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이사야서

이사야9장,변경이 받을 축복

호리홀리 2015. 1. 28. 12:36

9장,변경이 받을 축복

 


 

7:14절의 “임마누엘”의 메시야 예언은 9장에 와서 더욱 구체화된다.

 메시야는 어디서 오시는가?

1절의 “전에 고통 당하던 자”는 스불론,납달리를 가르킨다.

그것은 갈릴리를 가르키고 있다. (1)

 납달리,스불론은 비옥한 땅을 가졌으나 원래 이방인들의 거주지였고 전쟁의 길목에 위치해있는 관계로 늘 수탈의 대상이 되었던 지역이었다. (고대의 전쟁은 현지조달)

 

1절,변방은 늘 멸시를 당한다.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올수 있느냐”(요1:46)라고 했다.

예루살렘은 독선과 폐쇄적 기질이 있었다.

그러나 갈릴리지역은 가난하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이었으나 열린마음이 있었다.

그들은 열린마음 때문에 복음을 쉽게 수용했다.

 

고난과 고통이 점점 커질때 현재적 시각으로 보면 안된다.

미래적 시각으로 볼 때 소망이 생기고 비젼이 생긴다.

 미시적 관점에서만 보면 상처만 파먹다가 지친다.

 컴컴한 동굴에 쪼그리고 앉아 “나는 안되 나는 못해“를 외치고 있지는 않는가?

자기 무덤을 파고 그 속에서 웅크리고 있지는 않는가?

 

9:1-7절의 내용은 과거시제로 쓰여졌다.

 그러나 미래도 벌써 일어난 일로 쓰여지기도 한다.

선지자는 미래를 먼저보고 그 다음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이렇게 선포한다.

 그것을 기대하라

 그것은 확실하다

 여호와께서 이미 그일을 이루셨다. 

그리하여 이사야는 2절의 빛을 8:22절의 흑암과 같이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1절의 고통당하던 자는 2절의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다.

 메시야는 그들에게 빛으로 오신다.

3절은 그로인해 시작되는 하나님나라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의 나라는 창성케되며 즐거움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 

 그의 나라는 멍에와 채찍을 꺽으실 것이다.(4)

 

메시야는 어떻게 오시는가?

6절은 아기로 오신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오실 메시야는 하나님의 아들이며,그의 사역은 정사를 메었다.

즉 십자가사역이다.

 그리고 섬기는 사역이다.

기묘자는 히 “펠레”로서 “경이“로운 하나님을 가르킨다.

 모사는 기묘자와 같이 메시야에 대한 형용적 이름이다.

 모사는 히”요에츠“로서 책략가이다.

 성령을 모사로 표현하기도 한다.

 영존하시는 아버지는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이다.

 

그러므로 7절,다윗언약은 영원하다.

 그리고 하나님의 열심은 반듯이  그 언약을 이루실 것이다.

 


 

9:8-10:4,세상나라와 하나님나라

 


 

세상나라 즉 이스라엘의 멸망원인은

 

첫째,교만이다.(8-12)

하나님의 징계의 의도는 회개였다.

그러나 그들은 끝까지 교만하고 완악했다.(9)

 그들은 말하기를 10절“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끝까지 인간적 노력으로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지도자들의 죄(13-17)

 

셋째,형제를 미워하는 죄(18-21)

 

넷째,사회적불의(10:1-4)

 

북 이스라엘은 10년도 채 남지않았다.

그러나 이미 숨이 끊어져가는 짐승처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서도

 아모스,호세아 선지자의 경고를 듣지 않는다.

이사야는 이러한 현실을 보면서 남쪽 유다는 망하지 않게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결국 이사야 때문에 유다의 멸망은 연기 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민족을 놓고 언약 기도하는 이사야,

 온몸을 둑으로 삼고 막고있는 이사야,

하나님의 나라는 때로는 부정적으로 진행되는 것 같아 보일지라도  이사야같은 역동적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나라를 세워나가신다. 

시대를 탓하거나 환경을 탓하지 말고 지도자를 탓하지도 말고 이 시대의 이사야로 살아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