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스가랴

에스겔서와의 연결성 속에서 살펴본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

호리홀리 2015. 2. 18. 14:23

에스겔서와의 연결성 속에서 살펴본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


  제롬은 스가랴서를 구약성경 중 가장 모호한 책이라 부르며 해석의 어려움을 지적하였다. 이러한 어려움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 중의 하나가 스가랴가 전하는 메시아 예언들이다. 구약의 예언서 자체가 주는 어려움과 더불어 메시아 본문 해석의 난제는 해석자에게 메시아 본문을 다룸에서 주저함을 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에도 스가랴서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중요한 예언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신약의 기록들에서 스가랴 9-14장은 구약성경 중 가장 자주 인용되는 본문이며, 메시아의 재림을 기록한 계시록에 미친 영향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스가랴 선지자는 이전 구약성경의 저자들이 선포하는 메시아 예언을 재해석하여 새롭게 적용하면서 이를 포로 후기의 정황 속에서 보다 구체화한다. 그러므로 스가랴서에 나타난 메시아 예언을 다룸에서 스가랴가 이미 선포된 메시아 예언을 어떻게 수용하고 재해석하는지를 살피면서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을 고려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먼저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의 시대적 연결성을 살펴본 후, 두 예언서간의 신학적 관점의 연결성을 다룰 것이다. 이러한 작업은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을 이해하는 데 준비 과정이 된다. 이를 바탕으로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에 나타난 메시아 예언의 연결성을 논하면서 스가랴 선지자가 선포하는 메시아의 모습을 추적할 것이다.


1).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의 시대적 연결성

  에스겔은 주전 597년경에 여호야긴 왕과 더불어 바벨론으로 끌려간 지 5년이 되는 해에 수레를 타고 나타난 여호와의 영광을 본 이상으로 시작한다. 에스겔서에서 언급하는 연도들에 따르면 에스겔 선지자가 593년(겔1:2)에서 571년(겔 29:17)까지 여호와의 말씀을 받고 선포하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포로지로 끌려갔으며 포로지에서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을 접하게 된다(겔 24:25-27; 33:21-22).


예루살렘 멸망이 있기 전(586년)까지 에스겔의 메시지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심판에 집중하다가 예루살렘 멸망을 계기로 그의 메시지는 예루살렘의 회복으로 전환된다. 에스겔이 지적하는 유다의 죄악은 여호와께 대한 배교와 패역으로 요약 될 수 있다(참고 겔 20:1-44). 유다의 배교와 패역은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 그리고 바벨론 포로라는 심판의 결과를 낳게 되었고 이를 경험하는 유다 백성은 심각한 신학적 충격에 빠지게 된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벌어지는 가증한 행위들로 여호와의 영광은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게 되고(겔 8-11장), 이것은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 성전 파괴는 당연하게 하였고 유다 백성을 약속의 땅에서 추방하여 열국 속으로 흩어지게 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이것은 바벨론의 신인 말둑(Marduk)에 의해 예루살렘의 신인 여호와가 패배한 모습으로 보이게 되고 여호와의 명예가 실추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이것은 유다 백성에게 다윗 왕조의 멸망과 함께 심각한 신학적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의 심판이 성취된 후 에스겔은 이 백성에게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을 본격적으로 선포한다(겔 34-48장).


  고레스 왕 원년인 주전 538년에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는 왕의 칙령이 내려지자 많은 수는 아니지만 성전건축에 대한 소망을 갖고 고국에돌아온다. 돌아온 이들은 에스겔의 회복의 성취를 갈망하였겠지만 실제 그들의 정황은 쉽게 성취를 경험하지 못하게 한다(참고, 에스라 4장). 이들이 귀환 초기에 시작하였던 회복 사역은 중단되고 회복의 때가 그들의 세대에 속하지 않았다는 결론 속에 지내게 된다(참고, 학 1:2).

이러한 정황 속에서 등장하여 회복 성취를 선포하는 선지자가 학개와 스가랴다. 이들은 회복이 성취되는 시기인 포로기 이후의 시대를 맞이하여 이미 선포된 회복의 성취적 측면을 다루게 된다. 하지만 고레스의 칙령과 함께 이스라엘의 회복이 시작되었는데도 완전한 회복을 경험하지 못하는 포로 후기 백성의 문제와 실패에 직면하게 된다.


