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10:5-10 ,하나님의 구원계획

호리홀리 2015. 1. 26. 17:07

롬10:5-10

 


 

1. 하나님의 분명한 요구

 

유대인들은 분명히 하나님의 목적의 일환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은 복음을 크게 환영하면서 받아들이는데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한 것처럼 보이지만, 유대인들의 불신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은 폐하여지지 않았음을 바울은 말합니다. 또한 이스라엘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다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 속에 내면적인 이스라엘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목적에 들어있다고 하였습니다.바울은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말하게 되었고 그것을 상세하게 확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으면, 그것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은혜로 되어진 일이며,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것을 믿으라고 제안된 복음을 거부하였기 때문인 것이 진리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그 문제를 정교하게 진술해야만 했는데, 이제 10장에서 유대인의 입장에 있어서 이 비극적인 실수를 보다 더 확장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우리가 여기서 지적하는 첫 번째 요점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를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령을 주시는 것이 바로 표준입니다. ❶ 그렇다면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가 있느냐는 것이 관건입니다. ❷ 그것에 대한 분명한 출발점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에 “이것들을 향하는 사람은 그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❸ 하나님의 요구 조건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과 하나님의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❹ 그 다음에는 여러 가지 하지 말라는 금령입니다. ❺ 마지막 계명은 내 이웃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출20:17) ❻ 우리의 복되신 주님은 그 율법을 보다 더 상세하게 해석해 주셨는데 그것은 산상수훈입니다. ❼ 그들의 잘못된 점은 어떤 것을 하고자 할 때에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관심을 가지고 덤벼드는데 있는데, 실제 성경의 요구는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임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있습니다.

 

② 두 번째 요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❶ 율법을 단순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이행해야 하는 것입니다.(롬2:13) ❷ 그런데 그 율법은 전체를 지켜야 합니다.(약2:10~11) ❸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통해서 총체적인 충성과 전인적 헌신을 요구하십니다.(막12;29~31) ❹ 이것들을 행하는 자는 그것들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시는데, 그 요구를 충족시킬 사람은 예수님 말고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❺ 우리 주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마음에 품은 것 자체도 죄라고 하셨습니다.(마5:17) ❻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순종, 100% 완전히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❼ 우리가 율법의 그 높고 불가능한 요구를 행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율법의 요구를 참아낼 수 없다고 느끼게 되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7:24)고 울부짖게 되는 것입니다. ❽ 그래서 그들은 율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구원하려 하거나, 자신들을 의롭게 하나님 앞에 세우려는 노력을 멈추게 되고 믿음의 의가 말하는 바를 청종하며 즐거워하고 감사합니다.

 


 

2. 오직 믿음으로

 

유대인들은 모세를 통해서 주시는 율법을 지키는 차원에서 생각하였고, 복음은 믿음의 방식을 말합니다. 행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아내려고 하거나 아니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하기 마련입니다. 언제나 그 두 길 앞에 사람이 서 있습니다.

 

① 사도는 이 두 가지 길을 의인화시켜 두 설교자를 세워놓고 말합니다. ❶ 자기 자신의 작은 기준을 세워놓고 그것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선한 생활이면 만족한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되면 자기들은 그것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금방 깨닫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설교자는 우리를 율법에 관하여 전적인 무능과 소망 없는 상태로 내어줍니다. ❷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우리에게 두 번째 설교자가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첫 번째 설교자의 말을 듣고 소망을 완전히 잃어버리는 상태에 빠져들었으니, 이제는 두 번째 설교자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라고 하는 말을 청종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❸ 그처럼 사도는 믿음으로 말미암아서만 의롭다 함을 받는 놀라운 구원의 비밀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② 율법의 방편으로 해서 의에 도달하려는 시도는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라고 대조시키고 있습니다. ❶ “네 마음에 이르기를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라는 식으로 시작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❷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높은 데서 끌어내리려는 시도를 하려는 식으로 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❸ 아니면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시도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③ 사도 바울은 여기서 모세의 어법을 빌려서 복음 설교를 하는데,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❶ 여기서 구원의 방식이 무엇임을 아는 일이 전혀 어려움이 없으며, 오늘날 어느 누구도 복음을 몰랐다고 핑계 댈 수 없는 것은 그 복음이 명백하게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복음을 알기 위하여 진리를 탐사하려고 “하늘에 올라가고자 하거나, 음부에 내려가는 수고를”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❷ 우리가 진리를 얻기 위해서 하늘에 올라가거나 진리를 끌어올리기 위해서 심연의 깊은 속으로 내려가야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❸ 우리가 있는 곳에서 그 진리를 얻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❹ 구원은 우리가 찾아내야 하는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④ 구원의 길은 우리에게 어떤 노력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❶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공급되었기 때문입니다. ❷ 우리는 그것을 얻기 위해 하늘이나 음부로 찾아갈 필요가 없습니다. ❸ 그것을 발견해 내려고 노력하고 힘쓸 필요도 없고 그를 붙잡으려고 애쓸 필요도 없습니다. ❹ 주님은 멀리 계시면서도 바로 우리 곁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❺ 그것을 아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이 정말 단순하게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고 합니다.

