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로마서연구

로마서9:6-13 ,약속의 자녀가 누릴 축복

호리홀리 2015. 1. 26. 14:51

롬9:6-13

 


 

1. 반론(6~7)

 

1~5절까지는 주제를 소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이제 바울은 여기서 실제로 자기와 자기 가르침에 대항하여 제기된 반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포기하시고, 당신이 그 백성들에게 하신 약속을 저버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며,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목적이 실패하거나 변동되는 것이 있을 수 없으며 어느 것도 그것을 방해하거나 좌절 시킬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9장은 하나님을 변호하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방식의 정당성을 드러내는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무런 효력 없이 끝난 것 같지 않다는 뜻입니다. ❶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목적을 뜻합니다. ❷ 그것은 언약들과 약속들과 우리가 함께 살펴본 다른 모든 것들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과거에 폐하여지지 않았으며, 지금도 효력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② 이스라엘에게서 난 모든 자들이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2:28,29에서 그것을 말한 바 있습니다.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다만 하나님에게서 니라.”

 

③ 같은 방식으로 4:11~13의 말씀 속에서 그 문제에 대한 하나의 빛을 던져 주었는데, 그는 거기서 아브라함의 전체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었습니다.

 

④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변화무쌍한 역사를 통해서 부단하게 불순종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불평과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❶ 그들이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❷ 자기들이 이스라엘 자손들이니 자기들에게 전혀 나쁜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주제넘게 생각하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❸ 하나님께서 항상 그들을 축복하셔야만 한다는 식으로 그들은 생각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항상 복을 주지 아니하셨을 때 그들은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으며 마치 하나님께서 약속을 배반한 것처럼 생각했던 것입니다. ❹ 그것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에게서 난 모든 사람들이 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⑤ 사복음서에서도 우리 주님께서 유대인들과 여러 논쟁과 토론에 대해 할애한 시간과 지면이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❶ 그들은 자기들이 유대인들이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라는 사실 그 자체로 자기들을 구원한다고 단정하고 있었으며, ❷ 새로운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❸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약속하셨을 때에 바리새인들은 화를 냈던 것입니다. ❹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을 위해서 죽으셔야 했던 나사렛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믿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❺ 자기들은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들(6~9)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다”는 전제를 해 놓은 다음 이제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들 자신들의 역사 속에서 명백하게 입증 될 수 있음을 밝혀 나갑니다.

 

① “씨”라는 말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는데, 그것을 두 번 반복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❶ 육신적인 혈통을 나타냅니다. ❷ 두 번째로 사용할 때문 다른 의미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이 누구를 통해서 시행되느냐는 의미에서 사용 되었습니다. ❸ 이삭과 이스마엘은 육신적으로는 둘 다 아브라함의 자손이지만, 연약과 약속의 특별한 관계에서의 씨는 이삭뿐입니다. ❹ 둘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는데, “이스라엘에게서 난 자가 다 이스라엘이 아니라”는 말씀과 정확히 병행을 이루는 요점입니다. ❺ 모든 사람이 이스라엘에게서 났지만 얼마만이 참 이스라엘 사람들이라는 것이 바울의 첫 번째 요점입니다.

 

② “자녀”라는 말에도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❶ 이삭과 이스마엘은 분명히 아브라함의 자녀들이었지만 그들이 다 자녀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❷ 상식적인 면에서 “자녀”라는 말은 한 아버지의 후손이라는 뜻으로 사용 되지만 특별하게 영적인 의미에서, 신령하고 언약적인 면에서는 이삭만이 자녀입니다. ❸ 이 약속과 언약의 문제에 있어서 점주가 아니라 일부만이 그의 자녀들입니다.

 

③ 그래서 “칭하셨으니”라는 말은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떠나보내는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것이었습니다.(창21:10~21) ❶ 이 말은 “여긴다.” “간주한다.”라는 뜻을 담고 있으나 여기서 사용된 “칭하셨으니”라는 말은 더욱 강한 뜻이 있습니다. ❷ 헬라어에서 가능한 의미를 찾아보면 “부르심”이라는 말인데, 그 부르심이라는 말에는 칭함을 포함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❸ 그것은 “존재하도록 부르신다.” 라는 뜻입니다. ❹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들을 마치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❺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창조주로서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존재케 하시는데,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지 아니하는 것들을 존재하도록 부르신다는 것이 됩니다.

 

④ 이제 8절의 “곧”이라는 말을 다른 말로 한다면 “이것이 뜻하는 바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창하리라는 진술이 뜻하는 바는 이것이다.”라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⑤ 그는 “자녀”라는 차원에서 먼저 그 문제를 다루는데,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라고 합니다. ❶ 육신의 자녀도 있고 하나님의 자녀도 있다고 하는 말씀입니다. ❷ 육신의  자녀가 다 하나님의 자녀도, 약속의 자녀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❸ 오직 약속의 자녀만이 씨로 여기심을 받고, 그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❹ 하나님의 자녀, 참된 씨, 영적인 씨라는 말은 다 같은 뜻입니다.