이 정황 속에서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는 길과 보다 구체적인 여호와의 회복 계획을 선포하게 되며 이 계획은 성전건축의 중요성과 메시아 예언을 중심으로 전달된다. 회복은 시작되었지만 여전히 포로기와 같은 정황을 그대로 이어가는 백성에게 스가랴는 에스겔 선지자와 밀접한 신학적 연결성을 갖고 그의 회복 메시지를 전개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스가랴와 에스겔 사이에 나타나는 신학적 연결성을 살펴보는 것은 스가랴서의 메시아 예언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2).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의 신학적 관점의 연결성

  에스겔의 신학적 관점은 스가랴의 회복의 틀을 제공하며 이러한 연관성은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에서 구체적으로 발견된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선포되는 내용 중 중요한 주제는 그의 백성 중에서뿐만 아니라 열국 중에서 실추된 여호와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에스겔서에는 여호와께서 “나의 이름을 위하여”라는 표현과 함께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회복을 이루실 것을 선포한다. 즉,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심판하기 위해 사용한 열국을 친히 심판하여 그의 백성을 다시 약속의 땅으로 모으실 것이며, 그들을 정결케 해 신정 통치가 실현될 그의 나라를 친히 세우실 것이다. 따라서 에스겔 선지자가 제시하는 회복에 대한 신학적 관점은 이 중심 주제를 통하여 드러난다. 에스겔이 선포하는 메시아 예언 역시 이러한 신학적 관점 속에서 그 특징을 나타낸다.


  포로기의 정황 속에서 선포하는 에스겔의 메시아 예언은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첫째, 에스겔이 예언하는 메시아는 여호와의 강력한 왕권과 권위 아래에 있는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둘째, 메시야는 이스라엘의 회복 사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 회복의 주도권은 여호와께 있으며 에스겔의 메시아는 우주적 통치나 권력을 행사하여 이스라엘의 회복을 이루는 인물로 묘사되지 않는다.

셋째, 그런데도 메시야의 임재는 여호와의 신실하심과 통치를 확언해 주며, 특히 여호와의 임재를 보증하는 역할을 한다.

넷째, 에스겔의 메시아는 과거의 잘못과 실패를 역전시키는 과정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즉, 과거 지도자의 실패를 회복시키고 역전시키는 대체 인물로 소개되고 있다.

다섯째, 에스겔이 예언하는 메시아는 다윗의 후손으로 제사장들과 협력하여 올바른 예배를 회복할 것이다. 에스겔서 40-48장에서 메시아의 제의적 위치와 역할이 구체적으로 표시되며 제의에 필요한 제물을 제공하고 예배 의식을 주도하는, 예배 회복의 중요한 인물로 제시되고 있다.


  에스겔은 회복 사역에서 여호와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하면서 또한 이에 축을 이루는 여호와의 약속과 인간의 책임과 의무 사이의 긴장을 강조한다. 후자의 측면에서 인간의 소홀함이 심판의 근거가 되었으며(참고 겔 18장), 회복의 성취에서 인간 책임과 의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에스겔의 성전 환상의 내용이다(참고 겔 40-48장), 성전 환상에서 에스겔은 이미 세워진 성전을 둘러보는 것을 통해 여호와의 약속의 성취를 드러내 주며 성전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배와 제사 규정을 통해 인간의 책임과 의무의 중요성을 지적해 준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갖고 있는 계획의 이러한 신학적 관점(여호와의 주도적 사역과 인간의 책임과 의무)은 포로 후기 선지자들의 회복에서도 여전히 반영되고 있다.


  에스겔이 바라보는 이스라엘 회복 공동체는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예배공동체다. 성전과 예배의 회복은 이스라엘의 회복에서 중대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에스겔이 전하는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예배와 성전의 회복이다(참고, 겔 20;39-44; 36:24-31; 37:26-28; 40-48장).

이스라엘의 회복을 바라보는 에스겔의 이러한 신학적 관점은 포로 후기의 학개와 스가랴의 예언에서 그대로 이어진다. 성전건축과 회복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학개와 스가랴서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이러한 연결성을 보여 주는 것이다.