 

⑤ 우리가 부르심을 받은 것은 이해하기에 불가능한 노력을 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❶ 우리의 구원은 이해를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❷ 우리 자신을 포기하고 그리스도께 자신을 드리는 것을 통해서 구원을 받습니다. ❸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지성적인 이해도, 행위를 통해서도 아니며, 전파된 말씀을 단순히 믿는 것을 통해서 받는 것입니다.

 


 

3. 예수는 주(9~10)

 

기독교 신앙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런  믿음이 아니라면 그런 사람을 보고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없이는 기독교 신앙이란 있을 수 없으며, 그를 빼고 나면 아무것도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모두 다 그분에게 달려있으며 그분에게만 의존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시작이요 마지막이며,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십니다. “이 닦아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고전3:11)이십니다.

 

① “예수님은 주님이시다”는 말씀은 엄청나고 대단한 진술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함께 언급하면서 예수님이 주시라고 할 때, 그 진술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전체를 요약하는 것으로서 “주”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합니다.그러므로 예수님은 주님이시라는 말을 할 때에 예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앙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이 주님이시라는 신약의 주요한 진술들은 ❶ 골1:15에서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의 장자”라고 함 ❷ 요한복음 1장에서 “말씀”으로 모든 만물들보다 앞서 존재하심을 증거 ❸ 골1:19; 2:9에서 모든 신적 속성과 능력들 전부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을 증거 ❹ 요1:3; 히1:2; 골1;16,17에서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증거(심지어 천사들까지)

 

③ 복음의 전체 메시지는 하나님께서 다시 온 우주를 큰 연합의 상태로 회복시키려고 그 일을 하셨고, 바로 이 예수님을 통해서 그 일을 궁극적으로 완전하게 하시려 하셨습니다. ❶ 그리하여 예수님이 이 절대적인 의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주”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❷ 그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이 영화롭게 되고 통일된 우주를 완전한 상태대로 하나님 아버지께 되돌려 드릴 것입니다. 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온 우주를 그 예수님을 위해서 지으셨고, 그것을 예수님에게 주셨습니다. ❹ 그리고 예수님 안에서 그 우주를 만드셨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지으셨습니다. ❺ 바로 그것을 우리가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도마의 고백)

 


 

4. 부활과 칭의의 성취(9~10)

 

우리가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의 내용에 있어서 첫 번째 요소는 예수님은 주님이시라는 우리의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제 두 번째 요소를 생각해야 합니다.

 

①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라는 말씀의 내용은 ❶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인 사실입니다.(딤후2:17~18; 고전15:17) ❷ 우리가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어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가 주님이시요 하나님의 영원하신 아들이심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롬1:3~4) ❸ 신약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들을 더 제공하고 있습니다.[행2:23~24, 25~28, 29~37; 3:12~15; 17:18] ❹ 바로 이 부활의 사건이 예수께서 영광의 주가 되심을 선포합니다.

 

② 그 영광의 주께서 죽으셔야만 했던 것은 죄에 대한 율법의 요구를 우리를 대신하여 들어 주셔야 했기 때문이며, 그분이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셔야 했던 것은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받게 하시기 위함입니다.(롬4:25) ❶ 그리스도께서 만약에 부활하시지 못하였더라면 우리에게는 구원도 없습니다. ❷ 그의 죽음으로 인하여 죄를 용서 받을 수는 있겠지만 그의 의를 전가 받을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칭의를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❸ 죄를 용서 받았다고 해서 의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❹ 완전하신 그리스도의 의를 전가 받아야만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법적으로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❺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로 인하여 우리에게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❻ 만약 부활이 없었다면 성령의 오심에 대한 모든 약속들도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❼ 성령의 오심,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을 증거합니다.

