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이사야서의 언약적해석

이사야서22:1-25,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호리홀리 2015. 2. 12. 13:17

'이상 골짜기' 곧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 (22:1-25)

 

'이상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환락으로 떠들던 성읍에 결박과 죽음의 재앙이 임할 것이다.

 

 장기간의 포위 공격 동안에 성을 빠져나가 도망하는 자들은 발견되는 대로 잡히거나 살상을 당할 것이다. 이 일을 미리 보는 선지자는 위로받지 못할 슬픔에 빠진다 (이사야22:1-4).

 성벽을 무너뜨리고 산을 울리며 진격하는 군대는 엘람과 키르 사람들을 주력 부대로 하는 앗시리아 대군이 될 것이다.

 이들은 예루살렘 주변 골짜기를 병거로 가득 채우고, 성문 앞에는 마병을 주둔시킨다 (이사야22:5-7).

 

적군은 '유다의 휘장'을 벗긴다 (이사야22:8). '유다의 휘장'이란 표현은 아마도 예루살렘으로 이끄는 유다 땅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엘라 골짜기에 위치한 요새성 '아세카'를 가리키든지, 아니면 아세카 근처의 중요한 거점인 라기스를 가리킬 것이다 (이사야36:2 참조). 라기스(또는, 아세카)는 이미 적군의 말발굽 아래 짓밟혔다. 슈펠라(유다 산지와 블레셋 평지 사이에 위치한 구릉 지대)에 자리잡은 라기스와 아세카는 유다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이러한 성들의 함락은 곧 유다의 수도 예루살렘의 위험을 말해주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길목을 지켜주는 슈펠라 요새들이 하나 둘 무너지면서, 예루살렘 성 안의 유다 조정과 백성은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도리어 자기들의 국방력을 의존하며, 군사적 방어 태세에만 만전을 기한다 (이사야22:8-11). '수풀 궁'은 솔로몬이 자기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 안에 지은 '레바논 수풀 궁'을 가리킨다 (왕상7:1-8). 솔로몬은 이 궁전을 무기고로도 사용하였다 (왕상10:16-17). 이사야22:8은 적군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접근해오자 성 안의 사람들이 무기고에서 무기를 꺼내어 준비를 하는 모습을 묘사한다.

 

그 다음 단계의 방어 준비는 다윗성을 견고히 수축하는 일이다. 성벽의 무너진 데를 조사하고, 더불어 성 안의 집들을 계수한다. 일부 집을 헐어 그 돌로 허물어진 성벽을 수축한다. 그리고 포위에 대비하여 성 안에 수원을 확보한다. 이들은 자기들에게 임하는 재앙이 야웨에 의한 것임을 깨닫지도 못하고, 그에게 돌아오지도 않는다 (이사야22:9-11).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재앙을 가져오는 목적은 그들의 회개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재앙에 빠져 있으면서도 회개는 커녕 도리어 더욱 방자하게 '내일은 끝장이니 오늘 실컷 먹고 마시고 놀아보자'는 식의 쾌락 주의와 허무 주의에 빠지는 자들이 있다. 이런 자들의 죄악은 속함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이사야22:12-14).

 

이사야22:1-14의 메시지는 히스기야 왕 때 있었던 앗시리아의 침입과 조화를 이룬다. 이에 대한 자세한 고찰은 이사야 36-38장에서 있을 것이다. 이제 야웨의 말씀은 예루살렘에 대한 일반적인 경고에서 그 안에 사는 한 고위 관리에 관한 얘기로 옮겨간다. 국가적 또는 사회적 재난은 개개인에게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법이다. 그러나 이러한 재난 중에도 국가나 사회 전체, 즉 백성에 대한 염려보다는 개인의 영달과 이익에만 집착하는 고관들이 있다. 이러한 사람이야 말로, 자기 백성이 구원을 받는 중에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예로서 셉나라고 하는 사람이 언급되어 있다 (이사야22:15-19).

 

셉나는 왕궁 안에서 일을 맡은 고관이었다. 그는 아직 살아있는 동안 돈을 들여 자기의 무덤을 준비하고 있었다. 옛날 유다의 고관들이나 부자들은 살아 생전에 자신과 가족의 무덤을 미리 파 두어 준비하는 예가 있었다. 당시의 무덤 형태는 동굴을 넓게 파고 그 안에 침상 모양으로 시신을 눕혀놓을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돈이 많거나 능력 있는 사람일 수록 무덤 내부 공간은 넓어지고, 침상의 수도 많아지게 마련이었다. 그리고 예루살렘 거민일 경우 성에서 가까운 동쪽 언덕, 그것도 아래 골짜기 쪽이 아닌 언덕 높은 곳은 명당의 조건으로서 충분한 곳이다. 지금도 예루살렘 일대에는 오랜 옛날의 무덤들이 도처에 남아 있다. 더욱이 다윗성 맞은편의 언덕에 파여진 몇몇 무덤은 셉나의 무덤을 연상시켜주는 적절한 예가 될 것이다.

 

셉나의 죄악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는 없으나, 그는 자기의 권세를 믿고 몹시 이기적이고 거만하게 행동했으며, 게다가 '다윗 왕조에 수치를 끼치는 사람'이었다. 하나님은 이러한 죄인을 자기 무덤에 편히 쉬도록 허락하지 아니하신다. 그는 저주를 받아 자기 관직에서 쫒겨나고 멀리 붙잡혀가서 객사로 인생을 마칠 것이다.

 

하나님은 셉나의 관직과 그가 누리던 모든 권세와 영화를 엘리아김에게 물려주실 것이다. 엘리아김이 행사할 권한과 능력은 거의 절대적인 것이어서, 그는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위에 '아버지'와 같은 존재가 될 것이요, 다윗 왕조의 비호 아래 마음껏 권세를 행사할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기 온 집안의 자랑거리가 될 것이며, 그의 모든 자손과 온갖 집안 사람들까지도 그를 의존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22:20-24).

 

이사야22:25의 '단단한 곳에 박힌 말뚝'은 앞의 23절에서 엘리아김을 가리킨 것으로 보아, 여기서도 그를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5절은 엘리아김 역시 셉나처럼 결국은 자기의 권좌에서 떨어질 것을 말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25절이 20-24절에 연결된 내용이 아니요 15-19절의 연속이라면 (이 경우 20-24절은 마치 괄호 안에 들어 있는 것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25절의 '단단한 곳에 박힌 말뚝'은, 23절에서와는 달리 셉나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20절과 25절 첫머리에 '그 날에'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20-24절과 25절이 대등하게 셉나의 파멸의 날과 관련된 일들을 기술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 경우 엘리아김에게는 전혀 저주의 말씀이 없고, 오직 셉나에게만 저주가 있을 뿐이다. 참고적으로 셉나와 엘리아김은 히스기야 왕의 신하로서 성경 몇몇 곳에서 나란히 등장한다 (이사야36:3, 11, 22; 37:2; 왕하18:18, 26, 37; 19:2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