3) 에스겔서와 스가랴서에 나타난 메시아 예언의 연결성

  스가랴 1-14장은 두 개의 큰 단락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 단락인 스가랴 1-8장은 보다 임박한 미래의 회복 공동체를 이상과 환상의 말씀을 통해 바라보고 있다. 이 단락의 주제는 네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우주적 심판을 통한 열방의 심판과 예루살렘의 회복(슥 1:7-21; 6:1-8), 두 번째로, 하나님의 개입과 예루살렘의 정결(학 2:1-13; 5:1-11), 세 번째로, 대제사장과 지도자의 회복(슥 3:1-10; 4:1-14; 6:9-15), 네 번째로, 정의와 다가올 축복(슥 7:1-8:23).


  두 번째 단락인 스가랴 9-14장은 미래적, 묵시적 예언을 통해 마지막 날(“그날”)에 성취 될 하나님의 나라에 집중한다. 스가랴서 전체를 볼 때 포로 후기의 이스라엘 회복과 더불어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를 함께 그려 주고 있다. 따라서 이 흐름과 함께 등장하는 메시아 예언은 자연스럽게 메시아의 초림과 재림에 대한 예언을 함께 담게 된다.


  스가랴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오실 메시아를 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하고 있다. 하나는 직분의 측면이며 다른 하나는 사역의 측면이다. 직분의 측면에서 스가랴가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제사장, 왕과 목자다. 사역의 측면에서 스가랴는 메시아가 직분과 관련된 사역을 감당할 것을 선포한다.


⑴ 제사장과 왕이신 메시아(슥 3:8-10; 4:11-14; 6:9-15)

  스가랴는 6:9-15에서 메시아를 제사장과 왕의 직분을 통합하는 다윗의 후손으로 예언한다. 스가랴는 스바냐의 아들 요시아의 집에 가서 바벨론에서 온 자들에게서 금과 은을 취하여 면류관을 만든다(6:9-11). 그리고 이 관을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머리에 씌운 후, ‘순’에 대한 예언을 전하면서 메시아 예언을 선포한다(12-13절). 성전을 건축하는 인물이 바로 이 ‘순’이며 이 예 언은 오실 메시아의 정체성과 사역을 다룬다. 스가랴가 선포하는 ‘순’은 다윗의 후손을 의미 하며(슥 6:12, 참고 사 4:2; 렘 23:3-5; 33:14-26; 겔 17:22-24), 그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것이며, 영광을 얻고 왕의 보좌에 앉아 통치권을 행사할 것이다(슥 6:13).


메시아 안에서 제사장직과 왕권이 통합되는 것은 스가랴만의 독특한 예언이 아니다. 시편 110:4은 이미 메시아가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 될 것을 선포하였다.


  스가랴 6장의 “순” 라고 불리는 다윗 후손이 제사장직과 왕권을 왕의 보좌에 앉아 통합하리라는 해석은 스가랴 3-4장의 예언과 함께 살필 때 더욱 분명해진다. 스가랴 3장은 사탄(“고소자”)이 더러운 옷을 입고 있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여호와 앞에서 대적하는 장면을 스가랴가 목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절). 여호와의 명령에 의해 여호수아는 더러운 옷을 벗어 버리고 대신에 아름다운 옷을 입고 정한 관을 쓰게 된다(4-5절). 여호수아가 정결케 되는 사건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정결케 됨에 대한 전조다.


