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11:1-10 ,변함없는 하나님의 사랑

호리홀리 2015. 1. 26. 17:18

롬11:1-10

 


 

1. 서   론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적인 의지의 결과로 주어지는 것인데, 우리가 어떠한 행위를 함으로서나 우리가 원하여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의 결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을 받지 못하고 정죄의 상태에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지만 구원을 거부하는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10장에서 사도는 이점을 과제로 삼아 상세하게 풀어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항상 믿음으로 말미암았고 다른 길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 목적은 현재에도 확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금은 주로 유대인들보다는 이방인들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유대인의 맹목과 그들이 그렇게 자랑하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하는 무능 때문입니다.

 

이제 11장에서 사도는 미래를 바라보며 유대인과 이방인에 관한 하나님의 이 크고 놀라운 목적이 어떻게 영광스럽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유대인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유대인들이 소외되었다면 항상 소외된 채로 있을 것인가? 구원과 관련된 유대인의 끝이 이것인가? 유대인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종결되었는가? 사도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며, 유대인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의 완성을 미리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이 11장의 배경이고 8~10장의 요약입니다.

 


 

2. 전적으로 배제되지 않은 이스라엘(1~4)

 

사도는 이스라엘의 배제가 전적인 배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실 수 있는가?”라고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는 “그럴 수 없느니라”라고 대답합니다.

 

① 자신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씨로서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완전히 관계를 끊지 않으셨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②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라고 덧붙여 말하고 있습니다. ❶ 우리는 여기서 “미리 아신”이라는 단어에서 하나님의 예정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그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셨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❷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애정을 쏟으셨으며 하나님 자신을 위하여 이 민족을 조성하시고 준비하셨습니다. ❸ 아모스 3:2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에게 “너희만 알았다.”고 하시는데,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들에 관해서만 알고 계셨다는 뜻이 아닌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땅의 모든 족속에 관해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들이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❹ 그들은 다른 민족과 다르게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특별한 민족으로 준비하셨으며,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만드셨습니다. ❺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라고 스스로 맹세하셨습니다. ❻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이 민족을 조성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버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뒤집어 버리신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❼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을 보시며,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영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 남은 자에 대한 소망

 

① “나도 이스라엘인이요”라는 이 말은 사도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 그 자체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전적으로 배제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는 의미입니다.

 

② 사도는 다시 “너희는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고 말함으로서 자신이 말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기를 바랍니다.

 

③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이란 열왕기상 19장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❶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홀로 850명의 거짓 선지자와 맞서 싸웠고, 그들을 격퇴시켰습니다. ❷ 이 일이 있을 후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는 의도를 듣고 도망치던 중에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 탄원을 드리고 있는 엘리야를 봅니다. ❸ 그의 기도는 요컨대, “그들은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하나님의 제단을 헐어 버립니다. 이제 저만 남았고 그들은 나까지 죽이려고 위협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 백성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시며, 그들을 왜 벌하지 않으십니까?”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정의를 행하시기를 청했습니다. ❹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라고 지적하셨습니다. ❺ 따라서 사도의 목적은 자신만이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면서 엘리야 시대와 자신의 시대 사이의 유사성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❻ 엘리야 시대에 이스라엘 민족의 배교가 있었지만 남은 자가 7천명이 있었습니다. ❼ 사도는 지금도 정확하게 똑 같다고 말하고 있는 것인데, “나는 이스라엘인이며, 그리스도인이다. 그러나 나 혼자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❽ 엘리야는 자신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잘못된 결론이며, 자신이 구원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자기 혼자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④ 우리가 이 남은 자의 교리로 위로를 얻으면서 “우리는 아무 일도 안 해도 된다.”라는 결론에 도달해서는 안 됩니다. ❶ 결코 그렇지가 않으며, 우리는 다른 사람의 눈을 열어 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❷ 우리는 그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이 그 진리를 믿고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데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4. 그릇된 방법으로 의를 구한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같이 의로워지기를 원하여, 그 의를 열렬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구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얻은 특권자가 있다고 하며, 그들은 택하심을 입은 자라는 것입니다.