 


 

5. 그리스도의 승리(9~10)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다고 믿는 것은 다른 여러 가지에 대한 믿음을 수반하는 것임을 숙고해 나가고 있습니다. 그 여러 가지 것들 중에 ❶ 부활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영광의 주가 되심을 입증하는 것이라는 것과 ❷ 그 점은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우리에게 보여 주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❸ 그의 죽으심이 충분하고 그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여기 지상에서 목적하신 일을 완성하셨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❹ 또한 그것은 우리의 모든 원수들이 정복되었다는 것을 공표하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❺ 부활은 우리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정복하셨다는 것을 최종적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① 우리가 인간으로서 당하는 모든 고통은 마귀가 하는 일의 결과입니다. ❶ 구원은 바로 이러한 일들이 무산되었고 더 이상 작용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❷ 부활을 믿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최종적이고 완벽한 구원을 위해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서 완성되었다는 큰 확신을 가지는 것입니다. ❸ 그래서 우리는 바로 이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② 우리 주님께서 지금 영광 중에 어떠한 지위를 차지하고 계시며, 그것이 나를 위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가 주님의 부활의 의미의 일부입니다. ❶ 주님께서는 하늘에 있는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영원한 영광 중에 계십니다.(히1:3; 4:14; 9:24) ❷ 하늘과 땅의 권세가 다 예수님의 것이며, 그분은 영원토록 통치하실 것입니다. 또한 당신의 원수들이 그 발등상 되기까지 기다리며 보좌에 앉아 게십니다.(엡1:19~21; 히1:13; 눅1:33)

 

③ 우리 주님께서는 심판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1:10~11; 마 24,25장; 막 13장; 눅 21장; 요5:27; 행17:31) ❶ 부활은 하나님께서 친히 전 인류를 향하여 주신 분명하고 확증적인 지식이었습니다. ❷ 곧 세상을 마지막으로 심판하실 것이며, 그 세상에 살았던 모든 자들에 대한 최종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확실한 지식을 부활을 통해서 알려 주신 것입니다. ❸ 그 때에 우리 주님은 눈에 보이는 육체를 가지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❹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1차적인 목적은 심판을 행사하시기 위함이고, 그 다음은 그의 대적들을 파멸시키는 것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❺ 그러나 주님께서 당신의 성도들에게는 상급보다도 더 귀한 주님 자신을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살후1장) ❻ 주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뿐 아니라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일을 위한 보증도 됩니다. ❼ 하나님께서 주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것이고, 나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6. 믿음과 신앙고백(9~10)

 

“예수께서 주시며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는 것이 구원받을 만한 믿음의 내용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마음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은 우리가 어떤 위험들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주기 때문입니다.

 

① 성경에서 “마음”이라는 말이 나타나는 대 다수의 경우는 그 “인격의 중심”, 즉 “인격의 가장 내밀한 좌소”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라는 말씀은 그 사람의 감정만이나 그 사람의 지성만이 아닌, 그 사람 인격 전체, 그의 존재의 모든 것을 다 포함한 총체성으로 믿는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② 만일 자신의 의지나 지성적인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나, 입술로 고백하는 행위로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바로 구원에 관련된 모든 교리를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❶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속해 있다고 하는 가르침을 부정하게 됩니다. ❷ 구원에 있어서 우리가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는 본질적인 가르침을 부정하게 됩니다. ❸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엡2:8)이라는 말씀을 부인하게 됩니다.

 

③ 신앙의 열쇠는 마음속에 있습니다. ❶ 또한 불신앙의 열쇠도 마음에 있습니다. ❷ 그리고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구성하고 있는 신앙도 마음에 있습니다. ❸ 이 마음은 사람의 전 인격을 동반한 총체적인 것을 말합니다.

 

④ 우리가 가장 삼가야 하는 일은 지성적인 불신자들에게 맞추기 위해서 우리의 메시지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일입니다. ❶ 그들이 새로운 마음을 가지기 전에는 그들로 하여금 믿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❷ 그러나 우리는 최선을 다해 그들에게 복음을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도록 애써야 합니다. ❸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회심하고 있는 지성적인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❹ 그러나 그들이 회개하는 이유는 그들이 이지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들을 다루셨기 때문입니다.