여호와의 도와 율례를 준행할 때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집(“내 집”)과 여호와의 뜰(“내 뜰”)을 지킬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된다. 더 나아가 죄 사함을 입어 정결하게 된 여호수아는 그의 동료들과 함께 예표의 사람들이 되어 여호와의 종(“내 종”)인 “순”이 날 것을 보증하는 역할을 감당한다. 9절에서 언급하는 돌은 성전이 세워질 기초석이라기보다는 4:7에 나오는 머릿돌과 연관하여 고려할 수 있다. 즉, 이 돌은 성전건축의 완성을 확증하는 증표가 되는 머릿돌을 의미하며 성전완성을 통한 죄 사함과 평안을 이루는 데 정결케 된 제사장과 여호와의 종 ‘순’의 중요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가랴는 3장에서 이미 제사장과 다윗의 후손으로 올 메시아(“순”)의 중요한 관계를 언급하면서 6장에서의 통합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과정은 4장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순금 등대와 이 등대 곁에 있는 두 감람나무의 이상을 통해 스가랴는 성전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축될 것(4:6)과 이 성전건축에서 다윗의 후손인 스룹바벨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4:9)을 선포한다. 스가랴의 이상에 등장하는 순금 등대에 대한 여러 가지 해석이 있지만 이것이 성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이 등대가 계속 불을 밝힐 수 있도록 기름을 내는 두 감람나무의 역할은 성전과 관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두 감람나무가 “기름 발리운 자 둘”이라는 14절의 설명을 볼 때 이 감람나무 중 하나는 성전 예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대제사장 여호수아로 해석 될 수 있다.


두 감람나무는 순금 등대  (“성전”)에 금 기름을 제공하며 “온 세상의 주”를 섬기는 사역을 감당한다. 즉, 정치적 지도자와 종교적 지도자가 같은 위치에서 성전건축 과업과 성전을 이끌어 갈 하나님의 원동력을 공급하는 통로가 되리라는 것이다. 이들은 여호와의 신에 의해 건축된 성전(슥 4:6)을 유지하고 섬기는 역할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과 성전의 회복에서 여호와의 주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에스겔의 신학적 관점과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또한 성전 건축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약속으로 완성을 보증하는 학개의 예언과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참고, 학 2:5). 성전을 중심으로 한 이들의 상호 보완적 역할이 6장에서는 메시아 안에서 통합되는 것이다.


  제사장과 왕인 메시아 예언을 정리하면, 정결하게 된 대제사장이 여호와에 의해 세워지고, 이것은 성전 예배의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3장). 이 대제사장은 왕과 함께 성전 예배를 유지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며(4장), 결국 왕의 보좌에 앉게 되는 다윗의 후손(“순”)안에서 제사장직과 왕권이 통합될 것이다. 스가랴는 이 메시아를 통해 이스라엘 회복 공동체가 종교적, 정치적 질서를 새롭게 갖출 것을 선포하는 것이다.


   회복 공동체에서 왕과 제사장의 협력 및 중요한 역할은 이미 예레미야의 예언(렘 33:14-18)에서 강조되었다.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가 나서 공평과 정의를 실행할 것(렘 33:15)과 여호와 앞에서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않을 것(렘(33:18)을 예레미야 선지자는 포로기 이전에 선포하였다. 포로기가 되어서는 에스겔 선지자가 그의 성전 환상(겔 40-48장)에 이들의 역할과 중요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같은 맥락에서 포로 후기에 스가랴는 제사장과 왕의 역할을 강조하였을 뿐만 아니라 메시아 안에서 이 두 직분이 통합될 것을 예언한다. 신약의 히브리서 저자는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논증한다(참고 히 7:1-28; 8:1).


  스가랴는 9:9-10에서 왕이신 메시아의 모습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시는 왕은 시온과 예루살렘의 기쁨의 근거가 된다(슥 9:9, 참고 마 21:1-11; 막 11:1-11; 눅 19:28-40; 요 12:12-19). 겸손한 왕의 모습이지만 이 왕은 우주적 평화를 선포하고 우주적 정권을 가진다.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그의 정권은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 9:10).

두굿(Duguid)이 지적하는 바와 같이 시편 72편을 이 예언의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저가 바다에서부터 바다까지와 강에서부터 땅 끝까지 다스리라”(시 72:8). 이 통치의 특징은 공의(슥 9:9; 시 72:3)이며 그 결과는 우주적 평화와 구원이다(슥 9:9; 시 72:4)


   에스겔이 바라보는 회복이 이스라엘 안에만 한정되는 반면 스가랴는 우주적 회복의 소망 속에서 왕이신 메시아의 모습을 예언하고 있다. 겸손한 모습을 하고 구원을 얻어 등장하는 메시아지만 그는 이방인들과 열방에 화평을 전하게 된다. 이러한 메시아 사역의 우주적 측면을 6:15의 성전건축에 관한 예언에서 이미 암시된 바다(“먼 데 사람이 와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리니”, 참고 슥 4:14; 8:20-23).