 

① 사도는 계속하여 “남은 자들”, 즉 택하심을 입은 사람들과는 구별되는 민족 전체가 완악하여 졌다고 합니다. ❶ 완악한 마음과 보지 못하는 눈 때문에 그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❷ 그들은 혼미한 심령으로 인하여 보고 듣고 이해하는 고도의 기능이 상실되어 무능한 상태에 빠져버린 것입니다. ❸ 이스라엘은 모세와 이사야의 시대에도 그랬듯이, 여전히 복음을 거부하고 있습니다.(사29:10; 신29:4) ❹ 은혜의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들을 제외한 모든 자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 밖에 있다는 것입니다.

 

② 여기서 중요한 것은 “덫”, “올무”, “거치는 것”이 아니라 “보응”이라는 단어입니다. ❶ 보응은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악한 행동에 대한 보답임을 의미합니다. ❷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자신들의 고집과 완고함의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❸ 다윗은 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 유익들이 오히려 그들에게 징계와 방해물이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❹ 밥상은 물질적 축복과 영적인 축복을 상징합니다. ❺ 그런데 다윗은 그들의 악한 상황을 보면서 하나님께 하나님의 축복들을 저주로 바꾸시라고 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③ 본문에서 사도가 우리 앞에 제시하고 있는 원칙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축복들 자체가 우리에게 저주가 된다는 것입니다. ❶ 밥상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물질적 은사와 축복들을 의미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할 수도 있으며, 하나님의 가장 풍요한 축복, 바로 그 축복을 의미합니다. ❷ 두려운 것은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들을 잘못된 방법으로 보거나 또는 남용한다면 그 축복들이 우리에게 저주가 된다는 것입니다.❸ 복음주의 자들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면서 살기보다는 전통에 따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성경 지식을 자랑하지만 성령을 상실했기 때문에, 영적인 풍요뿐만 아니라 물질적인 풍요도 즐기기 때문에 무시당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❹ 오늘날의 물질적 풍요 자체가 타락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저주로 변하는 것처럼 풍요로운 사회가 항상 갖고 있는 위험은 만족하여 게을러지는데 있습니다.

 

④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오직 한 가지 길 밖에 없으니 오직 믿음입니다. ❶ 그러나 이스라엘의 비극은 그들이 “믿음으로 구하지 않은 것입니다. ❷ 만일 우리가 성경을 가지고 있다거나 교인이라거나, 큰 교회에 다니는 것, 또는 자신의 선행에 의지한다면 그는 분명히 유대인들과 같습니다. ❸ 그들은 외인들이며, 눈이 가리어져 있는 자들이며, 구하고 있는 것을 얻지 못하였고, 앞으로도 절대로 얻지 못할 것입니다. ❹ 구원의 길은 오직 하나뿐인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❺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단순한 믿음 외에 다른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⑤ 유대인들의 비극은 바른 방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얻지를 못한 것입니다. ❶ 우리는 이 큰 교훈이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것임도 알았습니다. ❷ 사람은 갓난아기이든, 늙어 죽음의 자리에 있든지 모두가 다 죄인이며,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⑥ 이제 우리는 심판에 의한 완악함 이라는 두 번째 교훈으로 나아갑니다. ❶ 죄는 항상 강퍅함을 낳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는 어떤 일을 처음 할 때는 무척 주저하지만, 그러나 일단 그 일을 하면, 두 번째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것에서 강퍅해지는 과정의 한 부분을 알 수가 있습니다. ❷ 마음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만일 우리가 진리에 순종하고 반응하지 않으면, 진리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강퍅해 질 것입니다. ❸ 죄는 이미 존재하고 있고 그 죄는 전적으로 인간에 의해 만들어 진 것으로서 심판에 의한 완악함의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그 완악함을 확대시키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현미경을 대어서 정상적으로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보이지 않은 일을 확대함으로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⑦ 복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살펴보면, 성경과 수많은 번역서와 모든 종류의 교훈, 복음 적인 노력들을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달라지는 것이 없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❶ 다윗이 “저희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옵소서.”라고 한 말처럼 우리의 밥상이 저주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바로 저주가 되고 있다는 말입니다. 가난은 무서운 것이지만, 풍요는 영적인 의미에서 더욱 위험합니다. 밥상은 매우 자주 우리의 저주가 되고 있습니다. ❷ 우리 중에는 여러 해 동안 부흥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고, 설교하면서, 성도들에게 부흥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강권해 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부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❸ 부흥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우리는 이 교리에 의해 위로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우리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밤에 편안한 잠자리에도 들지 못할 것입니다. ❹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케도 하시고 성령을 거두어 가시기도 하십니다.

