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10:1-4 ,바른믿음

호리홀리 2015. 1. 26. 17:04

롬10:1-4

 


 

10장 1~4절 :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는 것이라.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1. 기도와 복음전도(1~2)

 

본문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자기 동족들인 유대인들에 대하여 정말 애정 어린 관심을 보이며, 그런 후에 그들에 대한 자기 마음의 진정한 소원이 무엇인지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3~4절에 가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유대인들이 교회 밖에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상기하게 만듭니다. 유대인들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는 것은 구원의 방식과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받는 방식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인데, 그것은 다 율법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와 잘못된 해석의 결과입니다.

 

① 사도 바울은 자기의 동족들에게 욕을 먹고, 핍박을 받았으며, 그들은 여러 번 사도 바울을 죽이려고 시도하였으며, 그를 미워하였습니다. ❶ 또한 그를 아주 혐오스러운 사람으로 생각하여 온갖 비방을 퍼부었습니다. ❷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그들이 아무리 사악하게 굴어도 참아냈으며, 동족들에 대하여 원한을 전혀 품지 않았습니다. ❸ 오히려 그들의 구원의 문제를 놓고 크게 근심했으며, 마음으로 간절한 갈망이 있었습니다. ❹ 그래서 그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② 사도는 우리에게 그의 위대한 사랑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줍니다. ❶ 그러나 사도가 거듭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❷ 그는 편협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바리새인이요 유대 민족주의자였습니다. ❸ 비록 그에게 유대인들이 그런 식으로 대하였지만 바울은 그들에게서 무언가 칭찬할 것이 없는지 찾으려고 하였습니다. ❹ 그래서 그는 여기서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다.”고 찬사를 보내는 것입니다.

 

③ 사도는 유대인들이 믿지 않는 것 때문에 공격하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논리를 세우기 위하여 그들을 공격하는 것도 아닙니다. ❶ 유대인들의 입장은 아주 그릇되어 있었습니다. ❷ 그들은 성경을 오해하였고, 성경에 대하여 눈이 멀어 있었습니다. ❸ 그래서 사도는 그들의 소경됨과 그릇됨을 보고 안타까워하며 괴로워했던 것입니다. ❹ 그의 큰 바람은 오직 그들에게 더 나은 길인 복된 소식을 알리고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④ 우리는 사람들 자신들과 그들의 마음의 눈을 가리고 있는 이 세상 신 사이를 구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❶ 우리가 불신자들을 보고 조바심이 나고 괴로움을 느끼게 될 것이지만, 그 감정에 압도당하면, 그들을 도울 수가 없습니다. ❷ 바울은 “만일 우리 복음이 가렸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운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고후4:3~4)고 말했습니다. ❸ 불신자들이 마귀의 희생물이 되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으며, 그래서 그는 최선을 다해서 진리를 나타내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❹그는 마귀의 활동에 억제를 당하지도 않고 자기감정에 휩싸이지도 않습니다. ❺ 그들을 도와야 할 입장에 있는 우리들이 스스로 감정에 압도당하여 그릇된 방식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항상 자신을 조절하여야 합니다.

 

⑤ 우리는 복음 전도에 있어서 언제나 생각하고 있어야 할 것은 만일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 때문이며, 그 사람이 구원을 받지 못하면 그것은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울이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⑥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모르기 때문에 그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❶ 우리가 모든 이들의 구원을 소원하고 기도해야 하고, 설교자가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제시하고 믿으라고 강권해야 하는 것은 바로 누가 선택받고 안 받았는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❷ 나는 알지 못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모든 이들에게 복음을 제시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⑦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나 그 어떤 일이 없어도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선택한 사람들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눅1:37) ❶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우리를 방편으로 해서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실 뜻을 정하셨습니다. ❷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일들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❸ 모든 것을 정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고, 우리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2. 참된 열심(1~2)

 

우리는 이 부분에서 참된 열심과 거짓된 열심이 묘사되어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1절에서는 참된 열심을, 2절에서는 거짓된 열심을 다루고 있습니다.

 

사실 열심과 진지함은 그 자체로는 중립적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가장 탁월한 지위에 올라가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가지면서도 비극적으로 그릇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이단의 열심 있는 멤버가 된다든지, 또는 사람의 기질상의 문제에 국한되는 것이 아닙니다.[마23:13; 갈4:17~18; 행26:9~11; 빌3:5~6; 딤후3:6; 4:3]

 


 

참된 열심의 특징들은 ❶ 주변 사람들의 어떠한 조건들이나, 그들에게 뒤지기 싫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참 마음으로 우러나오는 하나님께로 향한 열심입니다. ❷ 언제나 “존재”(됨됨이)가 은혜 또는 거룩함으로 자랐기 때문에 오는 열심이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❸ 언제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파생물, 또는 복음에 순종함으로서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❹ 보여주기 위한 외면적인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통제되는 열심입니다. ❺ 결코 사람이나 자신을 신뢰하지 않고 언제나 하나님께로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❻ 참된 열심을 유발시키는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는 것입니다. ❼ 그래서 참된 열심은 실패에 대하여 낙심하거나, 성공에 대하여 흥분하지 않습니다.