  결론적으로 스가랴가 3장, 4장, 6장, 9장에서 제시하는 메시아는 제사장직과 왕권을 통합하는 다윗의 후손이며, 그의 위치와 역할은 예배 공동체 회복에 집중하고 있는 포로기와 포로 후기 선지자들의 신학적 관점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메시아가 하나님 백성의 회복 사역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지만 그의 임재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증하고 이스라엘의 회복을 상징하며, 더 나아가 예배 공동체를 유지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⑵ 선한 목자이신 메시야(슥 10:1-12; 11:4-17)

  목자의 이미지로 메시아를 예언하는 것은 스가랴에게서 처음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이 주제는 이미 이전 선지자들을 통해 언급되었던 것이며 구약의 메시지에서 자주 등장하는 비유다. 목자의 이미지가 지도자를 비유적으로 묘사하는 것임을 구약성경과 고대 근동의 문헌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는 바다. 특히 에스겔 34장은 스가랴가 전하는 목자이신 메시아 예언의 배경이 된다.

  스가랴 10:2는 목자가 없어서 백성이 양떼와 같이 유리하며 곤고를 당하고 있음을 묘사한다. 이는 실제적으로 목자의 부재 문제가 아니라 목자는 있지만 양떼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신실한 목자의 부재 문제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친히 신실하지 못한 목자들과 숫염소들에게 책임을 묻고 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슥 10:3), 여호와께서 친히 그의 백성을 돌보실 것이다(슥 10:6-12). 스가랴 10:4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그의 양떼를 위해 불의한 목자들을 대신할 지도자를 보내실 것을 약속하시는데, 이 지도자가 모퉁이 돌, 말뚝, 싸우는 활, 권세 잡은 자로 묘사되고 있다.


불의한 목자들을 대체할 지도자가 여호와 때문에 세움을 얻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에게로”라는 표현의 계속적인 반복을 통해 강조된다. 이러한 문제와 해결 패턴은 에스겔 34장이 이미 선포하고 있는 바다.

①목자들의 실패, ②여호와의 심판, ③여호와의 회복 사역, ④선한 목자를 세우심. 에스겔 34:1-6은 불의한 목자들로 인한 백성의 고통을 서술하며 7-16절은 여호와께서 친히 그의 백성의 목자가 되어 돌보실 것을 약속한다. 불의한 목자들은 결국 여호와의 심판 대상이 된다(겔 34:18-22).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친히 심판을 행하실 것이다.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목자로 세워 그의 회복 약속을 보증하신다(겔 34:23-24).


  스가랴는 10장에서 언급한 선한 목자의 공급을 11장에서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어 주고 있다. 하지만 11장의 목자 비유를 통해 에스겔 34장과 상반되는 예언을 추가하면서 12장과 13장에 등장하는 찌름을 당하여 죽음을 겪게 되는 목자에 대한 예언을 예비한다.


스가랴 11장에서 여호와가 양떼를 위해 두 목자를 세우시는 것을 볼 수 있다. 첫째, 여호와는 죽임을 당할 양떼를 먹일 목자를 세우신다(슥 11:4). 스가랴 선지자가 이 목자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그들의 양떼를 불쌍히 여기거나 돌보지 않는 정황이다(11:5). 또한 여호와께서도 이들을 불쌍히 여기시지 않고 이웃의 손과 임금의 손에 붙이신다(11:6). 이 정황 속에서 스가랴는 목자가 되어 “은총”이라는 막대기와 “연락”이라는 막대기로 양떼를 먹이며 양떼 안에 은총과 연합이 있기를 기대한다(11:7). 그러나 목자는 양떼를 싫어하게 되고 양떼도 이 목자를 미워하게 된다(11:8). 목자는 양떼를 그들의 불행 가운데 그대로 방치하면서 여호와께서 양떼를 불쌍히 여기시지 않음을 반영한다. 결국 목자는 두 막대기를 자르고, 양떼는 그의 고가 은 삼십을 주고 목자의 관계를 세우시는데, 이 목자는 양떼를 돌보기보다는 강포를 행한다(11:15-17).