 


 

5. 저주의 시편들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시편 69편을 인용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저주 시편들 중의 하나입니다. 저주는 죄인들에게 어떤 악한 일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나님께 표현하는 간절한 열망입니다. 시편에는 이런 종류의 다른 시편들이 있는데, 예를 들어 시58,109,137편이 이런 저주의 시편입니다. 우리가 시편 69편에 대해서 말하고 하는 내용은 그 시편들에도 적용이 됩니다.

 

① 시편 69편은 다윗이 기록했습니다. ❶ 다윗은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비범한 인내심을 가지고 모든 일을 참았던 사람입니다. ❷ 그는 사울 왕을 여러 차례 아주 쉽게 죽일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❸ 그는 사울에 의해 모욕과 속임을 당했어도 그를 향하여 조금도 복수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❹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에 대하여 비통해 했고, 슬퍼할 만큼 관대하고 도량이 넓은 사람입니다. ❺ 압살롬이 왕국을 빼앗아 버리고 그를 죽이려고 했을 때에도 다윗은 그것은 참고 압살롬을 용서해 주라고 했으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너무나도 슬퍼하였습니다.  ❻ 다윗에게 대항하여 싸웠던 아마사가 뉘우쳤을 때에 다윗은 그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격려도 해 주었으며 그의 죽음 앞에서는 슬픔에 잠기고 고통스러워하였습니다. ❼ 따라서 시 69편은 다윗의 악한 복수심의 성품과 관련해서 해석할 수 없는데, 다윗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② 이 저주의 시편들에 나오는 말들은 절대로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❶ 다윗은 개인적인 복수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❷ 다윗이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은 그의 개인적인 고난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대표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대적들이 자신에게 행하고 있는 일입니다. ❸ 다윗은 하나님의 대적들이 하나님에게 행하고 있는 일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❹ 다윗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집과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열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❺ 그러므로 그는 개인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❻ 하나님의 대적들에 해하여 느끼는 것은 절대로 개인적인 것이 아닙니다. ❼ 하나님의 영광과 관련이 있으며 하나님과 공감과 관련이 있습니다.

 

③ 그 예로 시 104편 마지막 부분의 “죄인을 땅에서 소멸하시며 악인을 다시 있지 못하게 하실 지로다.” 그리고 이어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할렐루야”라고 말합니다. ❶ 이 말은 성령 충만하고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고, 창조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완전하심의 비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말입니다. ❷ 이 사람이 이 어두운 면을 바라보며 “이들을 완전히 제거하소서. 그리하여 조화와 완전함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 외에는 아무것도 있지 않게 하소서.”라고 말합니다. ❸ 이 말은 시편 69편 및 유사한 다른 시편들에 나오는 말과 정확하게 동일합니다.

 

④ 시 69편의 말씀은 신적인 영감을 가지고 다윗은 오시기로 예정되어 있는 앞선 전망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❶ 예수님을 거절하는 세계를, 특히 “그를 없이 하소서, 그를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하고 외치는 자들을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❷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예수님을 조롱하면서 야유를 퍼붓는 유대인들을 앞서서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❸ 이것은 복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충만하게 느끼면서 이 일이 일어날 것을 미리 보고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⑤ 우리는 처벌이 취하는 특별한 형태에 의해 실족하지 말아야 합니다. ❶ 심지어 어린아이의 죽음일 지라도 다윗과 같은 옛 사람들을 비평할 자격이 없습니다. 표현의 형식이 달라진 것이지 그 야만성에 관하여는 20세기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더욱 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처벌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의 사랑하시는 아들이 그 고통을 당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