 

⑤ 또한 우리가 교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습니다. ❶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❷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진리를 믿어서는 안 됩니다. ❸ 교리가 복되신 주님을 감추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❹ 주님만이 우리의 구주이시며, 그분만이 구원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⑥ 영원한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총체적인 인격이 수반된 마음에 달려 있다는 것이 바울의 논증입니다.

 

⑦ 이제 우리는 다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믿음의 영역에 대하여 살펴보면 ❶ 롬6:17에서 “마음으로 순종하여” 라고 말합니다. ❷ 겔36:25~27에서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네 신을 너희 속에 두어”라고 말합니다. ❸ 마13:13~15에서 우리 주님께서 마음이 조건에 작용하는 것에 엄청난 강조점을 두고 계신 것을 주목해야 합니다. ❹ 눅8:15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씨를 뿌리는 비유에서 “뿌리”를 가지는 것은 마음에 달려 있다고 하시며, 마음에 뿌리가 없다면 믿음은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을 나타내십니다. ❺ 바울의 유럽 전도에 있어서 첫 번째로 얻은 회심자인 루디아의 경우에도 그녀의 마음을 주께서 여심으로서 가능했습니다.(행16:13~14) ❻ 벧전1:21~22에서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❼ 막12:28~30에서 “네 마음을 다하고.......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 말씀은 믿는 시늉만 해서는 안 되고 존재 전체를 다 드려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구원받을 만한 믿음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7.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받을 만한 믿음(9~10)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은 마음이 수반 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다음 단계에 오게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회개입니다. 그러나 뉘우침 자체는 회개가 아닙니다. 뉘우침은 회개를 불러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뉘우침만 있고 회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 진리로 말미암아 괴로움을 당하고 비참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으며 심지어 진리에 대하여 대적할 수도 있습니다.

 

① 회개는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❶ 자기의 이지의 사고를 바꾸는 것입니다. ❷ 의견이나 사고방식, 관점에 있어서 변화가 있기 전에는 진정한 믿음이나 참된 회개는 있을 수 없습니다. ❸ 언제나 회개는 슬픔의 요소가 있으며, 그 마음의 느낌은 필연적으로 함께 수반됩니다. ❹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전체 입장과 태도가 잘못되었음과 그 모든 잘못에 대한 죄의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어 경건한 슬픔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❺ 구원 받을 만한 믿음을 갖게 되면 반드시 이 슬픔에 대한 무엇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거룩하고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서글프게 한 것에 대한 슬픔이며, 그처럼 자비로우시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을 그런 악한 방식으로 대응한 슬픔을 가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❻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을 가집니다. ❼ 더 나아가서 분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에 대하여 의분 감을 가지게 됩니다. ❽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배역한 비참한 죄인들임을 알기 때문에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입니다.

 

② 구원받는 믿음이란 성령께서 마음속에 일으키신 복음의 진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❶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들을 마음에 의뢰하는 것입니다. ❷ 진리를 알고 그 진리를 의뢰하는 것입니다. ❸ 진리에 전적으로 자신을 온전히 던져버리는 것입니다.

 

③ 그러나 그 구원받을 믿음은 하나님의 성령의 선물입니다. ❶ 성령께서 영혼과 마음속에서 역사함으로 그러한 믿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❷ 그것이 없이 구원함을 얻을 믿음이라는 것은 전혀 불가능합니다.

 


 


 

8. 믿음의 고백(9~10)

 

구원 받을 만한 믿음에는 세 가지 국면이 항상 언제나 함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은 참된 내용이 있어야 하고, 마음, 그리고 동등하게 입으로 고백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① 약2:20,21의 말씀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그저 말로만 “예, 좋습니다.”라고 하고는 그 일에 대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그 믿음은 아무 가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22절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신 일을 행하기 위해 진행해 나감으로써 그의 믿음을 증거하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요점인데, 행함이 “믿음을 온전케” 한다. 즉 믿음의 실상을 궁극적으로 증거하는 것은 행함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행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지적인 찬동, 학문적이고 이론적인 신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② 누구든지 성령으로 하지 않고서는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❶ 예수님은 주님이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거듭나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사고방식과 이지를 갖게 된 사람뿐입니다. ❷ 그러므로 인견 전체를 수반하여 예수는 주시라고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리스도인 밖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