이 목자가 실패한 목자들의 행위를 그대로 행하므로 양떼가 고통을 당하게 되겠지만, 결국 양떼를 버린 이 못된 목자는 심판 대상이 된다. 이 못된 목자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 선언은 스가랴 10장과 에스겔 34장에서 선포하는 선한 목자의 등장을 다시 소망하게 한다. 하지만 이 소망은 찌름을 당하여 죽게 되는 목자를 통해서 성취된다(슥 12:10; 13:7-9). 스가랴는 12장과 13장을 통해 10장과 11장에서 묘사하고 있는 선한 목자가 고난 받는 종 메시아임을 분명히 드러내 준다.


⑶ 찌름과 칼로 침략을 당하는 메시아(슥 12:10; 13:7-9)

  스가랴 12:1-9는 열국이 미래의 한 날에 예루살렘을 파괴하려고 모일 때 여호와께서 친히 그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예루살렘을 보호하실 것을 선포한다. 이날에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한다(12:10). 결과는 대대적인 애통과 통곡이다(12:11-14). 이것은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개혁한글)” 그를 찌른 행위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애통과 통곡으로 보인다(12:10). 이들이 찌른 행위를 묘사는 동사(다카르)는 칼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적인 상처를 내는 행위를 의미한다.


개역한글 성경에서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로 번역하고 있는 맛소라 히브리어 원문(BHS)을 직역하면 “그들이 그 찌른바 나를 바라보고”라고 번역된다. 이와 같이 맛소라 본문을 따라 번역할 경우, 그들이 찌른 자는 여호와(“나를”)를 의미하게 된다. 즉, 그들은 여호와께 치명적인 상처를 입힌 것(이것은 추상적이거나 비유적이라기보다는 실제적인 상처를 의미함)에 애통하며 용서를 구하는 회개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친히 이 고통을 경험하심으로써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해 회개하고 죄 사함에 이르게 된다(참고, 슥 13:1). 여기서 언급하는 찌름을 당한 자는 스가랴서의 흐름을 고려할 때, 11:4-14에 나타나는 양떼에게 거절당하는 목자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여호와와 목자가 동일시되는 대목이다. 이 목자가 13:7에서는 칼로 침을 당하는 자로 묘사되며 여호와의 짝된 자(“내짝된 자”)로 불린다.


따라서 여호와는 이 목자의 거절당함(11:4-14), 찌름을 당함(12:10), 또한 칼로 침을 당함(13:7)을 통하여 이 고통에 참여하기에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의 거민이 찌른 자가 여호와라고 하는 것이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이사야 53장에서 말하는 고난 받는 종을 통해 여호와는 이 고통에 참여하시며, 스가랴 12:10의 찌름을 당한 자의 모습을 신약의 기록자들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죽음을 맞이한 예수님께 적용하고 있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참고 요 19:37; 1:7).


스가랴 12장에서 언급하는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의 애통과 통곡은 단순한 괴로움의 표현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이들의 애통과 통곡이 13:1에서 죄 사함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스가랴 12:10에서 언급하는 찌름을 당한 자는 13:7에서는 칼로 침을 당하는 목자로 묘사된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치는 행위가 여호와에 의해 행하여진다. 즉, 여호와께서 칼을 휘두르시고 이 칼로 그의 목자(“내 목자”)를 치신다. 이것은 이사야 53;10에서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라는 표현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내 짝 된 자”라는 표현은 이 목자가 신성을 여호와와 함께 나누고 있는 자를 암시하며 “내 종”이라는 표현(참고, 슥 3;8)과도 평행을 이룬다. 이 목자가 칼로 침을 당할 때 양떼가 흩어짐과 심판을 경험하게 된다(슥 13:7-8, 참고 단 9:26).


