후자는 쌍무적이다. 다시 말하면, 언약이란 양쪽 사이에 맺은 계약이다. 한 쪽에서 먼저 어떤 조건들을 제시하면, 거기에 부수적이 조항들이 첨가되고 상대방에서 그에 대해 동의함으로써 계약이 성립되는 것이다. 따라서 언약은 기본적으로 쌍무적이요, 조건적이다.


구원 언약은 성경에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다.(시80:3-4; 시2:7-9; 시40:7-9; 히10:5-7)

구원 언약은 영원 전에 맺어졌으며, 이 계획은 하나님의 선택으로 효력을 발휘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이런 일을 하라고 보내셨다. 그리스도는 ‘확실성’을 보장하는 이 언약의 성취자이다(히7:22).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구원 언약은 행위 언약과 매우 긴밀한 관력을 맺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선택받은 자들의 대표적인 우두머리로 삼으셨다. 성령은 증인으로 이 언약에 참여하고 계시고, 이 아들이 감당한 구원 역사를 언약에 참여하도록 선택받은 자들에게 적용할 때 마다 마음을 열어서 거듭나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믿음을 불러 일으키는 역사를 하신다. 루이스 벌코프는 구원의 언약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맺어진 합의라 정의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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