 


 

3.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3)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지만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식은 완전하고 정확한 지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① 그런데 우리도 정확한 지식을 좇지 못하고 자신의 선입견이나, 자신의 기준에서 모든 것을 생각하고 그것에 대하여 열심을 품고, 달려 나가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❶ 그리스도인들은 천성적인 성품이나 멋진 모습이나 교양적인 세련됨을 참된 기독교 은혜로 오인하고 있습니다.(지식, 도덕, 상냥함) ❷ 사람이 경건해 보인다는 사실이 그들이 믿는 바의 진실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 주지 못합니다.(경건한 유대인, 경건한 마호멧 교도, 경건한 불교도, 진실한 유교도) ❸ 그러나 이런 차원에서 말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객관적은 표준들을 포기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느낌으로 판단하고 분변하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것은 없습니다. ❹ 더 중요한 것은 사도가 바로 이 시점에서 가르치는 바를 전적으로 부인하는 것입니다. ❺사도가 여기서 가르치는 것뿐만 아니라, 구원의 방식에 관한 신약 성경 전체를 말살하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항상 복음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8절)

 

③ 사도 바울은 이 “지식”이라는 말을 통해서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❶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의를 몰랐습니다. ❷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에 대한 구약의 가르침을 오해하였습니다. ❸ 율법에 대한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정확한 지식을 갖지 못했습니다. ❹ 그로 인하여 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진리를 배반하고 부인하는 길에 서게 된 것입니다.

 


 

4. 하나님의 구원방식(3)

 

이 시점에서 사도 바울이 지식의 부족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❶ 당시의 유대인들의 조건을 설명해 주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그러합니다. ❷ 지식의 결핍문제는 여러 세기를 지나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요한 거침돌이 되고 있으며, 본성적으로 바리새적인 사람들에게 특히 그러합니다. ❸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은 당시나, 오늘날의 교회의 어리석은 성향 때문인데, 그것은 복음주의적인 사람들에게까지 해를 끼칩니다. ❹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구원의 오직 유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① 본문에서 사도가 “자기 의”라고 말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❶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도덕성이나 선함이나 인자함이 아닙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막12:29~31)입니다. ❷ 인간의 죄에 대한 거짓된 관점을 기초하여,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 생하는 것으로 생각 하지만 우리가 행위로서 하나님의 요구들을 만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❸ 자신의 어떠한 행위의 노력들과 자신이 이룬 어떠한 선행들의 결과로 자신의 의라고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마23:5~7) ❹ 유대인들이 그렇게 힘쓰고 애를 써 노고를 아끼지 않음으로 자신들을 기쁘게 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하나님은 전혀 기쁘시게 하지 못했습니다. ❺ 그들은 자신의 의를 세웠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❻ 그들은 마치 경기에 돌입하는 사람들과 같이 자기 일을 해냈고, 그 일로 대단히 기뻐하고 있습니다. ❼ 그러나 결국 자기가 해낸 일은 단 하나의 표적도 맞추지 못한 사람, 즉 경기의 규칙을 주의 깊게 읽어 보지 못하여 퇴장당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②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언제나 은혜에 속한 것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1:16~17) 바울이 그 때문에 그처럼 복음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위해서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의를 제공하셨습니다. ❶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위해서 이삭을 대신하여 제물을 준비하셨듯이 우리를 위해 당신의 아들을 희생 제물로 주십니다. ❷ 하나님께서는 이 의를 값없는 선물로 주십니다.(엡2:4~9) ❸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의에 복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③ 하나님의 방식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5. 그리스도, 율법의 완성(4)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율법을 지키는 차원에서가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의라는 것은 전혀 가능하지 않는 다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율법의 의로운 요구의 차원에서 판단을 받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율법을 만족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그릇된 것이며, 과녁을 맞히지 못한 것입니다.

 

①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만족을 시킨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②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율법의 모든 필요를 완성하심으로서 율법을 마치신 것입니다. ❶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율법과 작별을 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❷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은 영속성이 있으며, 여전히 우리에게 그것을 요구합니다. ❸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율법을 폐기한 것이 아닙니다. ❹ 우리가 은혜 아래 있기 때문에 율법의 표준이 더 낮아진 것이 아닙니다. ❺ 복음은 율법의 요구에 관해서 일을 더 쉽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❻ 그리스도께서는 율법의 요구에 복종하셨습니다. ❼ 그런 의미에서 성육신은 율법의 성취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❽ 그 율법의 요구가 완성되었다는 것은 부활이 증거합니다.

 

③ 그리스도께서만이 의를 위한 율법의 마침이 되십니다. ❶ 율법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잠잠케 하며 심판 아래 있게 한다고 말함으로서 다른 어느 누구도 그 율법의 마침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풍성하게 증거합니다. ❷ 모든 사람들은 율법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❸ 첫 번째 사람인 아담은 완전하였지만 율법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❹ 만일 하나님께서 다른 아담을 창조하셨다면, 그도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실패했을 것입니다. ❺ 구원에 오직 유일한 방식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육신이 되셔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④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우리의 옛 사람”은 갈보리 언덕 위 십자가상의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 죽었습니다. ❶ 이제 더 이상 율법이 우리로부터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고, 우리를 정죄하는 차원에서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습니다. ❷ 그리스도에게 일어났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❸ 우리는 절대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화해하였습니다. ❹ 우리는 그의 자녀가 되었고 “그 앞에 기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❺ 하나님께 대하여 살았으며,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영역 안에서 부활하였습니다. ❻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으니(롬6:11), 우리는 절대적이며 영원히 안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