그러나 삼분의 일은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같이 시험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여호와를 그들의 하나님(“내 하나님”)이라고 부를 것이다. 즉,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목자의 죽음의 궁극적인 목적은 여호와와 그의 백성 간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다(“내 백성”과 “내 하나님”). 마태복음 26:31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그를 버리게 되는 것을 이 예언의 성취로 해석한다.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라 기록된바 내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스가랴는 에스겔의 선한 목자이시며 제의적 역할을 감당하시는 메시아의 이미지(겔 34:23-31; 37:24; 40-48장)를 이사야의 고난 받는 종의 이미지(사 53장)와 하나로 묶어 찌름과 칼로 침을 당하는 목자(슥 12:10; 13:7)로 묵시적 예언을 통해 전하고 있다. 이것은 여호와께서 선택하신 그의 백성과의 언약 관계를 회복하시는 방법이며 창세기 3:15에서 언급하는 여인의 후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예언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음을 증거 한다. “저가 저 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할 필요가 없으니 이는 저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음이니라”(히 8:27). 또한 복음서 저자들은 스가랴의 메시아예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보았던 것이다.


요한복음 19:34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창에 옆구리를 찔리셨을 때 물과 피가 흐른 것을 기록하며 예수님의 확실한 죽음을 전한다. 하지만 37절에서 저자가 스가랴 12:10을 인용하는 것을 볼 때 이 물과 피는 아마도 두굿이 지적한 것처럼 스가랴 13:1에서 언급하는 속죄하는 물과 칼로 침을 당하여 죽음에 이를 때 흘리게 되는 피를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속죄와 언약 관계 회복이 동시에 이루어졌음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가랴 10-13장의 흐름을 목자를 중심으로 정리하면, 10장에서 여호와는 불의한 목자들을 대체할 그의 목자를 제공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실제로 제공하시는데, 양떼는 이 목자를 거부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다(슥 11:4-14). 하지만 여호와는 이들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그들의 행위에 대해 애곡하고 회개에 이르게 한다(슥 12:10). 양떼가(칼로) 찌른 목자(슥 12:10)는 여호와께서 의도하신 칼로 치심(슥 13:7)의 대상이며, 이 목자의 죽음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남은 자들(“삼분지 일”)의 언약 관계가 회복되며 죄 사함이 이루어진다(참고 슥 13:1).


(4) 에스겔서와의 연결성 속에서 살펴본 스가랴의 메시아 예언 결론

  포로기의 암울한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에게 에스겔 선지자는 새로운 다윗인 선한 목자가 등장하여 여호와의 임재와 성전회복을 보증할 것을 선포하였으며 여호와께서 세우신 성전에서 예배 공동체가 메시아와 제사장의 협력을 통해 유지될 것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에스겔 선지자의 회복 예언을 신뢰하고 돌아온 백성은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회복에 대한 소망을 잃고 자신들의 삶에만 열중하며 온전한 회복을 경험하지 못한다. 이에 스가랴 선지자는 회복을 위한 여호와의 적극적인 개입과 사역을 강조하고 에스겔 선지자가 언급하는 메시아 이미지와 사역을 반복하면서 에스겔의 회복이 그들에게 여전히 유효함을 일깨워 준다.


여호와께서 회복의 길을 마련하셨지만 이를 거부하고 배척한 백성이 신실하지 못한 목자 아래에서 심판의 시기를 겪게 되지만 결국 여호와께서는 그가 세우신 목자를 통하여 죽음의 고통을 감당하시어 그의 우주적 나라를 온전히 이루실 것(슥 14:8-11)과 열국이 그를 경배할 것을 약속하신다(슥 14:16-21). 스가랴가 회복을 위한 여호와의 적극적인 개입과 사역을 여전히 강조하는 것은 진정한 이스라엘의 회복이 여호와께만 있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여호와의 약속에 대해 백성이 취하여야 할 반응은 그들의 악한 행위를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나 여호와가 무리의 열조에게 심히 진노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너는 무리에게 고하기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처럼 이르시되 너희는 내게로 돌아오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나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슥 1:2-3). 스가랴의 권면을 듣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는 자는 그가 세우신 목자의 죽음을 통하여 이루실 영원한 나라를 얻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지 않는 자들은 ”열국 사람을 치시는 재앙“을 경험할 것이다(슥 14:17-19).


에스겔 선지자가 회복에 대한 메시지를 강조하면서 포로기의 백성에게 소망과 기대를 갖게한 반면, 스가랴 선지자는 회복의 때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회복의 길을 찾지 못하는 자들에게 확실한 선택의 도전을 전하는 것이다. 이는 회복의 때를 살아가면서도 여전히 회복을 누리지 못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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