 

⑥ “여기심을 받는다.”는 말은 7절의 “칭하리라”는 말과 다른 뜻입니다. ❶ 이 말씀에는 “존재하도록 부르신다.”는 뜻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❷ 하나의 산술적인 어휘로서 “계산에 넣어 생각되다.”라는 뜻입니다. ❸ 말하자면 어느 수에서 빼어 다른 것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❹ 따라서 그 말은 자녀로 “계산되다.” “간주되다.” “고려되다.” “여기심을 받는다.”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⑦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약속”에 속한 것입니다. ❶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육신과 그 활동의 결과로 말미암아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활동의 결과로 나온 자들입니다. ❷ 이삭의 탄생은 하나님의 이적으로 가능하게 된 것인데, 그 이적 또한 정상적인 임신의 기한인 “명년 이 기한에”라는 표현을 보듯이 정당한 기한이 소요되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이적은 자연 법칙을 깨뜨리거나 무시하거나,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자연 법칙의 법에 능력을 가하여 사용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❸ 이삭이 태어난 것은 약속 때문이었는데, 아이가 태어났기 때문에 약속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약속이 주어졌기 때문에 그 아이가 태어난 것입니다. ❹ 이삭은 아브라함의 아들 그 이상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생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생산하신 것입니다. ❺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미 정하셨기 때문에, 그가 행하시고 그 이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⑧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서, 이삭으로 말미암아 그 목적을 이루시려고 당신 자신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삭을 존재케 하신 것입니다.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아니라 약속으로 말미암아 생산되고 약속을 따라 난 약속의 자녀들만이 “씨”입니다.

 

⑨ 하나님의 목적은 야곱과 에서를 통해서 알 수 있듯 선택의 과정을 통해서 이행되어 나가는 것인데,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 즉 하나님의 선택의 원리에 따라 되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❶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한다는 것입니다. ❷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서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야곱과 에서가 태어나기 전에 야곱을 택하시고 에서를 택하지 아니하셨습니다. ❸ 그 두 사람이 어떤 선이나 악을 행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런 일을 하신 것입니다. ❹❺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독립적인 행동입니다. ❻그것은 우리가 확신할 수 있는 오직 유일한 방식이고 우리가 분명하게 영화롭게 될 확실한 방식입니다. ❼ 하나님의 권속에 속한 사람은 모두 다 그 일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3. 택하심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뜻(10~13)

 

① 하나님의 약속과 뜻은 어떤 사람들에게만 해당됩니다.

 

② 하나님의 목적과 약속이 해당되는 이 사람들의 현재 신분은 바로 그들의 출생에서부터 간섭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③ 이 선택이나 선별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듯이 이루어져 나가고 있으며, 언제나 이루어져 왔고, 연제나 이루어질 것입니다.

 

④ 하나님께서는 오직 한 가지 이유에서 이 선별과 선택을 방편으로 하여 그 뜻을 이루십니다. 그 한 가지 이유란 그 방식만이 당신의 뜻과 계획을 확실하고 틀림없이 이행시켜 궁극적인 열매를 맺게 하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그 뜻을 이루어 나가고 계십니다. ❶ 하나님의 선택은 절대적으로 누구에게 구애받지 아니하는 주권적인 것입니다. ❷ 하나님의 선택은 우리의 어떤 것에 전혀 매이지 않는 선택입니다. ❸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에도, 우리 속에 있는 어떤 것에도 결코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❹ 오직 한 가지 요점에 의해서만 결정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과 영원한 뜻에 의해서만 결정됩니다.

 

⑥ 하나님께서는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죄악된 상태를 미워하십니다. 사람의 죄악된 자세, 그리고 죄악된 자세가 가져오는 모든 것을 미워하십니다.

 

⑦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❶ 타락한 족속 중에서 어떤 사람들을 구원받도록 선택하신 것이 아니며, 사람을 뽑아 그들을 개선시키려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❷ 하나님의 구원 방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인류를 산출하는 것입니다. ❸ 그것은 영적인 탄생으로 말미암아 탄생되는 새로운 백성들, 영적인 백성들입니다. ❹ 이 사람들이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이 세상에 태어났고 예비 되었습니다. ❺우리는 이삭의 경우에서 그 점을 확증했습니다.

 

⑧ 하나님께서 우리를 육신적인 본성의 과정을 통해서 이 세상에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❶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이 “새로운 인류”의 구분이 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❷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정확히 똑같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는 언제나 달랐습니다. ❸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우리 자신도 몰랐습니다. ❹ 또한 다른 어느 누구도 몰랐습니다. ❺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 이 “씨”의 생산을 보증하셨습니다. ❻ 그래서 결국 완전하고 새로운 인류인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하고 철저한 한 인류가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❼ 그리스도는 머리이시며, 우리는 몸입니다. ❽ 그는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시며, 전적으로 새로운 분으로서, 두 번째 사람이요 마지막 아담입니다. ❾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시는 방식입니다.